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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2021년~2025년

충주 회동

by KangP_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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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14일, 그러니까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국회의 두 번째 표결이 있던 그날이었다. 여의도 탄핵 집회에 참석 후 <귤국민태>라 명명한 대학 지인들 모임에 합류했다(초창기 멤버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모임 참석도 오랜만이었고 잠원이라는 동네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는데, 반가움도 반가움이지만 탄핵소추안 투표 결과를 기다리며 TV 속 우원식 국회의장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적 의원 300명 중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식당 안에 울릴 만큼 정적이 흘렀다.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
“와!!!!!”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던 미지근해진 소맥을 잔이 깨져라 부딪치고는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이렇게 맛있는 소맥은 처음이었다.


기분 좋은 술자리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쌓여가는 술병만큼 취해갔다. 바로 그날, 우리는 풀린 눈을 마주하며 다음 모임은 충주에서 할 것에 손가락을 걸었고 도장도 찍었다.

그리고 석 달 여가 지난 2025년 3월 29일. 마침내 그들이 충주로 내려왔다. 이때쯤이면 모든 것이 정리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헌재는 아직까지도 차일피일 판결을 미루고 있었다(다행히 오늘 선고 공고가 나왔다…ㅠ.,ㅜ).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고, 전국적인 산불은 며칠 째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말에 닥친 갑작스런 추위와 산발적인 비는 나름 고민해 정리한 일정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이 비로 산불이 많이 진화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 포함 13명의 사람들이 식당의 제일 넓은 자리에 모여 앉았다.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나와 마트에서 한아름 장을 보고는 아파트 게스트하우스로 올라갔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우리들의 이야기.

근 30년 가까이 관계를 이어오는 사람들… 각자 하는 일도, 고민의 방향도 다른 우리들을 지금까지 이어준 힘은 무엇일까. 어쩌다 보니 계속 연락이 닿았을 수도 있지만, 그 ‘어쩌다 보니’가 결국 인연인 거다.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한 사람들. 홀로 충주에 있다 보니 자주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고, 오랜만에 봐도 반겨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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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염색과 탈색으로 개성을 뽑내던 친구의 머리에는 하얗게 눈이 쌓였고, 언듯언듯 머릿속 두피가 보인다. 핸드폰이라도 볼라치면 당연한 듯 안경부터 벗고 보는 옆 친구의 모습도 이젠 익숙하다.

우리는 그렇게 인연의 크기만큼 나이 또한 먹고 있었다. 다른 욕심 따위는 없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나고 싶을 뿐이다. 지금처럼 왁자지껄 한바탕 떠들면서, 춤사위 좋은 친구의 <아틀란티스 소녀> 공연을 팔십 넘어서도 직관하고 싶을 뿐이다.

https://youtu.be/uXT656RTV_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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