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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휴업과 넋두리

by Kang.P 202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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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업 날은 출근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법정 공휴일과 같은 개념이고 휴업 일자에 출근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 단위 월 단위로 처리해야 할 일이 그대로인 현업자들에게 쉬는 날수가 늘어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특히 외부 사람과 일정을 잡을 때는 더욱 난감하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이고 그들도 한가한 사람이 아닌지라, 휴업 일까지 빼 가면서 일정 조율을 하다 보면 자꾸만 일이 미뤄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휴업 일임에도 회사에 나와 있다(물론 다른 날 대체 휴업을 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색보정 전문가는 함께 화면을 보며 내용 설명과 전체적인 분위기, 원하는 색감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에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셨다. 옆에 앉아서 계속 보고 있자니 불편해하실 것 같고(내가 그런 성격이다), 나 역시 지루할 것 같아 사무실로 넘어와 읽던 책을 펼쳤다.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서점에 갔다가 아내가 고른 책인데, 우연히 책장을 뒤지다가 꺼내 들었다. 김영민 교수의 유쾌한 유머와 깊은 사유가 적절하게 버무려져 밑줄 쳐 가며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이런 류의 글들을 좋아한다. 애정 하는 최민석 작가의 글이 대표적이다. 

 

뭐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집중하게 되고 내용에 빠져들 수 있다. 비단 글뿐만이 아니라 영상도 마찬가지다. 재미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렇게 이목을 잡은 후 계속 이끌어 가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녹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재미와 내용을 적절하게 줄타기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훌륭한 작가이고, 유능한 피디다. 

 

 

이번 특집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 과연 나는 이런 감각을 가진 사람인가. 방송을 만든다는 게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고, 여러 스탭들의 의견이 오가며 내용을 다듬어 가는 과정인데, 이 모든 일의 최종 책임자는 피디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수상식장에서 '함께한 스탭들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며, 반대로 일이 잘못되어 징계를 받을 때는 모든 책임을 오롯이 피디가 지게 된다. 

 

힘들다고 신세한탄하는 게 아니고, 여럿이 함께 하지만 영광뿐 아니라 책임도 담당 피디가 가져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스탭을 잘 만나는 것이 큰 복이지만 그렇다고 스탭에게만 의존해서도 안 될 일이다. 피디 스스로 공부하고 시야를 넓혀야 하며,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지금 그렇게 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부끄럽지만 자신 있게 '그렇다' 외치지는 못하겠다.

 

나보다 한참 선배이신 분께 색보정을 부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앞서 이야기한 고민들을 하게 된다. 자존감을 키우고, 이것이 자만으로 빠지 않기 위한 공부와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한 시기이다. 어느덧 사십 줄에 들어서지 않았나. 익어가야 할 시기에 익숙해져 털썩 주저앉아서는 안 될 노릇이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다. 선배님께 뭘 드시고 싶은 지 물어보고 배달앱을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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