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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2021년~2025년

마라탕과 행복

by KangP_ 202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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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는 아내가 서울에서 교육이 있어서 나머지 세 식구가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오롯이 두 딸과 함께하는 시간인 만큼 뭘 할까 고민이 많았다. 아쉽게도 비 때문에 야외 활동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함께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은 그저,

집에 있고 싶어 했다…

하다 못해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책이라도 보자고 해도 시큰둥할 뿐… 집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아이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둘이 인형 놀이 하겠다는 말에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며 환호성을 치고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겠지만, 오랜만에 엄마 없이 아빠와 셋이 보내는 시간인데 이런 식으로 보내기는 너무 아까웠다.

장고 끝에 한마디 던졌다.

“점심은 나가서 마라탕 먹을래?”

그러자 아이들의 어수선한 동작이 멈췄다. 이제야 아빠의 존재를 인식한 듯 ’어? 아빠 있었네?‘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큰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지난주에 마라탕 먹었는데, 또 먹어도 돼?”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 말은 ‘지난주에 마라탕을 먹었기 때문에 엄마가 알면 못 먹게 할 게 분명하지만, 아빠가 책임진다면 우린 먹을게. 사실 우리도 먹고 싶었거든…’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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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들러 연체된 책을 반납하고 동네 마라탕집을 찾았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용기에 재료들을 담았고, 나에게도 이것저것 알려줬다.

그렇게 아이들과 마라탕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먹는 내내 두 녀석은 온갖 감탄사와 추임새를 넣어가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뒤따랐다.

‘음식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할 수도 있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꺄르르 웃고, 새로운 맛을 발견하고는 언니에게 먹어보라고 추천하며, 그들은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사실 나에게 식사는 허기를 때우는 수단에 불과하다. 미식가도 아닐뿐더러, 맛에 둔감한 편이라 못 먹을 정도로 맵고 짜지 않으면 군말 없이 먹어 치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점심 식사는 오후 일과를 해 나가기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위일 뿐, 그 이상의 의미나 가치는 없다.

함께 점심을 먹는데 아빠는 아무런 감흥이 없던 반면, 두 딸은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 소소한 것에 감사하는 삶,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며 살아간다면 인생이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AI 생성 이미지


행복이란 게 거창한 게 아니다. 마라탕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 또한 행복했다. 맛있는 식사, 한 통의 안부 전화, 작은 배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 행복은 소소한 일상 속에 숨어 있었다.

마라탕 한 그릇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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