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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추억

추억의 책가방

by KangP_ 202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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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5년.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학교 급식이 없던 그 시절엔 점심시간이면 일찌감치 도시락을 먹어 치우고 운동장으로 달려가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신나게 땀 흘리고 교실로 들어오던 참이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반 복도에 아이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문득 아침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흘리듯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오늘 우리 학교에서 <TV는 사랑을 싣고> 임하룡 편을 촬영한다."
 
방송인 임하룡 선생님은 제천고등학교를 졸업한 고교 선배다. ‘방송 촬영이라니, 그거 재밌겠군.’ 하고 무심히 넘겼는데 촬영 장소가 우리 반일 줄이야.
 
설명을 더하면, 당시 KBS에서 방영한 <TV는 사랑을 싣고>는 연예인이 만나고 싶어 하는 추억 속 인물을 찾아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찾고 싶은 사람과의 사연을 재연 방식으로 보여 주며 추억을 회상하고 스튜디오에서 재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바로 그 재연 촬영을 우리 학교에서, 그중에서도 우리 반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창문 너머로 살피니 피디처럼 보이는 사람이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자, 한 명 더! 출연할 사람 한 명만 더!!”

순간 무슨 용기가 났는지 ‘저요!!’를 외치며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반 친구 대여섯 명과 함께 재연 엑스트라로 카메라 앞에 앉게 되었다. 소품 박스에서 꺼내 입은 옛날 교복은 신기했고, 시대극도 아닌데 안경까지 벗으라는 건 좀 의아했다.

촬영은 재미있었다. 전학 온 고등학생 임하룡이 친구들 앞에서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다가 교감 선생님께 걸리는 장면을 찍을 때는, 교감 역을 맡은 배우가 계속 NG를 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갓집에 다녀오느라 한숨도 못 자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연신 죄송하다고 굽신대는 모습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교실 신과 운동장에서의 졸업식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시내로 이동했다. 일과 시간에 닭장 같은 학교를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고등학생 임하룡이 빵집에서 여고생에게 다가가 치근덕거리는 장면과 수학여행 가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숙소에서 아이들을 이끌고 나가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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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 배우가 더 있다는 사실은 이때 알았다. 그중에는 빵집 신에 출연하는 여고생 역할의 배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발견한 나는 굳어버렸다.

천사를 보았다. 노래 가사처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시간은 멈춰 버렸고 칠흑 같은 어둠이 천지를 뒤덮으며 오직 그녀와 나에게만 눈부신 핀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17년을 살아오면서 이처럼 고운 처자는 처음이었다. 만화 주인공 ‘나디아’를 연상케 하는 까무잡잡한 피부는 매력적이었고 옛날 교복을 입고 수줍게 앉아 있는 모습은 황홀했다. 나는 그녀의 큰 눈망울 속에서 넋을 잃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다들 조용!! 슛 들어갑니다!!”

누군가의 고압적인 외침이 없었다면 나는 그 상태로 굳어 바위가 되어버렸을 거다. 밤까지 계속되는 촬영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는데, 뜨거운 기운이 모세혈관까지 퍼지며 나를 곧추세웠다.

“하이~ 큐!!”

빵집 촬영이 시작됐다. 내 두 눈과 머릿속은 오롯이 그녀로 가득 차 있었다. 중간중간 ‘하이~ 큐!’를 외쳤던 사람은 촬영을 중단시켰고 구릿빛 천사에게 다가가 무어라 나무랐다. 미안함과 당혹함이 뒤섞인 표정의 그녀는 죄송하다며 앞선 교장 역의 배우처럼 연신 굽신거렸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고 당장 뛰어들어가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저 조용히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촬영이 다시 진행되었다.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는 어린 임하룡 옆에서 발그레 부끄러워하며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나를 향한 것 같았고, 이런 생각은 더욱 숨막히게 했다.

“오케이~ 카아~트!! 시마이~~”(지금도 남아있긴 하지만, 당시 방송 용어는 대부분이 일본어였다.)

영원하길 바랐던 촬영이 끝나버렸다. 스탭들은 짐을 챙기느라 분주했고 우리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하지만 말 한마디 못 건네고 바보처럼 그녀를 보낼 순 없었다.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저, 저기요.”

아직 고민 중인 뇌를 무시하고 입이 먼저 움직였다. ‘누구? 나?’ 하는 표정으로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큰 눈도 나를 향했다. 헉!!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서 얼어버릴 줄 알았는데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 뚜벅뚜벅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북한 사투리와 유사한 특유의 제천 억양으로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악수나 한 번 합시다!"
 
이게 뭔 개소리지? 정신을 차리자 현타가 밀려왔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이미 내밀어 버린 오른손을 다시 거둘 수는 없었다. 악수에 응하지 않으면 그 손으로 뒤통수나 긁을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내 손을 잡는 게 아닌가. 좀 전에 봤던 발그레 부끄러워하며 미소 짓는 표정으로...
 
맞잡은 손을 조심스레 두어 번 흔들며 '만나서 반가웠고 조심히 올라가라'는 인사말을 전했다. 그리고는 돌아서 칼 루이스처럼 내달렸다. 친구들은 야유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고, 나는 그들 앞에서 오른손을 치켜들며 앞으로 이 손은 씻지 않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생애 처음이었던 방송 촬영은 그렇게 끝이 났고, 우리의 어설픈 연기는 <임하룡의 추억의 책가방>이라는 부제와 함께 전파를 탔다. 당시는 '그렇게 많이 찍어 대더니 겨우 이것밖에 안 나오냐'며 제작진을 원망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그 선배들처럼 촬영하고 있으니까.

<임하룡의 추억의 책가방>은 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의 책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가슴 설레게 했던 이름 모를 소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배우의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모진 인생의 풍파 속에서 그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을까? 무엇보다, 수줍게 악수를 청했던 제천 사투리의 까까머리 고등학생을 기억은 하고 있을까?
 

조금이라도 얼굴이 나오고 싶은 마음에 친구를 보는 척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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