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본 건 지난 10월 22일이었다.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리던 날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 그날은 퇴근 후 야구를 보기 위해 몇몇 직장 동료들과 회사 근처 치킨집을 찾았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테이블을 벽면의 TV 방향으로 돌리는 열성을 보이며, 차분하게(?) 치킨에 소맥을 함께하며 대다수는 한화를, 한 명은 외로이 삼성을 응원했다.

야구 때문인지 치킨집은 배달 주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사장님은 쉴 새 없이 치킨을 튀겨 댔고, 카운터에는 배달 나갈 치킨들이 쌓여 갔다. 우리 자리는 카운터 바로 옆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배달 기사들이 테이블 앞을 오가거나 우리 앞에 멈춰 서서 (시야를 가리며) 치킨을 기다리곤 했다.
그때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걸어서 배달하는 기사였다. 나이는 이십 대 중후반에서 많아야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에게 시선이 간 이유는 그가 짊어진 큰 검은색 보온 가방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그래서 익명성으로 무장한 라이더들은 걸음걸이부터 당당했고, 때로는 자신의 치킨을 빨리 달라는 요구도 서슴없었다. 이들과 달리 그는 마치 사람 눈에 띄면 안 되는 존재라도 되는 양 가게 구석에서 손님을 등진 채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중간중간 치킨 봉지에 붙은 영수증을 들추며 자신의 음식인지를 확인하곤 다시금 구석 자리로 이동했다.
배달 기사도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이고, 코로나19 이후 배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소비 경제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엄연한 경제 주체다. 그들을 동정할 필요도 없고, 동정해서도 안 된다. 배달 라이더들의 난폭 운전으로 인한 사고와 그에 따른 사회적 이슈가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그에게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다소 소심한 모습과 불편한 눈빛에서 백수 시절의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졸업 후 1, 2년 정도 미취업 상태에서 자격증 취득과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꼰대처럼 들리겠으나) 나 때는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졸업한 후에도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전전긍긍해야 했던 나로서는 잉여인간이라는 자책과 함께 자존감이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크고 작은 모임 자리를 일부러 피했고 그렇게 사람들을 멀리하다 보니 혼잣말이 늘어 갔다. 오직 취직만을 목표로 반지하 자취방에 웅거했다. 백수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력서를 넣는 회사도 시나브로 꿈꾸던 직업과는 상관없는 기업체로 변질되어 갔다.
큰 검은색 보온 가방을 메고 식당 구석에 서 있는 그가 과거의 나와 같은 처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를 동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다소 서툴지만 노력하면서 한 장 한 장 미래를 위한 벽돌을 쌓아가는 위대한 여정 중일지도 모른다. 다만 눈치 없이 그의 모습 위에 내 이십 대를 겹치며 지난날을 회상했을 뿐이다.
야구를 보는 동안 그는 한 번 더 치킨집에 들러 음식을 가방에 넣어 갔다. 그러는 사이 충주로 가는 마지막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웠지만 4 대 4까지 확인하고 치킨집을 나와야 했다.
미리 불러 놓은 콜택시를 타고 청주역으로 향했다. 야구가 궁금한 나머지 택시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티빙을 켰는데,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 짧은 사이, 그러니까 치킨집을 나와 바로 도착한 콜택시에 몸을 싣는 사이에 7 대 4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결국 이 점수 그대로 경기는 끝이 나고 말았다.
아…
한화이글스여…
(다행히 5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한화이글스가 승리하며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불행히도 1, 2차전을 모두 패배했다. 내일 있을 한국시리즈 3차전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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