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고 있었다.
망각한 채 제멋대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나를 잊지 말라는 물망초의 영어 이름(forget-me-not)처럼 예고 없이 그가 찾아왔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소중한 일상을 무너뜨리곤 했다. 나에게 통풍은 그런 존재였다.
물론 아직 통풍약을 먹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매년 건강검진 때마다 요산수치가 높게 나와서 언제 통풍이 발생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경계에 서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토요일, 그러니까 어제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른쪽 무릎에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커졌고, 무릎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또한 줄어갔다.
관절에 급성염증이라도 생긴 건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주말이라 출근할 일도 없고 하여 하루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오늘 아침에 상태를 보니, 호전은커녕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아내가 나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통풍은 생각지도 못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는데 문득 작년에도 걷기 힘든 통증 때문에 이곳에 왔던 게 생각나서 그때 어떤 진단을 받았는지를 직원에게 물었다. 몇 번의 검색 후 접수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은 통풍으로 의심되는 발가락 통증 때문에 왔었다고 말해 줬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나는 요산 수치가 높은, 통풍 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무릎 통증 역시 통풍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무릎에 무리 가는 운동이나 노동을 한 것도 없는데 갑작스러운 통증이 의아했는데, 대충 앞뒤가 맞아 들어갔다.
겪어본 사람만이 통풍의 고통을 알 것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뜻의 통풍으로 명명되었을까.
의사 선생님은 통풍으로 의심되는 만큼, 피검사 등을 통해 본격적인 통풍 치료로 들어갈 건지, 아니면 지난번 발가락 통증 때처럼 통증 치료만 진행할지를 물어왔는데 나는 후자를 택했다. 지금 먹고 있는 혈압약처럼 통풍약 역시 한 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아직은 식이요법과 운동 등으로 요산 수치를 조절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플 때만 잠깐 느꼈다가 금세 까먹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제일이다. 무릎이 성하지 않으니 움직일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주말 동안 축제가 진행 중인데도 아이들과 구경 한 번을 같이 갈 수가 없었다.
가장의 역할도, 자식의 역할도, 직장에서의 역할도,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건강에 관해서나 일과 관계에 관해서나 익숙함에 빠져 교만해질 때쯤이면 이런 식으로 신은 자극과 자각을 통해 다시금 겸손함을 견지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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