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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아로이아로이 소고기 쌀국수

by Kang.P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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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D+5개월 12일
지천명 D-1,439

설날 연휴를 하루 앞둔 금요일에는 휴가를 냈다. 명절 준비할 것도 있고 웬만한 일들은 해 놓은 상태라 왕복 3시간을 허비하며 청주로 향하고 싶지 않았다.

 

휴가를 내고는 기분 좋게 장을 보고 오랜만에 아내와 점심 외식을 할 계획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날 아내는 명절을 앞두고 친구들을 만났다. 결혼과 육아, 직장생활 등의 이유로 각자 생활에 바쁘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시간을 맞춘 것이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아이들도 엄마를 찾지 않고 아빠와 함께 잠들었으니 금상첨화, 이는 분명 하늘이 주신 기회였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멀쩡한 듯했지만 아이들이 등교와 등원을 마치자 바로 방전되어 버렸다. 엄마의 정신력이란 이런 거다. 장 보는 건 둘째치고 아내의 해장을 위해 쌀국수를 먹으러 가려했던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결국 홀로 나와 시내 볼일을 보고 집 근처 '아로이아로이'를 찾았다. 가게에 들어가기에 앞서 재차 아내에게 전화해 의사를 물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홀로 들어가 소고기 쌀국수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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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이아로이는 태국음식점이다. 메뉴도 쌀국수, 볶음밥, 팟타이 이 세 가지인데 준비한 50인분 육수가 동이 나면 문을 닫는다. 전해 듣기로는 연수동 쪽에 있다가 호암택지 쪽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이곳이 호암동에 문을 열 때 박수치며 환영했다. 호암택지는 바로 우리 회사 옆인데, 원래 이곳은 과수원이 있는 야산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주변에는 식당 하나 없었고 외식이라도 하려면 차를 끌고 나가야만 했다.

 

그러던 중 이곳이 개발되었고 약 3년의 시간 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파트는 들어섰지만 아직 상업 건물은 공사 중이거나 완공이 되었어도 공실이 많던 상황에 일찌감치 간판이 걸린 게 아로이아로이였다. 

 

그 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점심을 밖에서 먹고 싶을 때면 느긋하게 걸어 나와 맛있는 쌀국수를 먹고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올 수 있는 그런 삶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다. 이 집 쌀국수는 정말 맛있다. 어떻게 표현해야 이 맛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여러 쌀국수를 먹어봤지만 해장에 이만한 게 없다(그래서 아내를 데리고 오려고 한 건데, 아쉽다). 국물이 정말 끝내주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무도 50인분만 준비한다는 육수의 힘인 것 같다. 

 

기호에 따라 양념통에 있는 고추씨, 설탕 등을 추가하여 맵기와 맛을 조절할 수 있는데, 기본적인 맛은 항상 일정해서 좋다. 

 

젊은 사장님은 음식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었고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아는 게 아니라 사장님의 인스타를 팔로잉하고 있는데 읽은 책에 대한 글이 많다. 덕분에 몰랐던 책을 알게 되었고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로이아로이 뿐만 아니라 많은 식당과 술집, 편의시설들이 호암택지에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 회사생활할 맛이 좀 나겠는데' 하며 웃음 짓고 있었는데 청주 사옥으로 출근하라는 명령이 났다. 야속했다. 16년 동안 회사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서 생활하다가 이제 막 주변의 편의시설을 즐기며 삶의 질을 높여 볼 요량이었는데 말이다. 

청주로 이사 간 사람들도 있지만 난 여전히 충주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집값 떨어졌을 때 얼른 청주로 이사오라고들 하는데, 글쎄... 나는 아직 이사 생각이 없다. 

 

아이들이 이 도시에서 너무나 행복하게 자라고 있고, 아내의 고향이기에 그녀가 마음 터놓을 친구들이 있으며, 힘들 때 의지할 장인, 장모님이 곁에 계시고, 조금만 걸어가면 오감을 만족시켜 주는 맛있는 쌀국수집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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