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촬영 다 끝나면 이거 나한테 줄 수 있나유?”
2023년 10월쯤이었다. 한창 시루섬 다큐를 촬영하던 때였고 그날은 당시 시루섬 주민이었던 어르신 댁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긴 질문과 답이 오간 후, 어르신은 인터뷰에 사용한 시루섬 사진을 가리키며 이처럼 말씀하셨다.
옛 고향 모습이 담긴 사진을 처음 봤을뿐더러 물속에 잠겨버린 고향의 모습을 선명한 항공사진으로 접하니 너무 반갑고 그립다며 조심스럽게 부탁하셨다.
“약속할게요, 어르신. 촬영 다 끝나면 꼭 가져다 드릴게요.”
손가락을 걸진 않았지만 꼭 그러리라 맘속 깊이 다짐했다. 이날 이후로도 촬영은 계속됐고 편집과 후반 작업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끝에 올 1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방송을 마쳤다.
그렇게 방송을 낸 후 또다른 일상이 계속되었지만 그날의 약속은 항상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늘 그렇듯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그날의 약속은 1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약속한 날과 하루하루 멀어지고 있던 중 때마침 단양에 갈 일이 생겼다. 이때다 싶어서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다.
"아이고~ 기억하고 있었어유?"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어르신의 목소리에 죄송했고 대역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사과와 함께 연락이 늦은 이유를 구구절절 변명하며 횡설수설댔다.
다음날, 한 손에 베지밀을 들고 사진과 함께 찾아뵈었다.
'아이고~', '그래 여기에 우리집이 있었지', '와~~', ‘그래, 기억난다, 기억나~’
사진을 보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걸 진작에 전해드리지 못한 죄송함에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진으로나마 접하는 고향의 모습이 이리도 반가우실까.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고향의 의미와 어르신의 그것은 전혀 다른 듯했다. 어쩌면 어르신에게 고향이란 돌아가고 싶은 당신의 화양연화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고향이 있음에도 안 가는 것과 돌아갈 고향이 사라져서 못 가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나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이젠 갈 수 없는 고향이지만 꿈속에서나마 사진 속 고향 산천에서 꽃처럼 아름답던 그 시절과 조우하시길 바랍니다. 어르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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