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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휴업과 고장난 에어컨, 그리고 크라잉넛

by Kang.P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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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집에 있는 모든 선풍기를 틀어 놓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유래 없는 52일간의 긴 장마 후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젠장) 에어컨이 고장 났다. '옛날에는 선풍기 한 대로 긴 여름을 나지 않았던가' 하며 쿨하게 받아들이려 했는데, 나는 옛날 사람이 아니다,,, 특히 이번 주는 월, 화 연달아 휴업인지라 이틀을 집에 있어보니, 이제야 아내와 아이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회사는 에어컨이 빵빵하다).

에어컨을 틀어놔도 32도다. 이 기계에서는 따뜻한 선풍기 바람이 나온다.


이미 몇 번에 걸쳐 여러 명의 AS기사님들이 다녀갔으나, 희한하게도 이들이 올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문제없이 작동되었고 어쩌다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증상은 있으나 원인은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이 돌아왔다(정말 그랬다. 같은 증상의 다른 집도 배선 뜯고 한전 불러서 전기까지 확인했지만, 결국 원인을 찾지 못했단다). 마침내 마지막에 온 선임 베테랑 기사님이 에러코드를 찾는 데 성공했지만 부품이 없어서 택배로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습한 더위와의 싸움도 지치지만, 업무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도 더위 못지않게 나를 옥죄어 온다. 이제 촬영은 거의 끝났고 나 자신과의 싸움인 편집에 매달리고 있다. 어떻게 구성해야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작가님과 머리 맞대고 고민 중이다.

이와 같은 더위와 편집의 압박 속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한줄기 빛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크라잉넛 25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이다(휴업 때문에 돈은 없지만, 우리가 돈이 없지 카드가 없던가).

예약한 베스트 앨범이 도착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크라잉넛을 처음 본 것은 1998년 즈음 장충체육관에서 있었던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에서였다.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자리에 많은 가수들이 출연했는데 크라잉넛의 무대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 날 이후 그들의 노래는 죄다 찾아들었고, 2005년 입사 첫 회식자리에서는 ‘말 달리자'를 불러 재끼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흔히들 크라잉넛하면 신나는 노래만을 생각하는데, 이들 노래는 가사가 예술이다. 가사만 보면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다. (모두가 대단한 뮤지션이지만) 특히 한경록 형님이 작사한 곡들은 그 가사를 곱씹게 된다.

작년에는 입덕할 기회도 있었으니, 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전야제 콘서트에 그들을 섭외한 것이다. 체면과 부끄러움 따위는 뒤로하고 크라잉넛 1집 앨범을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았다.

youtu.be/484pH4tOXbY

질풍노도의 20대 시절에 큰 위로가 되어준 크라잉넛 형님들. 40대가 되고 두 딸의 아빠가 된 지금도 이들의 음악은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고 그때의 열정을 되살려주며 더불어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

"
니가 취하고 비틀대고 방황하고 실수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무너져도
괜찮아 누구나 한 번쯤은 바닥 치니
죽는단 말 대신 웃는단 얘길 해봐

고장 난 시계도 시간은 흘러가지
앙상한 가지도 봄이 오면 꽃이 피지
청소해 더럽게 어지러운 니 방부터
청소해 축축이 우울해진 머릿속을

괜찮아 괜찮아 잘될 거야
오늘은 살아있네

고장 난 시계가 멈췄어도
오늘은 살아있네
"
노래 <5분 세탁> 중



크라잉넛 형님들의 노래를 들으며, 오늘도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보도록 노력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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