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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관장

by Kang.P 202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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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나오지 않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변기에 앉아 오열하고 있는 딸을 보고 있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며 마주한 광경인데, 그 고통이 온전히 나에게 전달되는 듯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어린이집에서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집에 와서는 상태가 더 심각해졌고, 살펴보니 똥이 굳어서 힘을 주면 항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통증 때문에 더 이상 힘을 못 줘서 다시 들어가 버린다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아주 상세하게 묘사해 줬다.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고 아내에게 한 말을 훔쳐 들은 둘째는 안 간다며 더욱 목청 높여 울며 저항했다. 결국 방법은 관장 밖에 없었다.

동네 약국으로 달려가 관장약을 사 들고 오니 지친 둘째는 소파 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측은하던지 대신할 수만 있다면 그 변비를 돈 주고라도 사 오고 싶었다.

샤워를 하는 사이 아내는 아이를 깨워 관장을 시켰다. 또다시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딸은 딱딱한 두 덩어리의 변을 배설하고 나서야 평정심을 되찾았고, 얼마 후 언제 변비로 괴로웠냐는 듯이 평소의 말괄량이 모습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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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 고통을 느낀다. 당연하게 여겼던 배변 활동이 맘 같지 않을 때, 당연한 숨쉬기가 불가능할 때, 당연하게 움직여야 할 사지가 그렇지 못할 때. 뿐만 아니라 당연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 때 역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감사해야 할 이유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족이 아프지 않음에 감사하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순응하며 살자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진취적인 삶을 추구하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자는 거다.

그나저나
잠자기 전에 한 번 더 관장을 했는데 녀석이 그냥 잠들어버렸다,,, 불침번이라도 서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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