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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낯부끄러운 게으름

by Kang.P 2019.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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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지에 가을이 찾아왔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호암지를 산책하다가 가을과 만났다. 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어떻게 이리 갑자기 바뀔 수 있냐 따지고 싶었지만 아마도 지난주에는 못 보던 것들이 오늘에야 눈에 들어왔나 보다. 호암지는 계속 가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눈치챈 내 탓이란 말이다. ‘이런이런,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 호암지야’라며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오늘의 감성이 지난주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있겠다.

사람마다 성격과 성질이 다르다 보니,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물론 한 사람 안에서도 변화의 내용과 종류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그렇다. 나에게 갑작스러운 신상(?)의 변화가 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둔다거나,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큰 변화나 결정의 순간은 아니고, 업무에 있어서의 작은 변화인데 이것이 왠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내가 즐겁고 보람된 일과 타인에게 인정받는 일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누구나 한번 쯤은 했을 고민이고, 특히 직업 선택의 순간에 이런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아니 이 사람아, 즐겁고 보람된 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될 것 아닌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의미있는 일이 다른 이들에겐 하찮은 것으로 치부될 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아니 이 사람아, 그럼 사람들을 설득하면 되지 않는가.’ 정답이다. 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이해시키고, 그들이 몰랐던 가치를 일깨워주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부딪힐 때면, 나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 이유도 잘 안다. 가슴으로 아는 '그것'을 공부하고, 객관적으로 정리하여 그 논리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나는... 게으르다. 그래서 논리는 없고 '일단 한번 잡솨봐' 식의 약장수 화법으로 사람들에게 호소하니, 그 누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겠냔 말이다.

어쩌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즐겁고 보람된 일 자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으니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없을 수밖에... 내가 관심이 있고, 그것을 함으로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는 것이 우선인데, 난... 정말 게으르다. 정해져 있는 답을 찾는 것에는 익숙한데, 스스로 답을 만드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나이 마흔이 넘어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낯부끄럽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늦게나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어느덧 퇴근 시간... 나는 참 게으른데, 퇴근 시간 챙기는 건 또 엄청 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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