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2021년~2025년103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어제 도착한 수경 재배용 스노우사파이어와 스파티필룸에게 줄 영양제를 사기 위해 다이소에 들렀다. 그리고 간 김에 샐러드 채소인 루꼴라, 케일, 로메인의 씨앗을 샀고 집으로 돌아와 테라스에 있는 화분을 정리하고는 정성스레 심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지난주, 테라스 한 켠 구석에 심어 놓은 튤립이 부지런히 싹을 키워가고 있었다. 봄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으며, 모든 것이 평화롭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비로소 오늘부터 나의 일상은 정상을 되찾았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전국에 생중계된 탄핵심판에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주문을 낭독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최욱도 울고, 오윤혜도 울고, 나도 울었다. 당연한 결과이고 상식.. 2025. 4. 4. 충주 회동 작년 12월 14일, 그러니까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국회의 두 번째 표결이 있던 그날이었다. 여의도 탄핵 집회에 참석 후 라 명명한 대학 지인들 모임에 합류했다(초창기 멤버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모임 참석도 오랜만이었고 잠원이라는 동네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는데,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탄핵소추안 투표 결과를 기다리며 TV 속 우원식 국회의장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적 의원 300명 중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식당 안에 울릴 만큼 정적이 흘렀다.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와!!!!!”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던 미지근.. 2025. 4. 1. 야속한 비 빗방울이 흩날린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어중간한 비다. 며칠째 경북과 남부지역에는 미증유의 동시다발 산불이 발생해 재난 지역이 선포되고, 소방헬기가 추락하였으며, 30명 가까운 주민이 유명을 달리했을 뿐만 아니라 수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와 돌풍은 어렵게 꺼놓은 불씨를 되살리며 산불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이 비가 야속하다. 이왕 오는 거 장대비를 퍼부어 산천에 덮친 화마를 잠재우고, 그리하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줬으면 좋겠건만, 이런 비로는 불가능하다. 자연은 무섭다. 사계절 멋진 풍광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휴식을 주는 듯하지만, 그 위력을 과시할 때는 걷잡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자본과 개.. 2025. 3. 27. 자축! 입사 20주년 2025년 3월 2일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온 가족이 교회에 갔다. 예배 시간에는 지금까지 무탈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머리 숙여 기도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곤 하는데, 그런 이유는 아니고, 다만 오늘이…입사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3월 2일, 어색하고 후줄근한 정장 차림에 긴장된 발걸음으로 호암동 680번지로 향했다. 당사자인 나에게 취직은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지만,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충주MBC 입사는 어머니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1월쯤이었을 거다. 졸업 후 1년 간 백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던 시기였고,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 2025. 3. 2. 불면증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두 쪽 나며 뚝 떨어진 건 아니고 서서히 안개처럼 다가와 몇 달 전부터 나의 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도 잠을 못 자다 보니 '요즘 너무 편한 삶을 살고 있는 건가' 물어도 해 봤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일상이 녹록지 못했다. 불을 끄고 누워 30분 내에 승부를 못 보면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핸드폰으로 수면 음악을 틀어 놓기도 하고,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듣던 수면 동화를 듣기도 하지만 소용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쉬이 잠 못 드는 건 침대맡에서 충전 중인, 수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핸드폰 때문이다. 조금만 잠이 안 와도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이것저것 뒤적거린다. 그리곤 다시 잠을 청하는 건데, 핸드폰을 집는 순.. 2025. 1. 27. 글루미 2025 그 어느 해보다도 우울하게 새해를 맞이했다. 작년 12월 3일, 개념 없는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 선포와 군홧발의 무자비한 침탈 속에서 극적으로 성사된 국회의 계엄해제, 대통령 탄핵안은 가결되었고 그럼에도 내란수괴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는 세력들의 작태를 보며 깊은 분노 속에서 지내는 요즘이다. 이런 와중에 너무나 안타까운 제주항공 참사가 있었고 한 번의 술자리였지만 대화를 나누며 교감했던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은 지금도 깊은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다. 2025년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예배에서는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차디찬 공항 바닥에서 새해를 맞이할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역사는 정반합으로 발전한다지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불의하고 반헌법적이며 비상식적이다. 분노의 크기만큼 무력감이 밀려온다. 과연 세상은.. 2025. 1. 6. 1년 묵은 약속 “나중에 촬영 다 끝나면 이거 나한테 줄 수 있나유?”2023년 10월쯤이었다. 한창 시루섬 다큐를 촬영하던 때였고 그날은 당시 시루섬 주민이었던 어르신 댁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긴 질문과 답이 오간 후, 어르신은 인터뷰에 사용한 시루섬 사진을 가리키며 이처럼 말씀하셨다. 옛 고향 모습이 담긴 사진을 처음 봤을뿐더러 물속에 잠겨버린 고향의 모습을 선명한 항공사진으로 접하니 너무 반갑고 그립다며 조심스럽게 부탁하셨다. “약속할게요, 어르신. 촬영 다 끝나면 꼭 가져다 드릴게요.”손가락을 걸진 않았지만 꼭 그러리라 맘속 깊이 다짐했다. 이날 이후로도 촬영은 계속됐고 편집과 후반 작업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끝에 올 1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방송을 마쳤다.그렇게 방송을 낸 후 또다른 일상이 계속되었지만.. 2024. 12. 18. 이적, 김동률의 <카니발>을 아시나요? 비슷한 연배라면 알겠지만 1997년, 가수 이적과 김동률은 '카니발'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다. 아쉽게도 동명의 앨범 한 장만을 남기고 활동을 종료했지만 앨범 속 명곡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97학번인 나는 대학 생활의 시작을 카니발과 함께했다. 거 왜 어떤 노래를 들으면 특정 시절의 장면과 풍경들이 떠오르는 경험, 대부분이 있을 거다. 나에겐 카니발의 노래들이 그렇다. 아마도 스무 살의 시작, 그리고 처음으로 고향과 부모님을 떠나 낯선 공간에 터를 잡으며 느꼈을 설렘과 긴장감이 함께해서가 아닐까. 카니발의 노래와 떠오르는 장면들을 몇 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 그땐 그랬지이제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된 나이였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중고등 시절을 추억하곤 했다.. 2024. 11. 26. 환절기, 장례식장 나는 지금 전남 광양으로 향하는 스타렉스 안에서 선잠을 자다가 휴게소에 들른 후 정신이 말똥말똥해진 나머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아침, 청주 사옥에 도착하자마자 ‘띠리링’ 알림이 울렸다. 후배 피디의 시부 상을 전하는 회사 문자였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세 분의 부고를 접한다. 첫 부고는 태안으로 2박 3일 캠핑을 갔던 첫날 저녁에 받았다. 친한 대학 동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다음 날 아침, 가족들을 캠핑장에 두고 전남 구례로 향했고 해거름녘에야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부고는, 제대하고 복학 전까지 마트 알바를 했는데 그때 정육 코너를 담당하던 형님의 부친상이었다. 알바를 그만두면서 연락이 끊겼다가 취직을 하고 촬영 현장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다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2024. 10. 28. 사람이 가려움 때문에 죽을 수 있겠구나 아내에게 어깨 안마를 받고 있었다. 나이 불문 월요일은 피곤한 날이다. 특히 금요일부터 2박 3일로 캠핑을 다녀온 후라 더욱 그랬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텐트를 치며 고생한 남편이 안쓰러웠는지,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군소리 없이 어깨를 주물러줬다. 앓는 소리와 함께 안마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가려웠다. 흰머리 날 때 머리가 가렵다는 말이 있던데, '이제 나도 멋진 백발의 중년이 되는 건가?' 하며 긁적이는데, 어라? 이건 좀 심한데? 가려움은 순식간에 머리에서 얼굴로, 얼굴에서 상체로 번져갔다. 지르텍을 먹었는데도 호전이 없어 찬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기 밑에 있을 때는 다소 완화되는 것 같더니 물기를 닦으면 다시 재발했고 설상가상으로 긁은 부위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르텍을 하나.. 2024. 10. 22. 오늘부터 1일~☝️ 평소와 다른 아침의 첫날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의 연속인데 다를 게 뭐가 있겠냐마는, 억지로 만든 틀린그림찾기의 이해할 수 없는 정답처럼 작은 차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새벽 운동이다. 단지에 있는 헬스장을 5년째 못 본 척 지나치다가 월요일 퇴근길에 관리사무소에 들러 등록했다. 5년이 채 안 된 아파트의 헬스장이라 기구도 새것과 다름없었고 구성 또한 여느 헬스장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한 달에 만 원이면 이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개 닭 보듯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거다. 새벽 5시 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먼저 떠졌다. 반드시 운동을 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잠자는 육신을 알어서 깨웠나 보다. 솔직히 말하면, 화요일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게 원래 계획.. 2024. 10. 17. 16일간의 때늦은 여름휴가 2005년 입사 이후 2주가 넘는 기간을 휴가로 보낸 건 19년 만에 처음이었다. 휴가 낸 건 6.5일에 지나지 않는데 주말과 추석 연휴가 맞물리면서 16일이라는 긴 휴가로 거듭났다. 휴가를 내며 살짝 눈치가 보였으나 생각해 보니 이건 엄연히 애들 방학 때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못 가며 치열하게 일했던 지난 여름의 보상이자 권리였다. 맘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휴가 동안에는 급박한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면 회사 단톡방은 무시했고 회사와 단절을 시도했다(물론 쉽진 않았다). 이번 휴가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실행에 옮기는 게 핵심 목표였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풀었고 양가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며 갑작스럽게 부친상을 당한, .. 2024. 10. 3. 양보다 질 "오늘 저녁 먹고 둘째 자전거 연습시키는 거 어때?" 퇴근 셔틀을 타면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애 둘과 치고받으며 하루를 불태웠을 아내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답장이 왔다. "ㅇㅇ" (자음 두 개만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은 위대하다.) 저녁을 먹고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사실 둘째는 몇 달 전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그 후 꾸준히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날 이후로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가질 못했고, 배우다 만 상태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이는 전보다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져 있었다. 그럼에도 몸은 기억했다. 화려하게 혼자 탈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번 타다 보니 연습을 멈췄던 그때의 몸놀림이 나왔다. 중간중간 몰래 손을 놓았고 그래서 넘어지.. 2024. 9. 2. 마침내 끝... 시원섭섭함. 언뜻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심정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로 이만한 게 없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여정이 어젯밤에 2부 방송이 전파를 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실 아직 정산과 기타, 손은 많이 가지만 티는 안 나는 일들이 남아있지만,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작업은 끝이 났다. 어딜 가든 꼬리표마냥 따라붙었던 시루섬을, 때론 동격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그 섬을 마침내 내려놓으려니 묘한 감정이 든다. 그 감정을 단어로 치환하면 '시원섭섭함'이다. 어젯밤. 알 수 없는 이유로 몇 주째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TV 때문에 처갓집에 가서 본방을 사수해야 했다(물론 1부 때도 그랬다). 방송을 다 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2024. 8. 30. 크라잉넛 며칠 전 오랜만에 크라잉넛 형님들의 유튜브 라이브 공연을 봤다. 코로나19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시절, 공연할 무대가 사라지자 형님들은 주기적으로 유튜브에서 라이브 공연을 해 왔다. 다시금 일상이 회복되고 나서는 왕성한 오프라인 공연과 방송 활동을 이어갔는데, 정말 오랜만에 유튜브 라이브 공연을 한 것이다. 이날의 유튜브 라이브는 신곡 발매 기념 공연이었다. 손바닥만한 핸드폰으로 라이브를 보면서 연신 '이 형님들 역시 대단하다!'며 탄성을 질러댔다. 올해로 29년 차 밴드. 명실상부 조선 펑크의 선구자임에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작은 라이브 공연장에서 캔맥주를 마시고 관객과 호흡하며 열정(노익장?)을 발산했다. 이 정도 연차의 중견밴드가 카메라를 설치할 공간조차 없는, 그래서 위층에서 내려 찍을 수밖에.. 2024. 6. 28. 동서울행 버스 김창완 선생님의 신간 를 몇 장 넘기다가 도로 넣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 다 읽어버릴 요량이었는데, 선생님의 따뜻하고 포근한 문체를 담아내기엔 지금 내 맘이 녹록지 못한 탓이다. 글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글자만 읽는 느낌이랄까. 출발하기 전에 기사님은 중부고속도로가 막혀서 경부고속도로로 가겠다며 바뀐 경로와 이유를 설명해 줬다. 내일이 석가탄신일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나 보다. 나 또한 그중 하나지만 말이다.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대학 선배 형이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내일이 휴일이고 하니 지인들은 부담 없는 오늘로 날을 잡았고 나도 꼭 함께하고 싶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만큼 형이 간절히 보고 싶었다기보다 쳇바퀴처럼 회사, 집을 오가는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일.. 2024. 5. 14. 2024년 어버이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줄게." "난 없어~!"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며 던진 '오늘 어버이날인데, 뭐 없어?'라는 질문에 돌아온 첫째와 둘째의 대답이다. '너는 어린이날에 선물 받을 거 다 받고, 어버이날에는 아무것도 없으면 이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며 둘째에게 따져도 녀석은 막무가내였고 결국 출근 셔틀 시간에 쫓겨 실랑이를 접고 현관을 나섰다. 어제 회식의 숙취와 지난한 업무,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다시금 퇴근 셔틀에 몸을 실었다. 피로가 풀리기는커녕 되려 눈감은 시간만큼 피곤이 쌓이는 쪽잠을 자며 한 시간 반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별 기색이 없던 아이들은 밥상머리에 앉자 '하나 둘 셋!' 하며 뒤춤에 숨겼던 걸 내밀었다. 담임 선생님의 노고가 느껴지는 어버이날 카드였는데, 아빠 .. 2024. 5. 8. 트렁크 정리의 미학 지난 주말에는 올해 들어 첫 캠핑을 다녀왔다. 큰 딸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한 캠핑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차를 바꾸고 처음 캠핑 짐을 싣는 것이라 의미 있었다. 차를 바꾼 이유는 전에 타던 차가 작아서 캠핑이라도 갈라치면 루프백을 달아야 했고, 아이들 자리는 짐으로 가득 차, 테트리스 블록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즐겁자고 가는 캠핑인데 아이들에겐 오가는 길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좀더 돈을 모은 후 차를 살까도 고민했지만, 그때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우리랑 놀아줄지가 의문이었다. 뭐든 시기가 중요한 법. 그래서 큰맘 먹고 차를 바꾼 것인데, 막상 짐을 싣다 보니 자리가 모자라긴 마찬가지였다. 그저 루프백을 달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억척스럽게 트렁크 문을 닫고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2024. 4. 9. 뜬금없이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회사를 나섰다. 4월 들어서 비 내린 어제 하루 빼고는 매일 점심 후 산책에 나서고 있다(사실 그래봤자 3일째다). 좋은 산책로는 아니지만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봄꽃들이 경쟁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어 눈이 즐거운 요즘이다. 이어폰 너머 달팽이관을 뒤흔드는 크라잉넛의 샤우팅은 끄물끄물한 날씨 속에서도 리듬을 타며 걷게 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갑작스레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뜬금없어서 다소 당황했다. 먼저 대학시절 함께 학생회를 했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꽃을 보고 그 형이 생각났을 리는 만무하고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급작스럽게 머릿속이 형의 모습으로 채워졌고 이는 형의 근황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사실 나란 놈이 살갑지 못해서 손윗사람에게.. 2024. 4. 5. 자동차 변천사 10년 만에 차를 바꿨다. 칫솔 바꾸듯 쉬운 결정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실행에 옮기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 딸들도 커가면서 가족에서 친구로, 그들의 준거 집단이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말인즉, 아이들과 함께 놀러 다닐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을 더 모아서 사겠다는 이유로 나중에 차를 산들 아이들은 이미 가족보다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이 이쯤에 미치자 바로 차 예약을 걸었고, 그게 작년 4월 17일이었으니 근 10개월 만에 차를 받게 된 것이다. 학생과 백수 때는 물론이고 2005년에 취업을 하고도 근 1년 간은 차 없이 생활했다. 회사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기 때문에 차의 필.. 2024. 2. 18. 제우회 신년 모임 현재 우리 회사는 격주로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에는 4시간만 근무하고 퇴근하라는 건데, 수 년째 계속되고 있는 임금 동결에 따른 나름의 임금 보존책이라 하겠다. 2주마다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것 외에는 딱히 이 제도의 덕을 본 게 없었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정말 요긴하게 잘 사용했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신년회가 그날이었는데, 4.5일제 덕분에 여유롭게 올라갈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이나 그 근교에 살고 있다 보니 모임 역시 서울에서 자주 하게 되는데, 충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시간이 쉬이 나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고 약속 장소인 강남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넘.. 2024. 1. 28. 점심 후 산책 일찍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건물 하나 없는 대로변을 지날 때는 칼바람에 얼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듯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돌아오니 '그래도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충주에 있을 때는 매일이다시피 점심 식사 후 호암지를 돌았다. 회사 바로 앞이라 가까웠고 약 40분에 걸쳐 한 바퀴를 돌면 3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걷게 되는데 적당히 땀도 나서 사뭇 운동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호암지를 돌 때면 눈이 즐거웠다. 산책로도 훌륭할뿐더러 멋진 나무들로 조경이 잘 돼 있어서 꾸준히 돌다 보면 연둣빛 새순이 올라오고, 단풍잎이 시나브로 붉어지는 등 계절이 바뀌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청주로 출근하게 되면서 더이상 호암지의 사계를 즐길 수 없게 됐지만, 선배를.. 2024. 1. 22. 시루섬, 기적의 그날 지난 1월 11일 목요일 밤 9시. 작년 한 해 준비한 다큐멘터리 ‘시루섬, 기적의 그날’이 전파를 탔다. 방송 당일까지도 눈에 거슬리는 게 보여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그렇게 모든 방송 준비가 끝났다 싶었는데, 퇴근하고 충주로 넘어오는 셔틀 안에서 다급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제작국장이었다. 통화 내용은 충주연주소의 CM이 많아서 1분 30초를 줄여야 한다는 것. 어럽게 찾은 평정심이 다시 무너졌다. 공들인 다큐를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본방을 청주에서 볼까도 살짝 고민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랬다면 내용을 모르는 사람 손에 의해 1분 30초가 잘려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한 군데 버릴 곳이 없었지만 집도의의 .. 2024. 1. 14. 과유불급 시작은 좋았다. 매끼 밥상 차리는 것도 일일뿐더러 특별히 새해 첫날이고 하니 동네 식당에서 외식을 하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아내는 흔쾌히 동의했고 몇 번 기웃거렸지만 매번 자리가 없어서 포기했던 동네 식당을 찾았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다소 이른 시간이라 다행히 식당은 한산했다. 이 가게의 주메뉴는 돼지김치구이인데, 우리 같은 가족 손님에 대한 배려인지 (어울리진 않지만) 돈까스도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먹기 딱 좋았다. 2024년도 잘 살아보자며 소주와 맥주도 시켰다. 소주 한 병에 맥주 세 병이면 소맥 한 세트가 완성되는데, 항상 마지막 맥주병이 바닥날 때쯤이면 서로 눈치를 보며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은 다음과 같다. 1. 여기서 끝낸다 2. 한 세트(소주 1병 + 맥주 3.. 2024. 1. 2.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