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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161

금요일의 응급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한창이던 시간, 나는 엄마 품에서 잠든 둘째와 함께 건대병원 응급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고불고 난리 피울 줄 알았는데 잠이 들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응급실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퇴근 셔틀을 타고 충주로 돌아왔다. 이번 주는 연휴가 껴서 이틀밖에 출근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금요일이 주는 해방감은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집어 들게 했다. 아내는 명절에 시댁에서 챙겨 온 만두로 만둣국을 끓였고 ‘밥 먹자~’는 말에 네 식구는 식탁 앞으로 헤쳐 모였다. 엄마표 만두는 진리다. 만둣국은 맛있었다. 큰 딸은 보란 듯이 매운 김치만두를 입에 넣고는 엄지를 내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행복한 금요일 저녁 풍경이었다. 사건은 ‘퍽!!!’하는.. 2022. 2. 5.
마흔다섯 살 5시간 전 5시간 후면 내 나이 마흔다섯이 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앞자리가 4로 바뀐 후부터는 한 살 더 먹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렇더라도 1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다시 시작하는 1년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리와 기록은 필요할 듯하다. 딱 1년 전 오늘 다짐했던 금연은 3개월 만에 보기 좋게 실패했고 나는 또다시 디데이 앱에 '금연'이라 적고 시작일을 2021년 12월 31일로 고쳐 썼다. 2월, 4월, 5월은 애플워치의 월별 도전을 성취하지 못했으며 홀로 다짐했던 글쓰기 역시 하반기로 들면서 양과 질 모든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타를 좀 더 심도 있게 연주하고 싶었는데 이 또한 말잔치로 끝나 버렸고 외국어 공부도 흐지부지 해졌다. 그럼에도 올 한 해의 성과라 할.. 2021. 12. 31.
대기번호 1088번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났고 25명이었던 대기 인원은 10명으로 줄었다. 1시간 동안 15명이 줄어든 것이니 1명 당 4분이 소요된 셈인데 기다리다 포기하고 자리를 뜬 이들을 감안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오랜 기다림은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은행을 찾은 내 탓이다. OTP의 만기일이 다가와서 오랜만에 은행을 찾은 건데, 아무리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은행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사람들로 분주했다. 잠깐 일 보고 들어갈 요량이었지만 대기 시간만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뭐 읽을 거 없나 폰을 뒤지다가 오래전 친구가 선물해 준 e북이 눈에 들어왔다. 김재완 작가의 ‘나 아직 안 죽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인데 40페.. 2021. 8. 24.
시간 마른장마와 폭염 때문에 매일 같이 돌던 호암지를 2주째 못 가고 있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 평일이면 항상 하던 운동 겸 산책을 못하게 되니 몸이 아픈 것 같고 (많지도 않지만) 모든 근육이 지방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40분간 호암지를 돌았던 건 운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하루라는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요즘은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은 욕구가 높다. 군대 있을 때 통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더 많은 책을 읽고, 자격증 공부를 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랄까? 군대와 비교할 만큼 지금의 삶이 통제되고 제한된 건 아니지만, 회사와 나를 분리시켜 생각해 보면 '회사의 일'을 하는 속에서 짬을 내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삶에.. 2021. 7. 21.
대상포진이라니... 생애 첫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 내 나이 마흔넷의 일이다. 일주일 전부터 명치를 기준으로 왼쪽 부위에 찌릿한 통증이 불규칙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다 말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릇 모든 병은 '밥 먹으면 낫는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로, 여간해서는 병원을 찾지 않는 걸로 (아내한테만) 유명한데 지난 월요일에는 자진해서 병원을 찾았다(나는 겁이 많다). 진료실로 들어가 증상을 이야기했는데, 설명하면 할수록 의사 선생님의 갸우뚱한 고개는 더욱 기울어졌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어왔고 나는 경찰서에서 조서 쓰는 사람처럼 성실하게 답했다. 한참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 후, 의사 선생님은 두 가지 .. 2021. 6. 30.
[책] 어린이라는 세계 사실 이 책은 처제가 아내에게 선물한 건데, 아내는 며칠 들고 다니는가 싶더니 언제부턴가 같은 자리에 방치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지나다가 호기심에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작가인 김소영 선생님은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느낌과 의견을 더한 에세이다 보니 사례가 구체적이고 이해가 쉬웠다. 책을 읽어 가며 든 느낌은 (이런 표현은 처음 써보는 것 같아 다소 쑥스럽지만) 몽글몽글했다. 진심으로 어린이를 대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사소한 일상 속 작가의 성찰과 만날 때면 예상치 못한 깨닮음에 무릎을 쳤다.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 2021. 6. 23.
하루 사람 마음이란 게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더니 어제는 자존감이 떨어졌다며 그렇게 호들갑을 떨더니, 오늘은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한 채 가끔은 콧노래도 부르며 하루를 보낸다(조울증인가). 오전에 진행된 회의 내용이 다소 짜증났지만, 점심 식사 후 기분 전환도 할 겸 호암지를 한 바퀴 돌며 직장인의 망중한을 즐기려 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그림과 달리, 코디를 잘못한 탓에 회색빛 니트 속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땀줄기를 손수건을 훔치며 걸어야 했는데 그 꼴이 남 보기 우스웠다.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운동 후의 상쾌함보다 꿉꿉함이 더 컸다. 그럼에도 시간을 쪼개 운동했다는 사실이 큰 성취감으로 다가온다. 오후에는 회사 전체에 물이 끊겼다. 사전 공지 없이 이루어진 단수였기에 담당자에게 민원이 빗발.. 2021. 6. 1.
자존감 되도록 주말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지난 주말은 내내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출품 서류를 보내야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부랴부랴 일을 처리하는 못된 습관이 한몫한 건데, 그렇지 않은 사람 있다면 손 좀...쿨럭). 작년에 작업한 결과물로 계속 출품을 하고 있는데, 내는 족족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있어 이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6개월 동안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하다 보니 자존감도 떨어진 게 사실이다. 마음 고쳐 먹고 이름 뜻처럼 '시나브로 번창하리라' 마인드 컨트롤을 하곤 있지만, 문득문득 자괴감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이번이 마지막이다'는 심정으로 작업해서 오늘 서류를 보냈다... 2021. 5. 31.
오랜만에 서울 마실 지난 주말, 정말 오랜만에 홀로 동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역시 모임은 철저한 계획보다 술 취해 던진 빈말로부터 시작한다는 옛말(그런 말이 있나?)이 하나 틀린 게 없다. 친구에게 던진 취중 공수표가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선배형이 의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참치횟집이다. 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정부에서도 손꼽힌다고 하니 살짝 기대한 채 의정부역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상경에 설렌 나머지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그건 친구 녀석도 마찬가지였고,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우린 당구장으로 향했다. 당구는 거의 4, 5년 만에 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3:0이라는 치욕적인 점수차로 지고 말았다. 미안한 일이지만 삼판.. 2021. 4. 20.
2021년 벚꽃놀이 뭐가 그리 바쁜지 정말 오랜만에 글을 적는다. 사실 끄적이다 만 글들이 임시 저장 폴더에 몇 개 있긴 한데, 벌려놓기만 했지 정리를 할 수 없는 낙서들이다. 2021년을 맞이하며 새해 다짐을 하던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어느새 1/4분기가 지났고 2/4분기를 시작한 지도 5일이나 지난 오늘이다. 올해는 유난히 꽃이 일찍 피었다. 이를 걱정하는 기후 전문가들의 경고도 있었지만, 걱정과 상관없이 만개한 꽃은 이뻤다. 지난 주말에 비가 온다기에, 빗방울에 꽃잎들이 떨어져 나가기 전에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금요일 오후에 반차를 냈다. 그리고는 충주의 유명한 벚꽃 명소 중 한 곳인 하방마을을 찾았다. 생각해 보니 벚꽃과 아이들을 함께 담은 영상이 없는 것 같아, 작정하고 카메라와 렌즈도 두 개(17-70mm/80-.. 2021. 4. 5.
설 연휴의 끝을 잡고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전에 없던 방식으로 설 연휴를 보냈다. 설날 아침을 고향집이 아닌 우리집에서 네 식구끼리 맞이한 건 처음이었고, 아이들한테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준 것도 처음이다. 항상 설날 아침이면 엄마가 끓여준 떡국을 먹었는데 올해는 내가 떡국을 끓였고(물론, 맛은 실패했지만) 부모님이 주관하시던 새해 첫 예배도 이번엔 내가 해야 했다(어찌할 줄 몰라 간단하게 기도로 대신했다). 연휴 전날 휴업을 내고 그 전날은 오후 반차를 냈기 때문에 나의 설 연휴는 남들보다 하루 반나절이 더 길었다. 오래 쉰만큼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골이 지끈거리고 맨 정신으론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있다가 저녁때 소주 한 잔 하고 잠을 청해야겠다(새해에도 변함없이 기-승-전-술). 연초에 시작.. 2021. 2. 14.
금연 열하루 째 담배를 입에 물지 않은지 열하루 째다. 매년 1월이면 으레 해오던(?) 일이라 '뭐, 얼마나 가겠어?' 하며 시작한 금연이 열흘을 넘기고 있다. 중요한 건, 금단현상도 없고 할만하다는 거다. 이러다가 정말 담배를 끊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다. 이참에 담배를 끊게 된다면 모든 공은 큰 딸에게 있다. 집에서 담배를 발견한 딸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끊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으니 말이다. 2021년을 맞이한 지도 열흘이 되어가는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것과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는 것 빼고는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표면적으론 그러한데 좀더 내면을 들여다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한층 더 커진 채 똬리를 틀고 있다. 대부분 사십 대의 고민일 것.. 2021. 1. 10.
크리스마스이브와 빨간 하이힐 1.이십 년이 더 된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1997년 아니면 98년의 크리스마스이브였을 것이다. 나름 차려입는다고 차려입은 우리 셋은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에서도 성대 앞의, 가격은 싸고 양은 많기로 소문난 술집을 찾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테이블에는 저렴하지만 양은 푸짐한 감자튀김 세트가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빨간 하이힐을 만난 게 이곳인지, 이곳을 나와 2차로 찾은 술집에서 인지는 헷갈리는데 확실한 건, 우리 셋은 입구 쪽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빨간 하이힐과 그녀의 일행은 우리를 등지고 안쪽 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스툴 밑으로 보이는 새빨간 하이힐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그렇다. 얼굴도.. 2020. 12. 26.
짐 싸들고 처갓집으로 간 아내 어제 오후, 짐을 싸든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갓집으로 갔다. 코로나19로 실내에서의 감금 생활이 길어지며 예민해진 나머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이런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폭발한 결과, 아내가 짐 싸들고 처갓집에 가겠다며 나간 거 아니냐, 며 흥분한 투로 물어본다면 그것은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적 시각이며 사실은 아내가 오랜만에 장모님과 하룻밤 자고 오겠다며 간 것이라고 설명하겠다. 쉽게 말해, 일주일 동안 일이 많았던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 위한 아내의 배려인 것이다. 하지만 둘째가 집에 가겠다고 난리 피우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처갓집이라고 하니, 명절 연휴의 민족 대이동 행렬에 합류하여 몇 시간씩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처갓.. 2020. 12. 20.
휴업과 육아 요즘 육아를 힘들게 하는 게 세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코로나19와 미세 먼지, 한파다. 3대 천황이라 하겠다. 특히 코로나 재확산과 나쁜 미세 먼지 때문에 밖에도 못 나가고, 넘치는 에너지를 억누르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미안하고 안타깝다. 12월에는 무려 6일의 휴업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 간의 정이 돈독해지고, 창문 너머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을 상상했다면, 그건 TV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현실은 지옥이다. 치우고 돌아서면 '왜 날 정리하지 않느냐'며 따지듯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는 마술 같은 일들은 대수로울 것 없는 일상이 되었고, (지금처럼) 내 방(이라 쓰고, 인형 창고라 읽.. 2020. 12. 14.
임창정과 짜장면 서울의 한 고층 쇼핑몰이었다. 우리 가족은 11층에 있는 넓은 라운지의 소파에 앉아 쉬고 있다. 그때 근처에 서서 이야기 나누는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름 아닌 임창정이었다. 나는 반가운 나머지 '창정이 형!' 하고 소리쳤고, 소리를 따라 고개 돌린 창정 형은 "어? 네가 여기 웬일이야!" 하며 반갑게 다가왔다. 둘은 그간의 근황을 나눴고 나는 창정이 형에게 우리 가족을 소개했다. 그러자 "아이고~ 우리 이쁜 조카들, 많이 컸네. 가만 있어봐라, 삼촌이 용돈 줘야겠다."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는데, 그건 마치 우리 큰 딸아이가 만들었을 법한, 색연필로 그림이 그려진 작은 봉투 두 개였다. "아니 형, 우리 애들 만날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거야?" 라고 농을 치자, 형은 당황한 듯 얼굴.. 2020. 12. 8.
휴업과 긴축 재정 휴업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난달과 이번 달 카드 요금이 많이 늘었다. 그렇다. 힘들다는 이야기다. 나름 매달 수입과 지출을 고려하며 현명하게 소비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달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는 건 제주도 여행. 15년 근속 휴가와 이에 따라 지급되는 휴가비를 활용하여 다녀오면 문제없겠다 생각했는데, 10월에서 11월로 넘어오는 카드값을 감안하지 못한 게 불찰이었다. 운 좋게 특가 상품을 잡아서 네 식구가 십만 원 조금 넘는 돈으로 왕복 비행기를 해결해 쾌재를 불렀지만 몸통에 비하면 항공비는 잔가지에 불과했다. 또 하나는 (당사자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경조사다. 평시 상황에서는 경조사비로 나가는 돈이 큰 부담 없었는데, 긴축 재정에 돌입하고 나니 월급이.. 2020. 12. 6.
이제 괜찮지? 원래 계획대로면 지금 쓰는 글은 지난 제주 여행의 후일담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심리 상태는 속 편하게 여행의 여운을 되새기고 있기엔 너무 흥분돼 있다. 이 흥분은 짜릿한 경험으로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흥분이 아니라, 짜증이 폭발하여 뒷목 잡으며 느끼는, 아주 기분 나쁜 흥분이다. 흥분을 삭힐 방법을 찾다가 어둠을 뚫고 나와 호암지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마스크를 낀 채 잰걸음으로 돌았더니 호흡이 가빠왔고 그렇게 약 5Km를 걷고 나서야 조금은 평정심을 찾는 듯했다(덕분에 애플워치 3개의 링을 모두 완성했다). 오늘 겪은 속상했던 일을 배설하듯 쏟아 내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또 막상 공개된 블로그에 미주알고주알 적어가려니 마흔셋이라는 나이가 부끄러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련.. 2020. 11. 23.
태평가 나는 지금 음악 감독과의 미팅을 위해 영동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예상과 달리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아 다소 당황스러운 상태다. 얼마 전 회사 업무용 차량을 새 차로 바뀌서인지, 전과 달리 승차감이 좋았고, 운전하는 기사 동생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 중이다. 토요일 방송을 앞두고 음악 작업을 최종 마무리하러 가는 길이다. 이제 삼일 후면 지난 7개월 동안의 모든 과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아, 물론 골치 아픈 정산 작업이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방송을 내보내고 나면 쌓여 있는 휴가를 몰아 쓰며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소홀했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며,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 볼 요량이었는데, 야속하게도 아직 방송도 안 나갔는데 벌써부터 프로그램 합류 시기와 합류할 프로그.. 2020. 11. 4.
휴업과 이십 년 전 알바 의무 휴업이 4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시간 활용의 요령이 생기고 독서와 사색이 습관화되어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꾀죄죄한 몰골로 소파에 드러누워 전형적인 카우치 포테이토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잘 보지 않던 TV 프로그램들도 접하게 되는데 며칠 전 '나 혼자 산다' 손담비 편에서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둘러보는 장면이 나왔다. 그녀는 한 웨딩홀 앞을 지나며 과거 이곳에서 예도 알바를 했었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복학 후 시작했던 예식장 촬영 알바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과 선배 형의 소개로 장한평의 한 웨딩홀에서 촬영 알바를 시작했는데 수입이 나쁘지 않았다. 20년 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예식은 3만 원, 고희와 환갑은 5만 원이었던 것 같.. 2020. 10. 29.
휴업과 넋두리 휴업 날은 출근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법정 공휴일과 같은 개념이고 휴업 일자에 출근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 단위 월 단위로 처리해야 할 일이 그대로인 현업자들에게 쉬는 날수가 늘어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특히 외부 사람과 일정을 잡을 때는 더욱 난감하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이고 그들도 한가한 사람이 아닌지라, 휴업 일까지 빼 가면서 일정 조율을 하다 보면 자꾸만 일이 미뤄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휴업 일임에도 회사에 나와 있다(물론 다른 날 대체 휴업을 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색보정 전문가는 함께 화면을 보며 내용 설명과 전체적인 분위기, 원하는 색감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에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셨다. 옆에 앉아서.. 2020. 10. 19.
휴업과 선물 "저녁 먹은 거 설거지하면 선물 줄게." 어제 저녁, 비염이 심해져 코를 휴지로 막고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아내가 말했다. "내가 언제 선물 줘야만 설거지했냐? 뭔데, 선물이?" "설거지나 하고 이야기해." 뭔진 모르겠지만 그깟 선물 따위 때문에 설거지를 한다는 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채 수세미로 접시를 문질렀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었더니 설거짓거리가 많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자, 이제 약속대로 선물을 내놔라'는 표정으로 아내를 응시하고 있자니, 이 사람이 밀땅을 시작했다. 선물 때문에 설거지를 한 게 아니니 주든 말든 상관없다는 쿨한 자세를 취하고 싶었지만, 이미 몸은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 색칠놀이 할 것을 뽑아준 .. 2020. 10. 15.
휴업과 밀리터리 버거 롯데리아에서 밀리터리 버거가 나온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대한민국 보통의 남성들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군대,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씩 먹어야 했던 군대리아... 맛을 떠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버거가 나온다면 한 번쯤은 사 먹지 않을까? 한편에서는 남성 위주의 군대 문화이고, 지금도 변함없이 열악한 군대의 식문화를, 과거라는 이유로 낭만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던데, 햄버거 가게의 (언제 단품 될지 모를) 신메뉴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생전 처음으로 11번가에서 밀리터리 버거 사전 구매 쿠폰을 샀다. 6,400원 하는 것을 4,300원에 살 수 있으니 30%가 넘는 할인 아닌가. 일찌감치 추석 전에 쿠폰 2장을 .. 2020. 10. 8.
휴업과 개나리 원룸 휴업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새롭게 택지 개발해 지어진 곳인데,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는 3층짜리 노란색 건물 3동이 있다. '개나리 원룸'이란 이름도 건물 색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곳은 충주로 내려온 후 두 번째로 터를 잡았던 곳이다. 정확한 평수는 모르는데, 10평이 안 되는 공간에 방 하나와 복도 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말 그대로 원룸이다. 외관은 허름해 보이지만, 내부는 깔끔했다(전에 쓰던 사람이 깨끗하게 써서 더 그랬다).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건국대학교 축산과 실습장이 보이는데, 말이 실습장이지 젖소들을 방목시키는 목초지다. 덕분에 가끔 비몽사몽 일어나 창문을 열 때면 대관령에 와 있는 착각에 .. 2020.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