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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독서

[책] 아무튼, 싸이월드

by Kang.P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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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하지만 남세스럽고 애틋하지만 오글대는 그것.
어딘가에 안전하게 간직하고 싶지만 '굳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 그것.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딱히' 자주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은 그것.
그래도 절대로 사라지지만은 않으면 좋겠는 그것.
나의 이십대, 나의 청춘. (14page.)


아무튼 시리즈는 출판사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가 함께 펴내는,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다. '아무튼, 싸이월드'는 이 시리즈 중 마흔두 번째 이야기. 책의 저자인 박선희 작가는 광화문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고만 나와 있었는데, 검색을 통해 기자협회보 기사를 보니 동아일보 기자였다.

신문사의 논조는 나와 맞지 않지만, 작가가 써 내려간 싸이월드의 추억과 사연들에는 탄성을 지르며 공감했다.

맞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싸이월드가 있었다. 그 곳에서는 도토리 5개로 구입한, 100곡이 훨씬 넘는 BGM이 있었고,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과 함께 짜파게티와 신라면 사이에서 갈등하는 손 사진이 있었으며, 화도관 앞 잔디밭에 낙엽을 밟고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사진에는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틀에 박힌 문구가 적혀 있었으며, 방명록에는 이벤트에 당첨된 후배의 선물 달라는 협박성 글이 적혀 있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등장으로 싸이월드는 쇠퇴의 길을 걷다가 결국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대의 소중한 추억들을 백업해 놓지 못한 걸 아쉬워하다가 점점 잊어갈 때쯤, 싸이월드가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 또한 3월에서 5월로 연기되더니 다시금 7월로 연기된 상황이다. 이해는 간다. 그 많은 데이터를 다시 복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담이지만, 싸이월드의 부활 소식에 관련주를 조금 샀는데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종목토론방에서는 '상폐각'이라는 둥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얼른 탈출하라는 둥의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싸이월드의 부활에 대한 기대 때문에 팔지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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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닮은 듯하지만 다른 이유는 접근 방식의 차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친구가 되는 순간, 그들의 글과 사진들이 내 타임라인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타임라인을 도배하는 누군가의 글에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고, 나 역시 누군가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싸이월드는 다르다. 일촌 친구의 글과 사진을 보기 위해선 내가 직접 그의 미니홈피를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사진첩, 다이어리, 게시판 등을 직접 클릭하고 들어가야만 확인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을 알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 그 공간 안으로 진입하겠다고 결심해야 들어올 수 있었고, 탐색을 해야만 뭔가를 찾을 수 있었다.
설령 그곳에 한심한 것들을 올려놓는다 해도, 적어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다. (20page)



'아무튼, 싸이월드'는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싸이월드에 대한 추억들을 구체적으로 잘 풀어냈다. 특히 작가의 멋진 필력 덕에 책장이 절로 넘어갔다. 개인적으로 '꽈배기의 맛' 등을 쓴 최민석 작가와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영민 교수님의 글처럼 재치와 유머가 있으면서 또한 울림과 깊이가 있는 글을 좋아하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랬다.

선물 해준 친구 덕에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으며 싸이월드의 추억과 함께했다. 다음 아무튼 시리즈는 무엇으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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