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아내는 부산에 가고 싶어했다. 나 역시 싫지는 않았으나 그 먼 거리를 운전해서 오갈 생각을 하면 갑작스런 두통과 발열 증상을 보이며 쉽게 결심하지 못했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5월 연휴에 함께 여행을 도모하고 있던 선배 형네 가족과 목적지를 논의하던 중, ‘어~’ 하다 보니 부산의 숙소를 예약하고 있었다.
5월의 첫날, 앞서 말한 장거리 운전의 피로도를 감안해 기차로 움직였다. 충북선을 타고 오송역으로 이동해 KTX로 갈아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비’였다. 여행 일주일 전부터 비 예보가 있었다. 중요 시기마다 잘못된 예보로 곤혹을 치른 전례가 많은 기상청이라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야속할 정도로 송곳처럼 정확했다.
숙소에 도착 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서고 얼마 못 가서, 마치 웰컴 세리머니라도 하듯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졌다. 혹시 몰라 챙겨간 우산도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땐 신발은 물론, 바지까지 홀딱 젖어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의 실사판이었다.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눅눅해진 심신을 돼지국밥으로 달랬다.

우리가 찾은 곳은 벡스코 근처의 수변최고돼지국밥 센텀점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의 깨우침을 주기 위해 신께서 큰 비를 내리셨나 보다. 정말 맛있었다. 비에 쫄딱 젖은 육신은 뜨끈한 국물과 연거푸 들이키는 소주 덕분에 안정감을 찾아갔다. 국물을 깔끔했고 고기 양도 많았다.
더욱 놀란 것은 아이들이 너무 잘 먹었다. 특히 둘째 딸은 마치 산적이라도 빙의한 양 입안 가득 고기를 물고는 엄지를 치켜들며 억척스럽게 씹어댔다.
기분 좋은 포만감과 함께 식당문을 나섰다. 밖은 여전히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맛있게 먹었어?’ 인사를 건네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순간 닭살이 돋았다.
비 때문에 부산 여행 첫날을 그냥 버릴 순 없었다. 영화의 전당 건너편에 있는 ‘뮤지엄 원’을 찾았다.
다양한 전시, 특히 LED를 활용한 전시물과 작품이 많았다.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진득하게 감상하고 싶었는데,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내일을 위해
홀딱 젖은
신발부터 빨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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