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온 가족이 교회에 갔다. 예배 시간에는 지금까지 무탈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머리 숙여 기도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곤 하는데, 그런 이유는 아니고, 다만 오늘이…
입사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 3월 2일, 어색하고 후줄근한 정장 차림에 긴장된 발걸음으로 호암동 680번지로 향했다. 당사자인 나에게 취직은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지만,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충주MBC 입사는 어머니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5년 1월쯤이었을 거다. 졸업 후 1년 간 백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던 시기였고,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반드시, 취업에 성공한다는 각오로 눈에 불을 켜고 취업 사이트를 살피던 매우 예민한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물으며 ‘TV를 보니 충주MBC에서 사람 뽑는다는 광고가 나오더라’며 지역의 취업 정보까지 전해주었다. 그냥 ‘알겠습니다’ 하면 될 것을, 팽팽한 긴장 속에 하루하루 살아오던 나는 그만 그동안에 쌓인 감정의 쓰레기들을 어머니에게 쏟아붓고 말았다. ’엄마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인터넷 통해서 다 알고 있으니, 제발 신경 끄시라‘는 식의 버리장머리 없는 말들을 뱉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상황이지만, 그때는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잘 벼려진 칼끝처럼 날카로운 상태였다. 정신을 차리곤 다시 전화 걸어 어머니께 사과드렸고, 충주MBC의 신입사원 모집 요강을 살펴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다시 지역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충주MBC의 신입사원 공채에도 별 관심이 없었던 건데, 아무래도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도 있고 해서 지원 서류를 보냈고 그 결과로 지금의 내 모습이 있는 것이니, 어머니의 작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해마다 창사기념식 때면 근속상을 시상한다. 입사 초에는 20년 근속, 30년 근속상을 수상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어떻게 한 회사에 이십 년 넘는 시간을 몸담을 수 있지?' 감탄하며 그 시간이 억겁의 세월처럼 크게 느껴졌는데 막상 입사 20년이 되고 보니, 출발지에서 도착지를 볼 때는 엄청 멀어 보였지만 도착해서 돌아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인생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앞선 10년은 혼자라는 자유를 만끽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방송을 고민하며 삶을 고찰하는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10년은 가정을 꾸리고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전보단 다소 무거워진 삶의 무게를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했다. 일로는 헤어졌지만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챙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 같은 공간에 있어도 업무 때문이 아니면 연락 한 번 할 일이 없는 사람도 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소중한 인연을 오래 이끌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뭐든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 관계도 서로의 노력이 없이는 계속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이런 관계 속에서도 매년 3월 2일이면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입사 N주년을 자축하는 동기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6명의 동기가 있었지만, 해를 거듭하며 퇴사와 이직하는 이들이 늘었고 결국은 나를 포함 세 명만이 남아 05사번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셋 중 한 친구는 건강 상의 이유로 술을 멀리했고, 그러다 보니 그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아쉬운 대로 술자리를 이어갔다.

만약 사진 속 동기 녀석이 청주로 이사 가지 않았다면, 혹은 내가 충주를 고집하지 않고 청주로 이사해서 녀석과 같은 공간에 살았다면, 우린 지금도 10년 전처럼 술을 마셔댔을지 모른다.
입사 20주년인 오늘도 어김없이 사진 속 동기와 만나 충주에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를 찾아다니며 자축할 계획이었으나, 동기의 가족 여행이 잡히는 바람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연기했다.
이거 참, 새롭다.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어색하고, 그 어색한 시간의 간격만큼 늙었을 나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고, 그사이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감사하다.
입사 30주년을 회사에서 맞이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나,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그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야겠다.
스물여덟이
마흔여덟이 되기까지
고생 많았다~
👏👏👏
'가끔 방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승진 (0) | 2025.10.01 |
|---|---|
|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0) | 2025.09.23 |
| 마침내 끝... (0) | 2024.08.30 |
| 시루섬, 기적의 그날 (4) | 2024.01.14 |
| 명예퇴직과 마지막 회 (0) | 2022.1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