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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추억

소림사에서 온 사부

by KangP_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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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2, 3학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충북 제천의 남천국민학교도 정문과 후문이 있었는데, 나는 집이 교동 쪽이라 후문으로 주로 다녔다. 후문을 나와 체육관이 있는 언덕 쪽으로 오르면 그 옆으로 샛길이 있었다. 복천사 입구를 지나 산길을 따라 어찌어찌 가면 지금은 사라진 '과수원주유소'와 만났고 그 뒤쪽에 있는 아세아시멘트 사택 중 하나가 우리집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후문으로 하교할 때였다. 웬일인지 후문 앞에는 무리의 아이들이 한 청년을 둘러싸고 웅성대고 있었다. 호기심 많던 나는 그 무리에 합류했고 그러자 그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소림사에서 왔으며 제자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내용의 말을 하고 있었다. 소림사라는 말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나 또한 그랬다.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을 있냐고 묻자 아이들은 저마다 손을 치켜들며 ‘저요‘를 외쳐댔고, 나 또한 그랬다.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그는 '모두를 제자로 받을 수 없으니, 테스트에 통과한 세 명만을 제자로 뽑겠다'며 무리를 이끌고 독심봉으로 향했는데, 그 형세가 마치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특정 위치에 이르자 그는 축구공인지 배구공인지를 골짜기로 던졌다. 그리고는 저 공을 찍고 오는 순서대로 3명을 뽑아 제자로 삼겠다며 ‘요이~ 땅!!’을 외쳤다. 당시 별명이 ‘날쌘돌이’였던 나는 가장 먼저 공을 찍고 돌아왔다. 그렇게 세 번째 녀석까지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는 우리의 ‘사부’가 되었다.

우리의 훈련은 운동장 건너편의 ‘통일동산’에서 이뤄졌다. 지금은 외부인의 학교 출입이 쉽지 않지만, 80년대만 해도 자유롭기 그지없었다.

짧은 스포츠머리의 사부는 우리에게 간단한 팔 기술부터 가르쳤다. 눈썰미 좋은 나는 셋 중 유독 잘 따라 하는 편이라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두 나무를 줄로 묶고는 그 줄을 뛰어넘은 후 등부터 떨어지는 낙법을 할 때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속상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통일동산에 모여 수련을 했다. 땀이 비 오듯 하고 때로는 흙바닥에 쓸려 상처가 나곤 했지만, 소림사 권법을 배운다는 사실에 매일이 흥분 상태였다. 사실 사부를 만나기 전부터 '소림 권법'이란 책을 사서 거기에 있는 동작들을 따라 하며 홀로 수련(?)을 해 오던 나로서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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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부는 학교 후문 근처에 있는 그의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정리되지 않은 마당이 있는 허름한 구옥이었다. 우리를 앉혀놓고 사부는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의 증명사진이었는데, 흑백 사진 속 사부는 쿵후 하는 사람들이 입는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매서운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소림사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세 명은 각자의 톤으로 ‘와~’를 외치며 감탄했다.

사진을 다시 거둬간 후, 사부는 우리 셋과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비장하게 말했다. "나는 이제 다시 소림사로 돌아가야 한다"며 너희들도 나와 함께하겠냐는 물음을 더했다. 두 녀석은 서로 눈을 마주보며 주저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드릴 말씀이 있다며 부모님을 나란히 앉히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라, 이놈이 또 뭔 저지레를 한 거야' 하는 표정의 부모님은 눈을 흘기며 아들의 입을 주시했다.

"뭔데, 말해 봐라."

뜸들이는 시간이 길어지자, 성격 급한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고 난 긴 숨을 내쉰 후 고개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저 소림사에 가겠습니다!"

두 분은 마치 쌍둥이처럼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하는 표정을 똑같이 지으며, 잘못 들은 양, '뭐, 뭐라고?' 되물으셨다. 두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금까지의 상황을 소상히 설명드렸고, 그 후의 상황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예상하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나의 소림사행은 좌절되었고, 십 대 시절 처음으로 가졌던 원대한 꿈 역시 무산되었다. 며칠 후 사부를 만나 ‘아쉽게도 부모님이 허락지 않다’는 비보를 전했다. 그리고 사부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정말 큰일 날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만약 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소림사에서 무도인의 길을 가거라' 허락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사부'라 부르던 이십 대 사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정말 소림사의 무도인이었을까.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 무술에 열광했을까. '아뵤'를 외치며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이소룡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멋들어지게 쌍절권을 돌리는 모습에 감탄했던, 지금은 목사님이 된 외삼촌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그 누가 싸움을 걸어와도 한방에 때려눕히고 싶은 욕구의 표출이었을까. 이유가 뭐든, 맨손으로 악의 무리를 쳐부수며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 내는 무도인의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소림사의 꿈이 좌절된 소년은 어느덧 마흔여덟의 중년이 되었다. 짐작건대 지금쯤 환갑이 넘었을 소림사에서 온 '사부'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을까. 
 

출처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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