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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5

생애 첫 책 출판 어버이날을 앞두고 본가를 찾았던 지난주 금요일의 일이다. 오랜만에 뵌 부모님과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고 있는데 아버지가 뭔가 생각이 나셨는지 "잠깐!!! 이거 챙겨가라!!" 하시며 책장을 뒤지셨다. 눈앞에서 막차라도 놓친 듯 다급한 목소리에 나 역시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책장에서 무언가를 꺼낸 아버지는 "세상에 세 권밖에 없는 거다."라며 건넸다. 책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입학, 입대와 제대의 과정에서 부모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집대성한 서간집이었다. 아버지의 정성 어린 글씨와 편지를 일일이 복사하는 수고로움,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에 대한 고마움이 고스란히 담긴 가내수공업으로 탄생한 책이었다. 책은 딱 세 부만 만드셨다고 한다. 한 권은 나에게, 다른 .. 2023. 5. 14.
섬집 아기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유독 엄마와 끈끈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관계가 얼마나 견고한지 아빠는 언감생심 끼어들 틈이 없다. 나름 한다곤 했지만 그럼에도 어린 시절 아빠와 교감이 (엄마에 비해) 많지 않았던 탓일 거다. 애들은 어려서부터 엄마 껌딱지였고 지금도 그렇다. 아내가 친구라도 만날라 치면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둘 중 하나라도 깨는 사단이 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안 해 버릇해서 그런 거라고, 자꾸 해 봐야 아이들도 엄마와 분리 정서를 만들어 간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아내는 마음이 여려서 아이를 두고 매몰차게 나가지 못한다. 물론 남편에 대한 불신이 결정적 이유일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엄마들은 빼고 아빠 셋.. 2023. 4. 29.
라면 예찬 지난 토요일 아침에는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줬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애들도 평소에 라면 노래를 불렀고 여느 부모가 그렇듯 우리 역시 라면에는 야박했다. 그렇지만 주말만큼은 치팅데이!! 찬장에서 라면 2개를 꺼냈다. 진라면과 튀김우동라면 같은 라면을 끓여주면 좋을 텐데 두 녀석의 식성이 너무 다르다. 한 아이는 언니랍시고 (순한 맛이긴 하지만) 진라면을 먹고 다른 한 아이는 아직 라면을 매워해서 튀김 우동을 먹는다.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냄비에 두 개의 라면을 따로 끓여야 한다. 이 둘은 식성뿐만 아니라 먹성도 다르다.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큰 딸과 면가닥을 세고 앉아있는 둘째를 보고 있노라면 어쩜 이리 다를 수가 있나 싶다. 아이들이 먹는 걸 확인하고는 남은 두 종류의 라면을 한 곳으로.. 2023. 4. 21.
퇴사와 이직 ※ 금연 D+245 ※ 지천명 D-1,360 언제나 그렇듯 오늘 아침도 셔틀에 몸을 싣고 청주로 출근하는 중이었다. 이틀 전인 월요일에는 과학 콘서트 녹화를 마치고 몇몇 사람들과 간단하게 한 잔 한다는 것이 (예상대로)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고 결국 막차를 놓쳐 모텔에서 자야 했다. 그날의 피로는 오늘까지도 이어졌다. 이제 숙취는 기본적으로 이틀 이상 가는 게 당연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조금이라도 피로에서 벗어나고자 셔틀 차량의 반동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쪽잠을 자고 있는데 단톡방의 알림이 울렸다. 단톡방에 있는 형의 회사에 신입 사원이 입사 예정인데 우리 회사에서 2~3년 일한 친구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는 사람이냐고 묻고 있었다. 글쎄... 작년 말에 11명의 명퇴가 있었지만 그중에 2~3년 연차의 직.. 2023. 4. 12.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잠실의 추억 2001년 말인지 2002년 초인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잠실의 날씨는 화창했고 정장 차림의 서울 시티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잰걸음으로 정신없이 내 앞을 오가는데, 그 모습이 역동적이면서도 애처로웠다. 2001년 6월에 제대한 나는 군인과 민간인 사이 그 어디 즈음에 있으면서 재사회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누군가와 어깨라도 부딪힐라치면 '죄송합니다' 보다 '병장! 강창묵!', 관등 성명이 먼저 튀어나왔고, 말을 못 들었을 땐 '예? 뭐라고요?'라고 되묻지 못하고 '잘 못 들었습니다!'를 외쳤다. 그렇게 실수하고 고쳐 가며 복학 전까지 고향인 제천의 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4, 5개월 간의 알바를 끝내고 쉬면서 복학을 준비할 때쯤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녀석은 제대 후..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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