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섞기의 미학

by Kang.P 2023. 1. 6.
728x90


※ 금연 D+149
※ 지천명 D-1,456

2023년의 시작과 함께 매주 수요일 퇴근은 늦어질 예정이다. 생방송 때문에 그런 건데, 이번 주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퇴근이 늦다 보니 셔틀을 탈 수 없어서 기차나 버스로 충주로 넘어가야 한다.

두 대중교통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터미널이 걸어서 10분 거리라 버스 타기는 좋은데 버스비가 만 원이 넘고 충주까지 근 2시간이 걸린다(서울 가는 시간보다 길다). 반면 기차는 오천 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과 1시간이면 충분히 충주에 도착할 수 있어서 선호하는 편인데, 문제는 역이 너무 외진 곳이 있다는 것이다. 택시 타고 역까지 이동하는 비용까지 더하면 결국 버스보다 비싼 꼴이 된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에도 고민하며 버스와 기차를 저울질했다. 그리고 장고 끝에 돈보다 시간을 아끼기로 했다.

나름 빨리 움직인다고 한 건데 집에 도착하니 밤 9시였다. 허탈함을 뒤로하고 저녁 먹을 궁리를 했다. 짜장라면이 먹고 싶었는데, 뭔가 좀 특별하게 먹고 싶어서 기름에 채소를 볶다가 물을 붓고 분말스프를 넣어 짜장소스를 만들었고 면은 따로 삶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전분이 없을 때 밀가루로 대신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물론 짜장 만들 때에 한정된 이야기다). 검색으로 발견하고 따라 해 본 건데, 전분 양의 2배 정도의 밀가루를 물에 풀어 사용하면 짜장이 걸쭉해졌다.


전분 대신 밀가루를 넣은 짜장은 훌륭했다. 다만 면을 너무 오래 삶아서 불어버린 게 아쉬웠다. 그래도 맛있었다. 뭔가 좀더 건강한 짜파게티를 먹는 기분이랄까?ㅋㅋㅋ

반응형

'라면 섞어 끓이기'는 많지 않은 취미(?) 중 하나다. 말 그대로 두 종류의 라면을 섞어서 끓여 먹는 건데 이를테면, 짜파게티 스프에 스낵면 면을 넣는다던지 틈새라면 스프에 너구리 면을 넣는 식이다. 그럴 때면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 일쑤다. 나와 반대로 그녀는 제품 본연의 맛을 선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라면 회사가 지난한 실험과 섞기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라면들을 완성한 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가끔씩 다른 종류의 라면과 스프를 섞거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식재료를 섞어 먹는 걸 즐긴다. 예상치 못한 맛을 경험할 때의 짜릿함이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책 ‘믹스’ 안성은(Brand Boy) 지음


얼마 전에 읽은 책 <믹스>에서도 섞기를 강조했다. A급과 B급을 섞고, 상식과 비상식을 섞고, OLD와 NEW를 섞고, 익숙함과 낯섦을 섞으라고 한다. 그렇게 섞어서 만들어진 약간의 다름으로 승부하라는 거다.


"골리앗 같은 거대 브랜드와 상대할 때 필요한 것은 골리앗의 창이 아닌 다윗의 물맷돌이다.
'나음'보다 '다름'으로 싸워야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브랜드는 거꾸로 한다."
- 책 <믹스> 중에서



'어떻게 하면 라면을 맛있게 섞을까'만 궁리하며 살아온 나 자신을 반성했다. 왜냐하면 요즘 나에겐 '무엇을 섞어서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낯설게 보고,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손은 젓가락으로 불어버린 짜파게티를 꾸역꾸역 입에 넣고 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다.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와의 외식 (feat. 79대포 @ 충주 호암동)  (0) 2023.01.16
후배 결혼식에서의 단상  (0) 2023.01.08
2023년의 첫 기록  (0) 2023.01.02
명예퇴직과 마지막 회  (0) 2022.12.15
이석증  (4) 2022.12.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