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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방송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by KangP_ 2025.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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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콘서트를 연출할 때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뽑아 보면 맑은 날씨에 깔끔하게 진행된 경우도 많지만(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스태프들의 기억 속에는 ‘강창묵=비’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때는 비 오는 것에 대한 책임을 피디에게 전가하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며 ‘이 비가 왜 나 때문이냐’며 따지기도 했는데, ‘웃자고 한 말에 발끈한다’는 말을 되받기 일쑤였다. 농담이라는 건 알지만 억울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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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건 논리나 확률의 문제가 아닌 이미지의 문제였다. 입사 초반, 내가 야외에서 무언가를 할 때면 유독 비가 많이 왔던 게 초두 효과가 되어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각인되어 버린 거다.

우리 회사에는 피디가 덕을 쌓지 못하면 비가 온다는 납득하기 힘든 속설도 있다. 부덕의 소치라는 거다. 졸지에 나는 덕을 쌓지 못한 피디가 되어 있었다.

연차가 올라가고 그만큼 삶에 굳은살이 박히면서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흘려버리고 있는데, 몇 주 전의 가요제를 녹화 때 어김없이 그분(?)이 오셨다.


녹화 전, 모양을 바꿔가며 유영하는 시커먼 구름떼를 보며 기상청 등 네 곳의 날씨 예보를 새로 고침 하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다행히 네 곳 모두 행사하는 동안에는 비 예보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비는 쏟아지고 말았다. 3시간 내내.

실성한 사람처럼 헛웃음을 쳤다. 지난 20년 간의 PD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명실상부, 전설이 된 기분이다.

‘부덕의 소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유행가 노랫말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도 비가 올 때면 나를 떠올릴 누군가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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