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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봄비

by Kang.P 2020.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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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날이 끄물끄물하더니,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빗방물이 떨어진다.  아마도 올해 들어 제대로 느끼는 봄비인 것 같다. 할 일을 핑계로 테라스에 돗자리를 깔고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 자리를 폈다. 왠지 이 빗소리가 큰 영감을 가져와서 막혀있는 문제들을 풀어갈 아이디어를 던져 줄 것 같았(지만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며 집안의 화분들을 내어놓고 오랜만에 비를 맞힌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의 흙냄새가 좋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파리가 떨어지는 빗방울과 이를 머금고 있는 이파리를 보고 있자니 '다시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이 거짓이 아닌 것은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지는 더 길어지며 굵어질 것이고, 이파리는 더 넓게 자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더욱 신기한 것이, 고작 물만으로 식물이 생존하고 자라며 과실을 맺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흙 속의 많은 미생물과 무기질이 성장에 도움을 주겠지만, 농사가 아닌 경우에야 대개 척박한 곳에 씨가 떨어져도 적당한 시기에 적정량의 비(물)만 와주면 싹이 트고 자라니 말이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식물에 비하면 인간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생명체구나'하는 생뚱맞은 결론에 이르고 만다.

맞다. 당신이 생각한 대로 오른쪽 첫번째 것은 상추다.

비 온 뒤에는 식물들의 처져있던 이파리들이 힘차게 하늘을 향하고 전보다 넓게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가 식물에게 주는 것에는 성장뿐만 아니라 충전도 있다. 비가 주는 활기참, 활력 충전이랄까. 사실 이런 충전은 요즘의 나에게 절실한데, 나는 무엇으로 지친 삶을 충전하고 있을까.

술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니 술을 자주 마신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인 상황에선, 집에서 아내와 둘이 주로 마신다(솔직히 말하면 이번 주 후반은 3일 연장 마셨다). 근데 의외로 이것으로 활력을 받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게 정답이 없는 일이다 보니, 아내와 술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뭔가 뇌리를 스칠 때가 있다. 이제는 나이도 나이니만큼 간 손상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간에 무리만 안 간다면 이런 일상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알콜 중독 초기 증상으로 사료된다).

결국 오늘의 봄비는 빗소리로 큰 영감을 가져와서 막혀있는 문제들을 풀어갈 아이디어를 던져 주는 대신, '오늘 저녁은 테라스에서 스테이크를 구우며 와인을 마셔야겠다'는 저녁 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만을 던져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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