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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책상 정리

by Kang.P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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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을 정리하다 추억과 만났다.

타의에 의해 책상 정리를 해야만 했다. 9월 말부터 근무지가 충주에서 청주로 바뀌게 된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준비할 시간도 없이 현실화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야속하게도 개인 물품뿐만 아니라 책상까지도 가져간단다. 결국 사람보다 책상이 먼저 이사 간다.

 

 

입사와 함께 16년을 사용한 책상에는 16년의 개인사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서랍 속에는 지금은 쓸 수 없는 6mm 테이프와 12년 전의 전기요금 고지서,

 

 

유효기간이 14년 4개월이나 지나버린 상품권

 

 

그리고 충주로 내려오고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에 받은 카드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5년 2월 말. 장위동 반지하 자취방의 짐들을 화물차로 옮겨 싣고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그 후로 주말이면 생애 첫 신용카드를 움켜쥐고 서울로 올라가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직장인이 된 것을 실감하곤 했었다.

지난 1년의 백수 기간 동안 신세 진 선후배 동기들에게 결초보은하며 사람된 도리를 하기 위해 입사 첫 해에는 저축 없이 사람들에게 보답하겠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모름지기 사람은 그래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허하셨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으니 저축 없는 삶은 1년을 넘어 3년 째로 접어들고 있었고 어렵게 정신을 차리고 둘러봤을 땐 아래층에 살던 입사 동기 녀석이 전세 자금을 마련해 원룸을 탈출하고 있었다.  

나만 제자리였지만 괜찮았다.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그 이유가 원망스럽거나 아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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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라는 동네로 오면서 직장인이 될 수 있었고 직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두 딸의 아빠가 되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충주는 나에게 제2의 고향이요 삶의 근간이 된 공간이다. 

 

이런 의미 있는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서운하다. 이런 서운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른 청주로 이사오라고 충고하는데 그들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도시 규모나 인프라 등을 봤을 때 청주가 살기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기 좋다'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내 잣대로는 지금 사는 이곳이 더 살기 좋다(물론 이 생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

 

현실감 없는 철없는 소리한다고들 하겠지만, 성격이 운명이라고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쩔 수 없다. 

 

 

텅 빈 사무실을 보고 있자니 서글퍼진다. 창사 50년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우린 또 바뀐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의 이 감정과 현실은 추억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좋은 것만 기억하게 될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https://youtu.be/5rlx2zGof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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