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2004년.
공덕역 4번 출구로 나와 우측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하우돈'이라는 고깃집이 있었다. 과 선배 몇몇이 의기투합해 개업한 식당이었는데, 당시 졸업과 동시에 백수로 전락한 나는 그곳에서 ‘스피드!!’를 외치며 서빙 알바를 했다.

주급으로 받던 흰 봉투 속 알바비는 궁핍한 백수 삶에 단비와 같았다. 이곳이 남다른 이유는 여기서 일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지금까지도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장위동 반지하 자취방에서 구직 활동을 하고 오후가 되면 이곳으로 넘어와 밤 10시까지 식당 일을 했는데, 하루는 모 방송국 프로덕션에서 FD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됐고, 부랴부랴 없는 옷을 차려입고 여의도로 향했다.
면접은 지원자 네댓 명을 모아 놓고 한꺼번에 진행됐고 '연락이 없으면 떨어진 줄 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공덕역에 내려 4번 출구로 올라가는데 PCS(휴대전화)의 전화벨이 울렸다. 당신은 합격했고 당장 오늘부터 일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FD 일을 얼마 못 하고 그만두긴 했지만, 그때 형들이 마치 본인이 합격이라도 한 양 축하해 주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은 브레이크가 풀렸는지 건너편 주차장에 있던 차 한 대가 식당으로 돌진해 가게 안으로 치고 들어와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오픈 전이라 손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가게에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큰 사고가 났을 거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다.

오랜만에 찾은 공덕역 4번 출구에는 간판은 바뀌었지만 스물일곱, 치열했던 백수시절의 삶이 아로새겨진 공간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것이 너무 많은 요즘이라 더욱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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