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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휴업과 독서

by Kang.P 202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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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병'이 생겼다. 매주 월요일 휴업을 하게 되면서 생긴 것인데 이게 월요병과 유사하나, 무려 3일을 쉬고 출근하다 보니 그 후유증은 훨씬 크다. 이런 이유로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화요일에는 중요 일정을 만들지 않는다. 휴식에서 업무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완충 지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완충 같은 소리 하며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지만 말이다). 하여 오늘은 이번 주 일정 정리 정도로 업무를 마감하고 최민석 작가의 책,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를 꺼내 읽었다.

 

요즘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시기에 책이 눈에 들어오겠냐마는, 이 책을 다시 꺼내 든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국제 NGO 월드비전의 활동과 후원받는 아이들의 실상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최민석 작가의 초창기 문체가 궁금했던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어려운 상황과 처지를 글로 풀며 NGO 활동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파하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지난 상처와 고통의 순간들을 들춰 묻고 다시금 그 기억들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잔인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 상황에 임하는 최 작가의 자세가 궁금했다. 왜냐하면, 요즘 내가 저와 유사한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몇 달째 만나고 있는 아이들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절대 빈곤과 난민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의 삶,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한국 사회가 이들을 인정해야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현실과 부딪히고 좌절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즉, 이들의 입을 통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상황이 특수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생채기로 덮어버린 과거의 상처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마다 조심스럽다. 민감할 수 있는 질문들은 '좀더 친해지고 편해지면 물어봐야지' 하며 뒤로 미루기 일쑤지만 데드라인이 존재하는 일이기에 조급함은 커지고, 기다림과 조급함 사이에서 피로도는 높아진다. 이런 고충 속에서 꺼내든 이 책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 속의 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눈물을 담아야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이들을 존중하자. 비록 손가락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지만, 마음으로 이들을 한 명 한 명씩 찍자. 이들의 얼굴 위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전부가 아닌, 이들의 삶 전체가 투영되는 한 장을 찍자. 그리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질문, 어투, 눈빛으로 한 명 한 명을 대하자. 한마디라도, 한 단어라도 최대한 배려와 애정을 담아서 말하고 바라보자.'

- 책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최민석) p.226

 

 

마치 이 문단은 나에게 '고민 많고, 힘들지? 잔인할 수 있지만 해야할 일이야. 그렇더라도 아이들을 향한 네 마음은 진심이잖아? 혹 아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 그러면 통할 것이고 언젠가 열릴 거야' 라며 토닥여 주는 듯했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야수와 같은 잔인함이 필요한 직업인데 성격이 모질지 못하다 보니, 15년째 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이런 아마추어 같은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기간과 실력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오랜만에 책으로 위로받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이 기분으로 내일 또다시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듣고, 교감하고, 느껴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통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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