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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2021년~2025년

양보다 질

by KangP_ 202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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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먹고 둘째 자전거 연습시키는 거 어때?"

퇴근 셔틀을 타면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애 둘과 치고받으며 하루를 불태웠을 아내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답장이 왔다.

"ㅇㅇ" (자음 두 개만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은 위대하다.)

저녁을 먹고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사실 둘째는 몇 달 전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그 후 꾸준히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날 이후로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가질 못했고, 배우다 만 상태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이는 전보다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져 있었다. 
 
그럼에도 몸은 기억했다. 화려하게 혼자 탈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번 타다 보니 연습을 멈췄던 그때의 몸놀림이 나왔다. 중간중간 몰래 손을 놓았고 그래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평소 같으면 안 한다며 짜증냈을 녀석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해 보겠다며 허세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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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풀 꺾이고 시원한 밤바람에 가을이 느껴지는 날씨였지만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자전거 안장을 잡고 꾸부정한 자세로 내달리는 게 사십 대 후반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잘했어'를 남발하며 뒤따랐다.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딸과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아빠의 칭찬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눈빛에선 자신감이 보였다. 함께 몸을 부딪치며 교감하는 게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보다 강력했다.
 
조금만 덜 귀찮아하면 만들 수 있는 시간인데 그동안 회사에서 일이 많았다는 핑계와 피곤하다는 구실로 집에 오면 누워있기 일쑤였고, 끽해야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드게임 몇 판 같이한 게 전부였다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진다.
 
양보다 질이다. 어영부영 몇 시간을 같이 앉아 핸드폰 뒤적이는 것보다 오직 아이만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찰나의 시간이 더 가치 있다. 이는 비단 육아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일 터, 그간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오늘이다. 
 

자전거 배우는 둘째를 바라보며 옛추억에 빠진 큰 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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