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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2021년~2025년

즐거운 낮술

by KangP_ 202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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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즐거운 낮술을 했다. 남들 일하는 금요일 오후의 낮술이라 짜릿함이 더했다. 스무 살에 만났으니 어느덧 이십팔 년째 인연을 이어 오는 친구들과 강남터미널 건너편 상가의 지하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았다.

미식가인 친구는 터미널 근처 맛집으로 이곳을 추천했고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푸짐한 낙곱전골을 가운데 두고 잔을 부딪쳤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니 문득 친구들이 보고 싶어져서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급조한 번개였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비슷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셋은 대학에서 우연찮게 사조직을 결성하며 친해졌다. 학생회 활동을 함께했고 복학 후 장위동 반지하에서 같이 자취하며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한 친구는 사업 수완이 좋다. 십 년 남짓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장사를 시작했다. 온라인 반찬가게를 시작으로 오프라인 반찬가게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는데, 안타깝게도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가게를 접어야 했다. 아이디어가 많은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사업을 구상하고 실현하며 살고 있다. 
 
다른 친구는 작가를 꿈꿨다. 꿈을 향해 나아갔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반 회사에 다니고 있고, 그 기간도 꽤 오래되었다. 놀란 건 지금도 그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의 글이 화재를 모으며 9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리고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나는 이십 년이 다 되도록 같은 일을 하며 충주에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고향도, 관심 분야도, 성격도 다른 우리는 졸업과 함께 각자의 길을 개척하며 가정을 꾸리고 덤덤히 아빠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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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정신 연령은 여전히 철부지 이십 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나브로 우리도 생각의 양과 질이 변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고의 폭이 개인에서 가족으로 확장되고 있었고, 현재보다 은퇴 후와 노후에 대한 고심이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롤모델이 ‘폭삭 속았수다’의 양관식이 되었다는 친구의 고백은 이런 맥락에서 서글프게 다가왔다.

그렇게 야속한 세월을 푸념하며 잔을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덧 오후 3시,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이 되었다. 적당한 시점에 우리의 술자리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 속도로 계속 먹다간 6시도 되기 전에 인사불성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고마운 강제 종료였다.

식당처럼 우리도 음주의 브레이크 타임을 갖기로 했다. 산책, 커피숍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 시절, 그 노래들을…


세 명의 중년이 작은 방에 모여 앉아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모습이 측은지심을 자극했는지 사장님은 끝날만 하면 추가 시간을 넣어 주었다. 노래방 문을 나설 때는 이미 5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8시 반 충주행 버스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고, 친구들도 가정사 등의 이유로 밤늦도록 자리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술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노래방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써 버렸다.  

부랴부랴 2차 자리로 옮겨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화 속에는 나로선 수긍할 수 없는 친구의 의견과 주장이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로 서로를 이해했다. 어쩌면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이렇게 세 개의 세계가 충돌하고 반응하며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성장하고 성숙해 온 게 아닌가 싶다.  
 


다행히 늦지 않게 버스에 올랐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좌석이 앉자마자 거칠게 취기가 올라왔다. 날숨에 배어 있을 눅눅한 술냄새가 옆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것 같아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귀에 걸었다. 그러고는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적당히 기분 좋고 알찼던, 오랜만의 낮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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