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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4,000개의 메일 정리

by Kang.P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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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연 D+177
※ 지천명 D-1,428

발단은 구글드라이브의 용량 부족이었다. 개인적으로 1년 단위로 결제하며 구글드라이브 100기가를 유료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달인가 프로그램 출품을 해야 했는데 구글드라이브에 올려서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45분짜리 열두 편을 올리고 나니 드라이브 사용량이 92%로 늘었고 추가 결제를 하여 용량을 늘리라는 협박, 아니 경고 메시지가 떴다.

당장 지울 수 없는 상황이라 최대한 드라이브 사용량이 늘지 않게 쓰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Gmail이 용량을 꽤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구글드라이브 용량 확보를 위해 예정에 없던 메일을 정리하게 되었고 4,000개가 넘는 메일을 2시간 넘게 정리해서 800 대로 줄였다. 일괄적으로 지운 게 아니라 메일 제목을 보며 살려둬야 할 것과 지울 것을 구분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꼼꼼하게 메일을 정리하다 보니 영화 <박하사탕>이 떠올랐다. 기차가 거꾸로 가며 설경구의 과거 모습이 그려졌던 것과 흡사한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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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여름, 케언즈 출장을 준비하며 주고받던 메일들을 지나니, 2021년에 방송했던 프로그램 <거기 어때?>의 작가들과의 메일이 뒤를 이었고 그 메일들을 보며 나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좀더 지워나가다가 2020년에 제작한 다큐 <새날의 아이들>과 만났다. 사전 제작 단계부터 방송 직전까지 담당작가와 주고받은 고민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남아있었는데, 그때의 치열해야만 했던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둘째 딸의 식단표를 프린트해 달라는 아내의 메일을 뒤로하고 좀더 가다 보니 이번에는 큰 딸의 식단표를 부탁하는 아내와 다시 만났다. 2014년 신혼여행 준비하는 메일까지 보고 나서야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전체 용량의 92%를 사용 중이던 드라이브는 그 양이 86%로 줄어 있었고 경고를 하듯 빨간색이던 숫자 역시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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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후딱 메일 정리를 마치고 오후부터는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기획안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오후 3시가 다 돼서야 메일 정리가 끝났다. 결국 (언제나 그랬듯) 오늘 할 기획안 작업을 내일로 미뤘다(제 버릇 개 못 준다).

매년 이 시기면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한 기획안 작업이 골머리를 썩인다. 선정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고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안에 담아야 하는데, 늙었는지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그럼 젊었을 때는 잘 굴러갔느냐? 글쎄).

아이패드를 산 것도 그 핑계, 아니 그 이유에서였다.

iOS 업데이트가 이뤄지면서 생긴 'Freeform'이라는 앱은 정말 획기적이었다. 브레인스토밍하기엔 이만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폰은 너무 작아서 다루기가 힘들었고 집에 있는 아이맥에서 하자니 이동 중에 떠오른 무언가를 정리하는 게 불가능했다.

결국 아이패드가 답이었다.

 


그래서 구입했고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하고 있다(물론 가끔 넷플릭스도). 만약 이번에 제작 지원에 선정된다면 이 모든 영광은 아이패드에게...(김칫국).

한참 메일 정리를 하다가 건너편 편집실의 동료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해서 함께 회사 식당에 가서 카레를 먹었다. 그리곤 1층 커피숍에서 티타임을 가졌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들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나만 빼고 말이다... 사실 뭐, 나라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겠냐마는, 차이가 있다면 나는 고민하고 있을 때 그들은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거다. 사십 대 중후반 가장의 삶이란 게 이러한 고민과 실천의 정반합인 듯하다.

결국 나의 금요일은 깔끔하게 정리된 메일함과 그로 인해 늘어난 구글드라이브 용량, 그리고 아이패드에 대한 만족감과 기획안에 대한 스트레스, 먹을 만했던 카레와 사십 대 중후반 가장의 무게로 정리할 수 있겠다.

부디 주말에는 기획안을 정리할 수 있기를...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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