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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아내와의 외식 (feat. 79대포 @ 충주 호암동)

by Kang.P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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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연 D+5개월 5일
※ 지천명 D-1,446

언제나 그렇듯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면 예약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피곤하다. 전날 과음을 하든 꿀 같은 휴식 시간을 갖든 피곤함에는 차이가 없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회사라는 공간을 떠나지 않는 한 월요병은 벗어날 수 없는 멍에 같은 거다.

출근해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만지다가 사진첩에 들어왔는데 음식 사진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순간 지난 토요일 밤의 일들이 떠올랐다. (딸의 성화에 못 이기신) 장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신 덕분에 오랜만에 아내와 둘이 오붓하게 한잔하러 나갈 수 있었다.

 

가끔 네 식구가 함께 고깃집에 간 적은 있지만 술집을 같이 가는 건 영 불편해서 못 가고 있었는데, 장모님이 그 길을 열어주신 거다(항상 감사합니다, 장모님).

집 근처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문을 연 79대포를 발견했다.

 

 

밖에서 가게 분위기를 살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됐고 검증되지 않을 곳이다 보니 아니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스윽 보니 나름 분위기도 괜찮고 손님도 적당해서 둘이 이야기하기 좋을 것 같았기에 문을 밀고 들어섰다.


일단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이런 레트로 감성은 딱 내 스타일이다. 맞은 편은 벽이 ‘브로꾸’(콘트리트블록을 이르는 말. 일제의 잔재)로 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각종 옛날 영화 포스터와 선거 벽보가 붙어있었다.

안주도 다양했고 우리가 찾던 딱 그 술집이었다. 결정장애가 있는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뭘 먹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장고 끝에 ‘일단 국물 안주로 하자’는데까지는 합의를 이뤄냈고 또 한참의 고민한 후에야 마침내 벨을 누르며 “여기 순두부찌개 주세요!”를 외쳤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내와 단둘이 술집에 마주앉아 잔을 기울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그래서인지 아내는 술을 계속 시켰다).


순두부찌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부드러운 순두부와 얼큰한 국물이 소주와 환상의 조합을 이뤘다. 이건 뭐 밥도둑, 아니 술도둑이 따로 없었다. 저녁을 안 먹었기에 아내는 밥을 시키라고 했지만, 술 좀 먹는다는 이들은 알 것이다. 술자리의 적은 배부른 포만감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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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사실 전날도 집에서 한잔했다. 그래서 이날은 간단하게 마시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이 모든 계획을 순두부찌개가 망쳐버렸다. 전날 음주로 상한 속을 순두부와 찌개 국물이 치유했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술을 맞이하게끔 했다.

순두부찌개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입맛을 쩝쩝 다시던 우리는 탁상 옆에서 메뉴판을 꺼냈다.


그렇게 시킨 두 번째 안주는 오꼬노미야끼였다.

이것 또한 맛있다. 밥을 안 시킨 건 신의 한수였다. 소주 한 병과 레몬소주 한 병, 딱 이렇게 마실 계획이었으나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계획에 불가했다. 남은 안주가 아까워서 술을 더 시켰고 술이 많이 남아서 다시 안주를 시켰다.


그렇게 추가로 주문한 건 오뎅탕.
‘아니, 이리 배가 부른데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기우였다. 오꼬노미야끼 몇 조각을 빼곤 모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안주를 이렇게 먹었으니 술은 오죽했으랴.


오랜만에 아내와 오붓하게 즐겼다. 평소 쉬이 꺼내지 못하던 속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격려하고 위로했다. 자주 이런 시간을 가지면 좋겠지만, 어쩌면 자주 할 수 없기에 그 희소성이 이 순간을 더 소중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모님 덕분에 귀한 시간을 가졌고, 또한 좋은 공간도 알게 되었다. 당분간은 호암동에서 술 한잔할 때면 이 집을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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