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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방송

승진

by KangP_ 2025.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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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승진 인사가 났다. 그 명단에는 내 이름도 있었고 이름 옆에는 ‘부장’에서 ‘부국장’으로의 승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부국장은 국장의 전 단계지만 통상 부국장부터 ‘국장’으로 불린다.

강 국장이라니… 위화감이 든다. 처음 입사했을 때 봤던 국장님들이 떠오른다. 백발의 머리에 기지바지를 배꼽 위까지 올려 입고, 윗도리는 어김없이 바지 속 깊이 쑤셔넣어 똑같이 생긴 허리띠를 두른 모습들… 말 그대로 구성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었다.


속절없는 세월 속에 어느덧 나 또한 그 위치에 놓였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축하한다’며 인사치레를 하지만 ‘이게 과연 축하 받을 일인가’ 하는 생각에 고맙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근속 20년과 부국장 승진… 요즘 같은 시절에 한 회사에 20년을 몸담고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국장이라는 호칭은 영 마뜩잖다. (이미 국장을 달고 있는 선배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뒷방 늙은이가 된 기분이랄까.

국장이라지만 부서에 후배라곤 둘밖에 없는, 초고령 조직이다 보니 여전히 왕성하게 현업을 뛰어야 한다는 건 위로일까, 가슴 아픈 지역방송의 현실일까.

퇴근하고 아내에게 승진 소식을 전하며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내는 승진에 누락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냐며 핀잔을 줬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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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이란 호칭을 고인 물과 등치 시키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내 말처럼 제때 시기에 맞는 직급에 오르는 게 올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약 반대로 이번 진급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면, 누락에 따른 좌절과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있었을 거다.

결국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 자식을 둔 부모 이야기처럼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관점의 문제였다. 20년이라는 시간과 국장이라는 직급만큼 연륜과 노하우가 축적되었고 이는 보다 농익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게 아닌가. 물론 시간과 능력이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크기만큼 몸으로 체화한 것들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나이에도 현장에서 관록을 발휘했던 사극의 대가, 이병훈 국장님이 떠오른다.

어찌 되었든 강 국장이 되었다. 처음 부장으로 불릴 때의 어색함처럼 호칭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다. 국장이라는 직급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다 보면 잘 발효된 술처럼 또다른 가치가 발현될 날도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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