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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2026년~2030년

16만 원을 위한 사투

by KangP_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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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1일. 한 해의 마감과 새로운 해의 시작 사이에서 차분하게 온고지신의 자세로 하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싱크대 양념장이 고장났다(젠장).
 
레일이 내려앉으면서 이동을 부드럽게 해주는 작은 구슬들이 빠졌고, 양념장은 더 이상 여닫는 게 불가능해졌다. 신축 아파트라곤 하지만 5년을 살다 보니 하나하나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하필이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이런 시련이 닥친단 말인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서둘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아내 말을 빌리면, 주변에 양념장을 수리한 집이 몇 있는데, 사람 불러서 수리하는 비용으로 16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또한 처갓집도 최근에 양념장이 고장났으나 부품을 사서 장인어른께서 직접 고치셨다는 설명까지 더했다.

짜릿한 자극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인어른이 하셨다면 나라고 못할 게 없지 않은가.’

이래 봬도 서랍이 4개나 달린 이케아 퀸사이즈 침대를 홀로 조립한 몸이시다. 때마침 처갓집에 여분의 레일 부품이 있다고 하니 이건 운명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네 손으로 직접 레일을 교체해서 16만 원을 아끼라는 신의 명령!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1일. 아내는 레일을 가지러 처갓집에 갔고 나는 주방 바닥에 캠핑용 매트를 깐 후 양념장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역순으로 달아야 하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위기에 봉착했다. 레일과 양념장 프레임을 분리해야 하는데, 이것이 나사도 볼트도 아닌 이상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리벳이라는 것이었는데, 알루미늄으로 된 버섯모양의 긴 막대에 압력을 가하면 형태가 납작해지면서 고정되는, 그런 결합 방식이었다.

리벳 (출처 : 네이버)


리벳 제거는 전동드릴로도 가능했지만 문제는 다시 리베팅을 하려면 리벳과 장비가 필요했다. 결국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장비를 가지고 출동하셨다. 혼자 멋지게 해결하려 했는데 여럿 귀찮게 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장인어른 덕분에 고장난 레일을 분리하고 새로운 레일을 끼울 수 있었다. 더 도와줄 것 없냐는 두 분을 손사래를 치며 돌려보내고 다시 차분한 마음으로 싱크대 앞에 앉았다.

작업을 해 나갈수록 그들이 왜 16만 원을 받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작업이 아니었다. 양념장 자체가 공간이 좁고 깊다 보니 나사 하나를 박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특히 두 개 레일의 암놈과 수놈의 위치를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한데, 이것이 안 맞으면 서랍장이 들어가지 않게 된다. '다 됐다!'며 박수쳤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거다.

얼마나 사투를 벌였을까. 마침내 레일을 벽면에 고정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문짝의 레일을 벽면 레일과 결합만 시키면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둘이 틀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귀 뒤로 한 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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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주 미묘한 차이로 두 레일의 위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아내가 옆에 없었다면 분해서 눈물을 흘렸을 거다. 다행인 건, 그 차이가 아주 미묘해서 망치로 조금만 위치를 옮겨준다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망치 대가리에 고무 뚜껑을 달고 벽면 레일을 내리쳤다. 혹 망치의 충격으로 레일이 휘어지면 이 또한 문제이기에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두드리고 맞추고, 다시 두드리고 맞추길 몇 번을 반복했던가. 어느 순간 ‘수욱~’ 하며 암수 레일이 결합되며 서랍장 문이 닫혔다.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마침내 싱크대 양념장을 고쳤다!


몇 번이고 양념장을 여닫아 보라며 아내를 떠밀었다. 이렇게 연초부터 집안의 문제 하나를 해결했고 더불어 16만 원의 지출을 방어했다.

기분 좋게 시작하는 2026년이다. 올해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과 마주하겠지만, 손수 양념장을 수리한 것처럼 슬기롭게 하나하나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

덕분에 싱크대 레일 양념장 수리하는데 왜 16만 원이나 드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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