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추억8 소림사에서 온 사부 그때는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2, 3학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충북 제천의 남천국민학교도 정문과 후문이 있었는데, 나는 집이 교동 쪽이라 후문으로 주로 다녔다. 후문을 나와 체육관이 있는 언덕 쪽으로 오르면 그 옆으로 샛길이 있었다. 복천사 입구를 지나 산길을 따라 어찌어찌 가면 지금은 사라진 '과수원주유소'와 만났고 그 뒤쪽에 있는 아세아시멘트 사택 중 하나가 우리집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후문으로 하교할 때였다. 웬일인지 후문 앞에는 무리의 아이들이 한 청년을 둘러싸고 웅성대고 있었다. 호기심 많던 나는 그 무리에 합류했고 그러자 그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소림사에서 왔으며 제자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내용의 말을.. 2025. 5. 19. 이적, 김동률의 <카니발>을 아시나요? 비슷한 연배라면 알겠지만 1997년, 가수 이적과 김동률은 '카니발'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다. 아쉽게도 동명의 앨범 한 장만을 남기고 활동을 종료했지만 앨범 속 명곡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97학번인 나는 대학 생활의 시작을 카니발과 함께했다. 거 왜 어떤 노래를 들으면 특정 시절의 장면과 풍경들이 떠오르는 경험, 대부분이 있을 거다. 나에겐 카니발의 노래들이 그렇다. 아마도 스무 살의 시작, 그리고 처음으로 고향과 부모님을 떠나 낯선 공간에 터를 잡으며 느꼈을 설렘과 긴장감이 함께해서가 아닐까. 카니발의 노래와 떠오르는 장면들을 몇 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그땐 그랬지이제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된 나이였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중고등 시절을 추억하곤 했다.. 2024. 11. 26. 자동차 변천사 10년 만에 차를 바꿨다. 칫솔 바꾸듯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실행에 옮기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 딸들도 커가면서 가족에서 친구로, 그들의 준거 집단이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말인즉, 아이들과 함께 놀러 다닐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을 더 모아서 사겠다는 이유로 나중에 차를 산들 아이들은 이미 가족보다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이 이쯤에 미치자 바로 차 예약을 걸었고, 그게 작년 4월 17일이었으니 근 10개월 만에 차를 받게 된 것이다. 학생과 백수 때는 물론이고 2005년에 취업을 하고도 근 1년 간은 차 없이 생활했다. 회사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기 때문에 차의 필.. 2024. 2. 18. 20대 주거 변천사 며칠 전 친절한 페이스북은 12년 전 오늘의 기록이라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예성세경아파트 103동에 살 때의 사진이었다. 나름 열심히 청소를 했고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올린 사진 같은데, 이불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축 처진 침낭과 커버를 잃어버린 덕에 (쓸데없이) 스릴 만점이었던 선풍기의 모습이 애처롭다. 정주 여건이 쾌적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랬기에 저 공간에서 소중하고 다이나믹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하기 마련인데 돌이켜 보면 스무 살에 서울 생활을 시작한 후 결혼 전까지의 이사 과정이 흥미롭다. 믿고 있던 충북학사(당시는 개포동에 있었다)에서 떨어지면서 부랴부랴 친구 따라 외대 앞에 하숙집을 잡았고 그 .. 2023. 6. 30.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잠실의 추억 2001년 말인지 2002년 초인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잠실의 날씨는 화창했고 정장 차림의 서울 시티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잰걸음으로 정신없이 내 앞을 오가는데, 그 모습이 역동적이면서도 애처로웠다. 2001년 6월에 제대한 나는 군인과 민간인 사이 그 어디 즈음에 있으면서 재사회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누군가와 어깨라도 부딪힐라치면 '죄송합니다' 보다 '병장! 강창묵!', 관등 성명이 먼저 튀어나왔고, 말을 못 들었을 땐 '예? 뭐라고요?'라고 되묻지 못하고 '잘 못 들었습니다!'를 외쳤다. 그렇게 실수하고 고쳐 가며 복학 전까지 고향인 제천의 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4, 5개월 간의 알바를 끝내고 쉬면서 복학을 준비할 때쯤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녀석은 제대 후.. 2023. 4. 7. 충북학사의 추억 지금은 동서울관과 서서울관으로 나뉘어 여의도와 중화동에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다지만, 라떼의(latte is horse) 충북학사는 개포동에 6층짜리 건물로 있었다. 충북학사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충북의 학생들을 위해 충청북도가 서울에 만든 기숙사다.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충북의 인재 양성소라 할 수 있는데, 나와는 매우 결이 다른 공간이지만 운 좋게도 군대 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생활했다. 처음 지원했을 때는 (당연히) 떨어졌고, 친구와 외대 앞에서 하숙을 하며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TO가 생겼으니 올 테면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숙비의 반도 안 되는 기숙사비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도곡역까지 1시간이 넘는 등하굣길이 부담스러웠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2021. 10. 1. 크리스마스이브와 빨간 하이힐 1.이십 년이 더 된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1997년 아니면 98년의 크리스마스이브였을 것이다. 나름 차려입는다고 차려입은 우리 셋은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에서도 성대 앞의, 가격은 싸고 양은 많기로 소문난 술집을 찾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테이블에는 저렴하지만 양은 푸짐한 감자튀김 세트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빨간 하이힐을 만난 게 이곳인지, 이곳을 나와 2차로 찾은 술집에서 인지는 헷갈리는데 확실한 건, 우리 셋은 입구 쪽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빨간 하이힐과 그녀의 일행은 우리를 등지고 안쪽 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스툴 밑으로 보이는 새빨간 하이힐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그렇다. 얼굴도.. 2020. 12. 26. 부치지 못한 편지 메일 발송 작업을 마치고, 스팸 및 광고성 메일들을 삭제하며 정리하다가 실수로 '임시보관함'을 클릭하게 되었다. 다시 편지함으로 이동하려는데, 어라? 두 개의 메일이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2003년에 작성해 놓고 보내지 않은 편지가... 하나는 입사지원서였고, 다른 하나는 주동황 교수님께 보내는 메일이었다. 차마 교수님께 '부치지 못한 편지' 속에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자존심 따위 다 버린, 비굴함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26살 대학생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릎 꿇고 학점 구걸하는 모습에서 연민과 처연함까지 느껴진다... 뜻밖의 발견에 오랜만에 웃었지만, 당시는 얼마나 절실했으면 저런 편지까지 썼을까... (물론 보내지는 못했지만...) 2.. 2014. 2. 1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