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 여행은 비와 함께 했다. 때 아닌 가을장마가 우리의 동반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첫날 저녁 식사도 맛집을 찾아다니는 건 언감생심, 숙소 가는 길에 적당한 곳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비자림 국수집. 숙소와 지척이고 브레이크 타임도 없어서 어중간한 시간에 도착한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운 좋게도 이 집, 맛집이었다. 식당 분위기도 운치 있을뿐더러 음식도 맛있었다.
깊은 맛의 사골 육수가 매력적이었던 고기국수는 물론이고 매콤 달달한 비빔국수의 양념장도 훌륭했으며, 돔베고기는 입에서 녹았다.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더욱 만족스러웠다.
여행 내내 계속되는 비 때문에 우리의 동선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를 비롯해 실내 위주로 움직였는데, 다행히 여행 마지막 날이라 할 수 있는 셋째 날에는 비가 그쳤다.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스누피가든에 갈 수 있었다. 2년 전 촬영 때문에 들렀던 아부오름이 스누피가든 바로 옆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스누피가든은 실내와 야외 나뉘어 있는데, 피너츠의 다양한 캐릭터들과 이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테마와 함께 접할 수 있었다.
꼼꼼하게 전시관을 살피며 피너츠의 내용과 작가의 철학을 곱씹고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고 싶었으나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아이들은 어른들을 가만히 두질 않았다.
내부도 좋았지만, 야외 가든이 정말 좋았다.
2만5천 평의 넓은 부지에 8개의 테마로 꾸며진 야외 가든은 멋진 산책 코스였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풍광을 즐기며 경품을 받기 위한 8개의 스탬프를 찾아다녔다.
이런 우리의 유유자적을 질투라도 한 걸까. 찰리 브라운 야구장을 걷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말이 소나기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많은 비를 뿌려댔고, 급한 대로 우리는 가지가 무성한 나무 밑에 모여 비를 그어야만 했다. 아이들 감기라도 걸릴까 노심초사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 웃지 못할 상황도 여행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자리잡았다.
한참을 퍼붓던 비가 그친 후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얄궂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보더콜리가 양을 몰고 가듯 검은 구름을 몰아냈다. 제주 여행 중 처음 보는 파란 하늘이었으니 우린 흥분할 수밖에 없었고 차를 몰아 코난해변으로 향했다.
물 색깔이 이리도 이쁠 수 있단 말인가. 해외 휴양지를 방불케 하는 자그마한 에메랄드 빛 해변에는 늦은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댔고 우리 아이들도 달려들어 모래성을 쌓으며 별 것 아닌 것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날이 좋아진 김에 들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청굴물.
청굴물은 쉽게 말해 해변에서 올라오는 용천수를 받아 쓰기 위해 만들어 놓은 큰 물두멍이다. 2년 전 촬영 때 이 청굴물 앞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파도가 높아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멀찌감치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그때를 추억하기 충분했다.
평소에도 비를 몰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바다 건너 제주까지 따라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제주 떠나기를 하루 앞두고 모습을 드러낸 파란 하늘이 더 반갑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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