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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큰딸이 자신의 방을 갖고 싶다고 한 건 작년 하반기부터였다. 아직 혼자 자는 게 자신 없는지 다음날이면 말을 번복하곤 했는데, 학년이 올라가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최근에는 정말 마음을 굳힌 듯했다. 지금까지는 두 개의 방을 하나는 공부방으로, 다른 방은 침실로 쓰고 있었다. 두 딸을 위한 침실이지만 엄마까지 껴서 셋이 자는 공간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됐지만 말이다. 방을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 지난 주말, 실행에 옮겼다.침대를 다른 방으로 옮기려면 분리를 해야 한다. 지금의 모습을 사진 찍어 놓고 육각렌치로 볼트를 풀러 각 면을 분리한 후, 다른 방으로 하나하나 옮겨 역순으로 조립하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무게는 또 좀 무거.. 2026. 3. 9.
16만 원을 위한 사투 지난 12월 31일. 한 해의 마감과 새로운 해의 시작 사이에서 차분하게 온고지신의 자세로 하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싱크대 양념장이 고장났다(젠장). 레일이 내려앉으면서 이동을 부드럽게 해주는 작은 구슬들이 빠졌고, 양념장은 더 이상 여닫는 게 불가능해졌다. 신축 아파트라곤 하지만 5년을 살다 보니 하나하나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하필이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이런 시련이 닥친단 말인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서둘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아내 말을 빌리면, 주변에 양념장을 수리한 집이 몇 있는데, 사람 불러서 수리하는 비용으로 16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또한 처갓집도 최근에 양념장이 고장났으나 부품을 사서 장인어른께서 직접 고치셨다는 설명까지 더했다. 짜릿한.. 2026. 1. 5.
즐거운 낮술 오랜만에 즐거운 낮술을 했다. 남들 일하는 금요일 오후의 낮술이라 짜릿함이 더했다. 스무 살에 만났으니 어느덧 이십팔 년째 인연을 이어 오는 친구들과 강남터미널 건너편 상가의 지하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았다. 미식가인 친구는 터미널 근처 맛집으로 이곳을 추천했고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푸짐한 낙곱전골을 가운데 두고 잔을 부딪쳤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니 문득 친구들이 보고 싶어져서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급조한 번개였다.따로 떼어놓고 보면 비슷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셋은 대학에서 우연찮게 사조직을 결성하며 친해졌다. 학생회 활동을 함께했고 복학 후 장위동 반지하에서 같이 자취하며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한 친구는 사업 수완이 좋다. 십 년 남짓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장사를.. 2025. 10. 23.
추석과 유튜브 유난히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일찌감치 이번 명절에는 고향 찾지 말고 가족끼리 여행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명이 있었기에, 명절 전 미리 부모님을 찾아뵙고 우리 가족은 전라도 여행을 떠났다. 4박 5일 동안 순천, 여수, 보성, 담양, 군산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남은 연휴 내내 여행하면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며 보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출근 전까지 4편의 여행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기를 쓰고 편집했다. 사람 웃기는 게 직업인 개그맨들도 정작 집에서는 말이 없다던데, 촬영하고 편집하는 게 업인 나는 왜 억척스럽게 집에서까지 편집프로그램을 붙잡고 진땀을 빼고 있는 걸까?참고로 나는 유튜버가 아니다. 유튜브 채널을 운용하고 있으니 유튜버가 맞지 않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돈을 벌 목적으로 유.. 2025. 10. 14.
마라탕과 행복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가 서울에서 교육이 있어서 나머지 세 식구가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오롯이 두 딸과 함께하는 시간인 만큼 뭘 할까 고민이 많았다. 아쉽게도 비 때문에 야외 활동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함께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은 그저,집에 있고 싶어 했다… 하다 못해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책이라도 보자고 해도 시큰둥할 뿐… 집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아이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둘이 인형 놀이 하겠다는 말에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며 환호성을 치고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겠지만, 오랜만에 엄마 없이 아빠와 셋이 보내는 시간인데 이런 식으로 보내기는 너무 아까웠다. 장고 끝에 한마디 던졌다.“점심은 나가서 마라탕 .. 2025. 9. 14.
사라진 일상 근 두 달 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못해도 일주일에 하나 이상의 글을 올리는 게 연초의 계획이었는데, 무참히 무너졌다. 몇 달째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럼에도 망중한을 이용해 간간히 블로그에 몇 자 적어 왔는데, 최근 두 달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일상이 사라졌다. 글쓰기는커녕, 퇴근 후 가끔씩 튕겼던 기타 연주도,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펼칠 여유도,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회사 일은 나 혼자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몰리는데, 사실 나뿐 아니라 부서원 모두가 과부하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일상이 사라지니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다. 대학에서 인연을 맺은 형인데, 이 양반은 회사 다니면서 책도 냈고, 블로그를 두 개나 운영하고 있으며, 꾸준.. 2025. 9. 9.
관계의 어려움 오랜만에 예전에 알고 지낸 가수 매니저 이사님을 만났다. 겸사겸사 청주에 들른 김에 제작국장과 점심을 같이했고 나에게도 연락을 준 것이다. 가요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는 많은 가수 매니저들로부터 연락을 받곤 했다. 안부를 물으며 언제 한 번 내려와서 식사 자리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대다수였고, 그 이면에는 자신의 가수를 무대에 올려 주길 바라는 본심이 녹아있었다.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가수의 방송 스케줄을 잡고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이들 본연의 업무 아니던가.가요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이런 류의 전화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많은 매니저들의 간곡한 부탁을 에둘러 거절하는 게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는데 어찌 보면 잘 된 건지도 모른다. 사실, 방송 일을 하면서 매니저들과.. 2025. 7. 4.
큰 딸과 여드름 퇴근하고 네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다가 4학년 큰 딸의 이마에 뿌려진 여드름을 봤다. 여드름이 난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앞머리를 내리고 다녀서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머리띠로 앞머리를 뒤로 넘긴 채 식욕 왕성하게 콩나물국을 마셔대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오늘에서야 제대로 이마와 대면한 것이다. ‘여드름? 푸훗, 귀엽군’ 하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그러기엔 이마에 좁쌀이라도 쏟은 것처럼 여드름은 많았고 크기도 다양했다. 마치 중2 때 내 이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아빠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다며 해맑게 아이스크림을 빨던 아이가 어느덧 2차 성징의 시기에 와 있다.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조숙하다 보니 그깟 여드름 가지고 유난을 떤.. 2025. 6. 17.
통풍의 역습 방심하고 있었다. 망각한 채 제멋대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나를 잊지 말라는 물망초의 영어 이름(forget-me-not)처럼 예고 없이 그가 찾아왔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소중한 일상을 무너뜨리곤 했다. 나에게 통풍은 그런 존재였다. 물론 아직 통풍약을 먹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매년 건강검진 때마다 요산수치가 높게 나와서 언제 통풍이 발생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토요일, 그러니까 어제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른쪽 무릎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커졌고, 무릎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또한 줄어갔다. 관절에 급성염증이라도 생긴 건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주말이라 출근할 일도 없고 하여 하루만 더 .. 2025. 6. 15.
소림사에서 온 사부 그때는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2, 3학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충북 제천의 남천국민학교도 정문과 후문이 있었는데, 나는 집이 교동 쪽이라 후문으로 주로 다녔다. 후문을 나와 체육관이 있는 언덕 쪽으로 오르면 그 옆으로 샛길이 있었다. 복천사 입구를 지나 산길을 따라 어찌어찌 가면 지금은 사라진 '과수원주유소'와 만났고 그 뒤쪽에 있는 아세아시멘트 사택 중 하나가 우리집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후문으로 하교할 때였다. 웬일인지 후문 앞에는 무리의 아이들이 한 청년을 둘러싸고 웅성대고 있었다. 호기심 많던 나는 그 무리에 합류했고 그러자 그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소림사에서 왔으며 제자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내용의 말.. 2025. 5. 19.
야속한 비 빗방울이 흩날린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어중간한 비다. 며칠째 경북과 남부지역에는 미증유의 동시다발 산불이 발생해 재난 지역이 선포되고, 소방헬기가 추락하였으며, 30명 가까운 주민이 유명을 달리했을 뿐만 아니라 수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와 돌풍은 어렵게 꺼놓은 불씨를 되살리며 산불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이 비가 야속하다. 이왕 오는 거 장대비를 퍼부어 산천에 덮친 화마를 잠재우고, 그리하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줬으면 좋겠건만, 이런 비로는 불가능하다. 자연은 무섭다. 사계절 멋진 풍광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휴식을 주는 듯하지만, 그 위력을 과시할 때는 걷잡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자본과 개.. 2025. 3. 27.
불면증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두 쪽 나며 뚝 떨어진 건 아니고 서서히 안개처럼 다가와 몇 달 전부터 나의 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도 잠을 못 자다 보니 '요즘 너무 편한 삶을 살고 있는 건가' 물어도 해 봤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일상이 녹록지 못했다.   불을 끄고 누워 30분 내에 승부를 못 보면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수면 음악을 틀어 놓기도 하고,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듣던 수면 동화를 듣기도 하지만 소용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쉬이 잠 못 드는 건 침대맡에서 충전 중인, 수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핸드폰 때문이다. 조금만 잠이 안 와도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이것저것 뒤적거린다. 그리곤 다시 잠을 청하는 건데, 핸드폰을 집는 순.. 2025. 1. 27.
글루미 2025 그 어느 해보다도 우울하게 새해를 맞이했다. 작년 12월 3일, 개념 없는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 선포와 군홧발의 무자비한 침탈 속에서 극적으로 성사된 국회의 계엄해제, 대통령 탄핵안은 가결되었고 그럼에도 내란수괴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는 세력들의 작태를 보며 깊은 분노 속에서 지내는 요즘이다. 이런 와중에 너무나 안타까운 제주항공 참사가 있었고 한 번의 술자리였지만 대화를 나누며 교감했던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은 지금도 깊은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다. 2025년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예배에서는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차디찬 공항 바닥에서 새해를 맞이할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역사는 정반합으로 발전한다지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불의하고 반헌법적이며 비상식적이다. 분노의 크기만큼 무력감이 밀려온다. 과연 세상은.. 2025. 1. 6.
1년 묵은 약속 “나중에 촬영 다 끝나면 이거 나한테 줄 수 있나유?”2023년 10월쯤이었다. 한창 시루섬 다큐를 촬영하던 때였고 그날은 당시 시루섬 주민이었던 어르신 댁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긴 질문과 답이 오간 후, 어르신은 인터뷰에 사용한 시루섬 사진을 가리키며 이처럼 말씀하셨다. 옛 고향 모습이 담긴 사진을 처음 봤을뿐더러 물속에 잠겨버린 고향의 모습을 선명한 항공사진으로 접하니 너무 반갑고 그립다며 조심스럽게 부탁하셨다. “약속할게요, 어르신. 촬영 다 끝나면 꼭 가져다 드릴게요.”손가락을 걸진 않았지만 꼭 그러리라 맘속 깊이 다짐했다. 이날 이후로도 촬영은 계속됐고 편집과 후반 작업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끝에 올 1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방송을 마쳤다.그렇게 방송을 낸 후 또다른 일상이 계속되었지만.. 2024. 12. 18.
사람이 가려움 때문에 죽을 수 있겠구나 아내에게 어깨 안마를 받고 있었다. 나이 불문 월요일은 피곤한 날이다. 특히 금요일부터 2박 3일로 캠핑을 다녀온 후라 더욱 그랬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텐트를 치며 고생한 남편이 안쓰러웠는지,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군소리 없이 어깨를 주물러줬다. 앓는 소리와 함께 안마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가려웠다. 흰머리 날 때 머리가 가렵다는 말이 있던데, '이제 나도 멋진 백발의 중년이 되는 건가?' 하며 긁적이는데, 어라? 이건 좀 심한데? 가려움은 순식간에 머리에서 얼굴로, 얼굴에서 상체로 번져갔다. 지르텍을 먹었는데도 호전이 없어 찬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기 밑에 있을 때는 다소 완화되는 것 같더니 물기를 닦으면 다시 재발했고 설상가상으로 긁은 부위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르텍을 하나.. 2024. 10. 22.
오늘부터 1일~☝️ 평소와 다른 아침의 첫날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의 연속인데 다를 게 뭐가 있겠냐마는, 억지로 만든 틀린그림찾기의 이해할 수 없는 정답처럼 작은 차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새벽 운동이다. 단지에 있는 헬스장을 5년째 못 본 척 지나치다가 월요일 퇴근길에 관리사무소에 들러 등록했다. 5년이 채 안 된 아파트의 헬스장이라 기구도 새것과 다름없었고 구성 또한 여느 헬스장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한 달에 만 원이면 이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개 닭 보듯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거다. 새벽 5시 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먼저 떠졌다. 반드시 운동을 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잠자는 육신을 알어서 깨웠나 보다. 솔직히 말하면, 화요일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게 원래 계획.. 2024. 10. 17.
16일간의 때늦은 여름휴가 2005년 입사 이후 2주가 넘는 기간을 휴가로 보낸 건 19년 만에 처음이었다. 휴가 낸 건 6.5일에 지나지 않는데 주말과 추석 연휴가 맞물리면서 16일이라는 긴 휴가로 거듭났다. 휴가를 내며 살짝 눈치가 보였으나 생각해 보니 이건 엄연히 애들 방학 때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못 가며 치열하게 일했던 지난 여름의 보상이자 권리였다. 맘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휴가 동안에는 급박한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면 회사 단톡방은 무시했고 회사와 단절을 시도했다(물론 쉽진 않았다). 이번 휴가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실행에 옮기는 게 핵심 목표였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풀었고 양가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며 갑작스럽게 부친상을 당한, .. 2024. 10. 3.
양보다 질 "오늘 저녁 먹고 둘째 자전거 연습시키는 거 어때?" 퇴근 셔틀을 타면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애 둘과 치고받으며 하루를 불태웠을 아내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답장이 왔다. "ㅇㅇ" (자음 두 개만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은 위대하다.) 저녁을 먹고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사실 둘째는 몇 달 전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그 후 꾸준히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날 이후로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가질 못했고, 배우다 만 상태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이는 전보다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져 있었다. 그럼에도 몸은 기억했다. 화려하게 혼자 탈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번 타다 보니 연습을 멈췄던 그때의 몸놀림이 나왔다. 중간중간 몰래 손을 놓았고 그래서 넘어지.. 2024. 9. 2.
마침내 끝... 시원섭섭함. 언뜻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심정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로 이만한 게 없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여정이 어젯밤에 2부 방송이 전파를 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실 아직 정산과 기타, 손은 많이 가지만 티는 안 나는 일들이 남아있지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작업은 끝이 났다. 어딜 가든 꼬리표마냥 따라붙었던 시루섬을, 때론 동격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그 섬을 마침내 내려놓으려니 묘한 감정이 든다. 그 감정을 단어로 치환하면 '시원섭섭함'이다. 어젯밤. 알 수 없는 이유로 몇 주째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TV 때문에 처갓집에 가서 본방을 사수해야 했다(물론 1부 때도 그랬다). 방송을 다 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2024. 8. 30.
동서울행 버스 김창완 선생님의 신간 를 몇 장 넘기다가 도로 넣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 다 읽어버릴 요량이었는데, 선생님의 따뜻하고 포근한 문체를 담아내기엔 지금 내 맘이 녹록지 못한 탓이다. 글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글자만 읽는 느낌이랄까. 출발하기 전에 기사님은 중부고속도로가 막혀서 경부고속도로로 가겠다며 바뀐 경로와 이유를 설명해 줬다. 내일이 석가탄신일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나 보다. 나 또한 그중 하나지만 말이다.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대학 선배 형이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내일이 휴일이고 하니 지인들은 부담 없는 오늘로 날을 잡았고 나도 꼭 함께하고 싶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만큼 형이 간절히 보고 싶었다기보다 쳇바퀴처럼 회사, 집을 오가는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일.. 2024. 5. 14.
2024년 어버이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줄게." "난 없어~!"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며 던진 '오늘 어버이날인데, 뭐 없어?'라는 질문에 돌아온 첫째와 둘째의 대답이다. '너는 어린이날에 선물 받을 거 다 받고, 어버이날에는 아무것도 없으면 이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며 둘째에게 따져도 녀석은 막무가내였고 결국 출근 셔틀 시간에 쫓겨 실랑이를 접고 현관을 나섰다. 어제 회식의 숙취와 지난한 업무,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다시금 퇴근 셔틀에 몸을 실었다. 피로가 풀리기는커녕 되려 눈감은 시간만큼 피곤이 쌓이는 쪽잠을 자며 한 시간 반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별 기색이 없던 아이들은 밥상머리에 앉자 '하나 둘 셋!' 하며 뒤춤에 숨겼던 걸 내밀었다. 담임 선생님의 노고가 느껴지는 어버이날 카드였는데, 아빠 .. 2024. 5. 8.
자동차 변천사 10년 만에 차를 바꿨다. 칫솔 바꾸듯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실행에 옮기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 딸들도 커가면서 가족에서 친구로, 그들의 준거 집단이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말인즉, 아이들과 함께 놀러 다닐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을 더 모아서 사겠다는 이유로 나중에 차를 산들 아이들은 이미 가족보다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이 이쯤에 미치자 바로 차 예약을 걸었고, 그게 작년 4월 17일이었으니 근 10개월 만에 차를 받게 된 것이다. 학생과 백수 때는 물론이고 2005년에 취업을 하고도 근 1년 간은 차 없이 생활했다. 회사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기 때문에 차의 필.. 2024. 2. 18.
제우회 신년 모임 현재 우리 회사는 격주로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에는 4시간만 근무하고 퇴근하라는 건데, 수 년째 계속되고 있는 임금 동결에 따른 나름의 임금 보존책이라 하겠다. 2주마다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것 외에는 딱히 이 제도의 덕을 본 게 없었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정말 요긴하게 잘 사용했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신년회가 그날이었는데, 4.5일제 덕분에 여유롭게 올라갈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이나 그 근교에 살고 있다 보니 모임 역시 서울에서 자주 하게 되는데, 충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시간이 쉬이 나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고 약속 장소인 강남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넘.. 2024. 1. 28.
점심 후 산책 일찍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건물 하나 없는 대로변을 지날 때는 칼바람에 얼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듯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돌아오니 '그래도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충주에 있을 때는 매일이다시피 점심 식사 후 호암지를 돌았다. 회사 바로 앞이라 가까웠고 약 40분에 걸쳐 한 바퀴를 돌면 3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걷게 되는데 적당히 땀도 나서 사뭇 운동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호암지를 돌 때면 눈이 즐거웠다. 산책로도 훌륭할뿐더러 멋진 나무들로 조경이 잘 돼 있어서 꾸준히 돌다 보면 연둣빛 새순이 올라오고, 단풍잎이 시나브로 붉어지는 등 계절이 바뀌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청주로 출근하게 되면서 더이상 호암지의 사계를 즐길 수 없게 됐지만, 선배를.. 2024.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