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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8개월만의 집들이

by Kang.P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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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작정을 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난 주말, 이사한 지 8개월 만에 집들이를 했다. 핑계를 대자면, 지난해 9월 말에 이사하고 몇 번의 집들이를 했는데, 청주에서 근무하는 동료들과는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집들이는 내 의지로 성사됐다기보다는, 청주로 근무지를 옮긴 동기 녀석이 이번에 이사를 했는데, 우리가 집들이를 해야 본인 집들이도 할 것이 아니냐는, 피할 수 없는(피할 생각은 없었다) 논리를 들이댔고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토요일 오후 4시 즈음, 초인종이 울리며 그들의 도착을 알렸다.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았고, 모름지기 집들이니 만큼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공간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집들이의 하이라이트인 술자리로 이어졌다. 나름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생각에, 얼마 전 구입해서 정성스럽게 시즈닝을 마친 무쇠 팬에 등심과 아스파라거스, 양파 등을 올려 먹기좋게 구웠다. 그러나 이런, 무쇠 팬이 너무 작은 나머지 사람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고, 급기야 다음날 속 괜찮냐며 건 안부 전화에서 '안주 없이 술만 먹었더니, 너무 힘들어서 일어나자마자 아침부터 챙겨 먹었다'는, 실로 미안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주고받아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번 집들이는 총체적 난국이었으니, 손님들 초대해 놓고 집주인이 먼저 뻗어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다음날 아내가 찍은, 거실에 널부러져있는 사진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영화 '맨 인 블랙'에서 윌 스미스가 사용하던 기억제거장치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청주로 달려가 그들 앞에서 눌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결국 둘은 우리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원치 않는 커피를 마시며, 청주로 태워갈 형수님을 기다렸다고 한다). 

 

좌충우돌 집들이였지만,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즐거웠으니까 감당하지 못할 만큼 술을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고 축복이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더 고맙다. 

 

회사의 어려움과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부담감으로 스트레스 받고 있는 요즘인데, 이들과의 조우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물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붙잡고 머리 싸매야 하는 현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것에 대하는 자세는 뭐랄까, 조금 평안해졌다고 할까. 부정적으로 보던 시각이 조금은 긍정적, 희망적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미묘한 시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과의 만남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도 상대방에게 (미세하게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이 마흔이 넘고도 철부지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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