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762 원치 않던 2박 3일의 여행 #.4 (#3에 이어서) 11월은 해가 짧아서 오후 6시가 되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토요일 밤이지만 캠퍼스는 여전히 청춘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B는 상상도 못했을 거다. 농담처럼 던진 자신이 말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를 말이다. 그는 놀리 듯, 올 테면 와 보란 식으로 세 치 혀를 내둘렀는데, 그 말은 숙취 속에서 꿈틀대던 무모함에 불을 질렀고 결국 우리는 그의 모교에 와 있었다. 거성반점에서 해장을 마친 후 내비게이션에 B의 모교를 찍었다. 강릉에서 대전에 있는 B의 모교까지는 4시간 정도 소요됐다. 평일 같으면 3시간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아무래도 주말이다 보니 길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무모하게 납치로 시작된 강릉 여행은 또다시 무모하고 충동적으로 대전행으로 이어졌다. 돌.. 2026. 4. 7. 원치 않던 2박 3일의 여행 #.3 (#2에 이어서) 녀석은 후진을 하려 했다. “뭐 하는 짓이야, 안 돼!!”나와 C는 동시에 소리쳤다. 라이트도 켜지 않은 상태로 후진하다가 뒤에서 차라도 나타난다면 더 큰 사고가 날 게 불 보듯 뻔했다. 일편으론 A가 후진을 선택한 이유가 이해는 갔다. 당시 그의 흰색 YF소나타는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새 차였다. 이제 막 할부를 시작한 새 차가 멧돼지에게 들이받히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을 거다.그렇게 셋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때!!! 돌기둥처럼 서 있던 멧돼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녀석은 콧김을 내뿜으며 우리 차를 응시하고 앞으로 몇 발 내딛는 듯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가 나타났던 곳의 반대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도로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때다 싶어 A는 잽싸게 기.. 2026. 4. 3. 원치 않던 2박 3일의 여행 #.2 (#1에 이어서)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거칠게 저항했다. 고성을 지르기도 하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겠다며 협박도 했지만, A와 C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겠어. 순순히 따라갈 테니 어디로 가는지는 좀 알려줘.”“강릉요~ 캬캬캬캬캬~”그렇게 나는, 똑바로 서도 기마 자세의 형상을 띄게 하는 회색 츄리닝 바지에 청자켓을 걸치고 강릉으로 향하는 차 안에 앉아 망연자실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금요일 밤의 영동고속도로는 예상과 달리 한산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니, 납치의 형태를 뗬지만 오랜만에 밤공기 맡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밤바다를 배경으로 신선한 바다회와 함께 시원한 소맥을 목구멍으로 넘길.. 2026. 4. 2. 원치 않던 2박 3일의 여행 #.1 때는 2010년 11월. 날짜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금요일이었다. 당시 서른세 살 열혈청춘이었던 나는 일과 음주를 병행하며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였다. (언제나 그랬듯) 그날도 전날의 과음과 그로 인한 숙취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보며 속을 달래고 있었다.얼마나 그렇게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이름을 보니 A였다. A는 다른 방송국의 기자다. 동기인 B기자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 후배인 C피디와 함께, 우리 넷은 잘 어울려 다녔다(잘 어울려 다닌다는 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술 마시고 다녔다’의 완곡한 표현이다).육감으로 전화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필시 술 먹자는 것이리라. 전화를 씹을 수는 없고 하얀 거짓말을 했다.“.. 2026. 4. 1.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큰딸이 자신의 방을 갖고 싶다고 한 건 작년 하반기부터였다. 아직 혼자 자는 게 자신 없는지 다음날이면 말을 번복하곤 했는데, 학년이 올라가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최근에는 정말 마음을 굳힌 듯했다. 지금까지는 두 개의 방을 하나는 공부방으로, 다른 방은 침실로 쓰고 있었다. 두 딸을 위한 침실이지만 엄마까지 껴서 셋이 자는 공간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됐지만 말이다. 방을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 지난 주말, 실행에 옮겼다.침대를 다른 방으로 옮기려면 분리를 해야 한다. 지금의 모습을 사진 찍어 놓고 육각렌치로 볼트를 풀러 각 면을 분리한 후, 다른 방으로 하나하나 옮겨 역순으로 조립하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무게는 또 좀 무거.. 2026. 3. 9. [youtube] 금연에 실패한 사실을 두 딸이 알아버렸다 아빠를 쥐잡 듯이 혼내는 두 딸과 퇴로를 찾는 아빠…ㅋㅋㅋhttps://youtu.be/xS8KhAs_ljg?si=-YjvPAyZvhoWjakc 아빠 금연 실패! 초등학생 딸들의 무시무시한 팩폭 논리 | 혼나는 중 | 앞으로 잘 할게애플워치에 새로운 금연 일수를 띄워놨다가 큰 딸에게 흡연 사실을 또 걸렸다...아주 많이 혼났다...#2026년 #가족브이로그 #가족영상 #가족vlog #육아 #parenting #두딸아빠 #아빠믿지 #강창묵 #KangP #금www.youtube.com 2026. 2. 3. 공덕역 4번 출구 옆 고깃집 '하우돈'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2004년.공덕역 4번 출구로 나와 우측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하우돈'이라는 고깃집이 있었다. 과 선배 몇몇이 의기투합해 개업한 식당이었는데, 당시 졸업과 동시에 백수로 전락한 나는 그곳에서 ‘스피드!!’를 외치며 서빙 알바를 했다.주급으로 받던 흰 봉투 속 알바비는 궁핍한 백수 삶에 단비와 같았다. 이곳이 남다른 이유는 여기서 일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지금까지도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장위동 반지하 자취방에서 구직 활동을 하고 오후가 되면 이곳으로 넘어와 밤 10시까지 식당 일을 했는데, 하루는 모 방송국 프로덕션에서 FD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됐고, 부랴부랴 없는 옷을 차려입고 여의.. 2026. 1. 16. 16만 원을 위한 사투 지난 12월 31일. 한 해의 마감과 새로운 해의 시작 사이에서 차분하게 온고지신의 자세로 하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싱크대 양념장이 고장났다(젠장). 레일이 내려앉으면서 이동을 부드럽게 해주는 작은 구슬들이 빠졌고, 양념장은 더 이상 여닫는 게 불가능해졌다. 신축 아파트라곤 하지만 5년을 살다 보니 하나하나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하필이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이런 시련이 닥친단 말인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서둘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아내 말을 빌리면, 주변에 양념장을 수리한 집이 몇 있는데, 사람 불러서 수리하는 비용으로 16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또한 처갓집도 최근에 양념장이 고장났으나 부품을 사서 장인어른께서 직접 고치셨다는 설명까지 더했다. 짜릿한.. 2026. 1. 5. 2026년을 맞이하며…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었던 2000년. 당시 군복무 중이었는데 때마침 불침번 근무를 서면서 2000년을 맞이했다. 내무실에서는 중대원들이 일직사관 몰래 숨죽여 타종 행사를 보고 있었고, 불침번인 나의 임무는 일직사관이 복도로 나오면 잽싸게 내무실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화려한 불꽃과 웅장한 음악과 함께 2000년이 밝았다. 어떻게든 뉴밀레니엄의 시작을 함께하고 싶었던 나는 창문 너머 내무실의 조그마한 브라운관 티브이 속 화면을 눈에 담기 위해 기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게 벌써 26년 전의 일이다. 2026년의 시작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맞이했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두 딸도 짜증내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물론 딴짓은 했지만 그게 어딘가). 예배당에 앉아 눈을 감고 고개.. 2026. 1. 1. 아내와의 점심 가끔, 그러니까 몇 달에 한두 번 정도 충주로 출근하는 날이 있다. 편집실을 쓸 일이 없고 서류 작업만 하면 되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인데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다. 충주로 출근하는 날이면 마음이 안정된다. 걸어서 7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짧은 출근 거리도 한몫하지만, 회사가 통합되기 전까지 십수 년 동안 충주가 근무지였으니 친정을 찾은 것 같은, 그런 기분 때문이다. 직원들로 북적대던 이곳은 통합 후 많은 기능이 청주로 옮겨 가면서 최소 인원만이 상주하며 근무하고 있다. 가끔 적막감이 들 때도 있지만 때론 이런 차분한 분위기가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충주로 출근할 때면 항상 아내와 점심을 먹는다. 평일에 아내와 점심을 함께하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매일 혼자 점심밥을 챙기면서 그녀가 .. 2025. 11. 27. 야구와 배달 기사 그를 본 건 지난 10월 22일이었다.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리던 날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 그날은 퇴근 후 야구를 보기 위해 몇몇 직장 동료들과 회사 근처 치킨집을 찾았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테이블을 벽면의 TV 방향으로 돌리는 열성을 보이며, 차분하게(?) 치킨에 소맥을 함께하며 대다수는 한화를, 한 명은 외로이 삼성을 응원했다.야구 때문인지 치킨집은 배달 주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사장님은 쉴 새 없이 치킨을 튀겨 댔고, 카운터에는 배달 나갈 치킨들이 쌓여 갔다. 우리 자리는 카운터 바로 옆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배달 기사들이 테이블 앞을 오가거나 우리 앞에 멈춰 서서 (시야를 가리며) 치킨을 기다리곤 했다.그때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걸어서 배달하.. 2025. 10. 28. 충주 석종사의 가을 2025년 10월 26일 석종사에서 이른 단풍놀이 내일부터 엄청 추워진다기에 겸사겸사 찾은 석종사 계단만 보면 가위바위보 일주일 후면 단풍이 볼만할 듯 연꽃의 고운 자태 오랜만에 콧바람 쐰 날 2025. 10. 26. 즐거운 낮술 오랜만에 즐거운 낮술을 했다. 남들 일하는 금요일 오후의 낮술이라 짜릿함이 더했다. 스무 살에 만났으니 어느덧 이십팔 년째 인연을 이어 오는 친구들과 강남터미널 건너편 상가의 지하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았다. 미식가인 친구는 터미널 근처 맛집으로 이곳을 추천했고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푸짐한 낙곱전골을 가운데 두고 잔을 부딪쳤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니 문득 친구들이 보고 싶어져서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급조한 번개였다.따로 떼어놓고 보면 비슷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셋은 대학에서 우연찮게 사조직을 결성하며 친해졌다. 학생회 활동을 함께했고 복학 후 장위동 반지하에서 같이 자취하며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한 친구는 사업 수완이 좋다. 십 년 남짓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장사를.. 2025. 10. 23. 추석과 유튜브 유난히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일찌감치 이번 명절에는 고향 찾지 말고 가족끼리 여행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명이 있었기에, 명절 전 미리 부모님을 찾아뵙고 우리 가족은 전라도 여행을 떠났다. 4박 5일 동안 순천, 여수, 보성, 담양, 군산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남은 연휴 내내 여행하면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며 보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출근 전까지 4편의 여행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기를 쓰고 편집했다. 사람 웃기는 게 직업인 개그맨들도 정작 집에서는 말이 없다던데, 촬영하고 편집하는 게 업인 나는 왜 억척스럽게 집에서까지 편집프로그램을 붙잡고 진땀을 빼고 있는 걸까?참고로 나는 유튜버가 아니다. 유튜브 채널을 운용하고 있으니 유튜버가 맞지 않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돈을 벌 목적으로 유.. 2025. 10. 14. 승진 며칠 전 승진 인사가 났다. 그 명단에는 내 이름도 있었고 이름 옆에는 ‘부장’에서 ‘부국장’으로의 승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부국장은 국장의 전 단계지만 통상 부국장부터 ‘국장’으로 불린다.강 국장이라니… 위화감이 든다. 처음 입사했을 때 봤던 국장님들이 떠오른다. 백발의 머리에 기지바지를 배꼽 위까지 올려 입고, 윗도리는 어김없이 바지 속 깊이 쑤셔넣어 똑같이 생긴 허리띠를 두른 모습들… 말 그대로 구성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었다. 속절없는 세월 속에 어느덧 나 또한 그 위치에 놓였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축하한다’며 인사치레를 하지만 ‘이게 과연 축하 받을 일인가’ 하는 생각에 고맙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근속 20년과 부국장 승진… 요즘 같은 시절에 한 회사에 20년을 .. 2025. 10. 1.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내가 콘서트를 연출할 때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뽑아 보면 맑은 날씨에 깔끔하게 진행된 경우도 많지만(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스태프들의 기억 속에는 ‘강창묵=비’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때는 비 오는 것에 대한 책임을 피디에게 전가하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며 ‘이 비가 왜 나 때문이냐’며 따지기도 했는데, ‘웃자고 한 말에 발끈한다’는 말을 되받기 일쑤였다. 농담이라는 건 알지만 억울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그렇다. 이건 논리나 확률의 문제가 아닌 이미지의 문제였다. 입사 초반, 내가 야외에서 무언가를 할 때면 유독 비가 많이 왔던 게 초두 효과가 되어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각인되어 버린 거다. 우리 회사에는 피디가 덕을 쌓지 못하면 비가 온다는 납득하기.. 2025. 9. 23. 마라탕과 행복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가 서울에서 교육이 있어서 나머지 세 식구가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오롯이 두 딸과 함께하는 시간인 만큼 뭘 할까 고민이 많았다. 아쉽게도 비 때문에 야외 활동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함께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은 그저,집에 있고 싶어 했다… 하다 못해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책이라도 보자고 해도 시큰둥할 뿐… 집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아이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둘이 인형 놀이 하겠다는 말에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며 환호성을 치고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겠지만, 오랜만에 엄마 없이 아빠와 셋이 보내는 시간인데 이런 식으로 보내기는 너무 아까웠다. 장고 끝에 한마디 던졌다.“점심은 나가서 마라탕 .. 2025. 9. 14. 사라진 일상 근 두 달 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못해도 일주일에 하나 이상의 글을 올리는 게 연초의 계획이었는데, 무참히 무너졌다. 몇 달째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럼에도 망중한을 이용해 간간히 블로그에 몇 자 적어 왔는데, 최근 두 달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일상이 사라졌다. 글쓰기는커녕, 퇴근 후 가끔씩 튕겼던 기타 연주도,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펼칠 여유도,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회사 일은 나 혼자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몰리는데, 사실 나뿐 아니라 부서원 모두가 과부하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일상이 사라지니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다. 대학에서 인연을 맺은 형인데, 이 양반은 회사 다니면서 책도 냈고, 블로그를 두 개나 운영하고 있으며, 꾸준.. 2025. 9. 9. 추억의 책가방 때는 1995년.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학교 급식이 없던 그 시절엔 점심시간이면 일찌감치 도시락을 먹어 치우고 운동장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신나게 땀 흘리고 교실로 들어오던 참이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반 복도에 아이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문득 아침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흘리듯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오늘 우리 학교에서 임하룡 편을 촬영한다." 방송인 임하룡 선생님은 제천고등학교를 졸업한 고교 선배다. ‘방송 촬영이라니, 그거 재밌겠군.’ 하고 무심히 넘겼는데 촬영 장소가 우리 반일 줄이야. 설명을 더하면, 당시 KBS에서 방영한 는 연예인이 만나고 싶어 하는 추억 속 인물을 찾아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찾고 싶은 사람과의 사연을 .. 2025. 7. 18. 천재와의 재회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천재’라는 말이다. 감탄사처럼 내뱉는 ‘오~ 천잰데?’ 따위의 말 말고 특정 분야에 남다른 실력을 타고난 사람을 이르는 그 ‘천재’ 말이다. 나는 못 들어 봤지만 주변에는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중학교 친구 A다.A는 글을 잘 썼다. 책벌레였던 그는, 당시 중학생인 우리에겐 이름조차 생소했던 대문호들의 작품을 이미 섭렵하고 있었다. 이런 바탕이 있으니 글을 잘 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그는 무협지를 즐겨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직접 무협 소설을 써서 연재하듯이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녀석의 흡입력이 있는 필력에 매료되었고, 애간장을 녹이며 다음 편이 나오길 손꼽아 기.. 2025. 7. 7. 관계의 어려움 오랜만에 예전에 알고 지낸 가수 매니저 이사님을 만났다. 겸사겸사 청주에 들른 김에 제작국장과 점심을 같이했고 나에게도 연락을 준 것이다. 가요 프로그램을 담당할 때는 많은 가수 매니저들로부터 연락을 받곤 했다. 안부를 물으며 언제 한 번 내려와서 식사 자리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대다수였고, 그 이면에는 자신의 가수를 무대에 올려 주길 바라는 본심이 녹아있었다.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가수의 방송 스케줄을 잡고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이들 본연의 업무 아니던가.가요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이런 류의 전화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많은 매니저들의 간곡한 부탁을 에둘러 거절하는 게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는데 어찌 보면 잘 된 건지도 모른다. 사실, 방송 일을 하면서 매니저들과.. 2025. 7. 4. 큰 딸과 여드름 퇴근하고 네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다가 4학년 큰 딸의 이마에 뿌려진 여드름을 봤다. 여드름이 난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앞머리를 내리고 다녀서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머리띠로 앞머리를 뒤로 넘긴 채 식욕 왕성하게 콩나물국을 마셔대는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오늘에서야 제대로 이마와 대면한 것이다. ‘여드름? 푸훗, 귀엽군’ 하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그러기엔 이마에 좁쌀이라도 쏟은 것처럼 여드름은 많았고 크기도 다양했다. 마치 중2 때 내 이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아빠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다며 해맑게 아이스크림을 빨던 아이가 어느덧 2차 성징의 시기에 와 있다.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조숙하다 보니 그깟 여드름 가지고 유난을 떤.. 2025. 6. 17. 통풍의 역습 방심하고 있었다. 망각한 채 제멋대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나를 잊지 말라는 물망초의 영어 이름(forget-me-not)처럼 예고 없이 그가 찾아왔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소중한 일상을 무너뜨리곤 했다. 나에게 통풍은 그런 존재였다. 물론 아직 통풍약을 먹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매년 건강검진 때마다 요산수치가 높게 나와서 언제 통풍이 발생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토요일, 그러니까 어제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른쪽 무릎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커졌고, 무릎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또한 줄어갔다. 관절에 급성염증이라도 생긴 건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주말이라 출근할 일도 없고 하여 하루만 더 .. 2025. 6. 15. 아내의 수술 어제 오후, 5일 동안 입원해 있던 아내를 모시고 내려왔다. 몸의 이상을 발견한 건 작년 12월, 건강검진 때다. 자궁초음파를 했는데 자궁에 낭종 같은 게 보인다며 3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3개월 후에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자궁기형종'이라며 많이 커져서 제거 수술할 것을 권했다. 급하게 강남차병원에 수술 예약을 했고, 그로부터 약 2개월 후인 지난 5월 28일에 입원을 했다. 수술 전날 입원하고 수술 후 3일 간 회복 시간을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즉 수술을 위해서는 5일 간의 입원이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5월 29일, 그러니까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이 수술 날이었다. 입원하는 날에는 회사 일 때문에 아내 혼자 상경해야 했지만 수술 당일에는 휴가를 내고 올라가 아내와 함께했다. 생전 처.. 2025. 6. 2. 이전 1 2 3 4 ··· 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