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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휴업과 추석, 그리고 큰 딸아이

by Kang.P 2020.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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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몇 달간 매주 월요일에 휴업을 내며 휴업일수 5일을 채워 왔는데, 9월은 월요일이 4일밖에 없다. 하루를 언제로 할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주 화요일로 내버렸다. 그 결과, 9월 26일부터 10월 3일에 이르는, 장장 8일간의 추석 연휴가 생겨버렸다. 평소 같으면 이 꿀맛 같은 연휴를 어디서 무엇을 하며 보낼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을 텐데, 올해는 코로나 덕분에 큰 고민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응?)

 

연휴 둘째 날인 27일은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장모님이 아이들 봐주신 덕분에 둘이 오붓하게 밖에서 한 잔 할 수 있었다. 월요일과 화요일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라, 아내와 낮시간을 보냈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서점 '책이 있는 글터'에 들러 구경도 하고 각자 책도 한 권씩 샀다. 

 

내가 고른 책은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

 

본격적인 연휴가 시작되자, 매년 그랬듯이 제천 부모님 댁에 가서 하룻밤 자고 충주로 넘어와 처갓집에 인사드리고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제천 집에는 아직도 지난 여름 태풍의 상흔이 남아있었다. 혼자 수해 복구를 해 오시던 아버지는 추석 명절에 아들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사진으로 볼 때는 별것 아니게 보이지만, 실상은 길 건너편 흙을 리어카에 퍼담아서 골짜기로 끌고 올라와 쏟아부으면, 그걸 다시 통에 옮겨 담아 사람이 들고 가서 부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만만하게 봤는데, 오랜만에 하는 삽질은 힘들었다. 그렇다고 70 넘은 아버지도 힘든 내색 없이 하시는데 젊은 놈이 힘들다고 나자빠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십수 번을 리어카로 옮기니 대충 정리가 되었다. 

 

집밥은 항상 맛있는데, 노동 후에 먹는 집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더욱이 명절 전날이라고 수육을 삶아주셨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감탄사를 연발하며 게걸스럽게 먹다가, 그날 밤 배탈이 났다. 밤새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고, 추석날 아침은 숟가락조차 들지 못해 엄마가 속상해하셨다.   

 

그 어느 식당에서 맛볼 수 없는 엄마표 수육.

 

2.

배탈을 빼면 그럭저럭 큰 탈 없이 추석 연휴를 보냈는데, 연휴 기간 내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것은 사실 큰 딸에 대한 고민이었다. 큰 딸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한 편인데, 왜 그럴까 생각을 많이 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자라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거기에는 부모의 잘못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사람 자체를 피한다거나 활동성이 떨어지고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건 아니다. 밖에 나가 놀기를 좋아하고, 친한 친구들과 놀 때는 놀이를 주도하기도 하는데, 낯선 사람과 환경에서는 180도 바뀐다. 낯선 또래 아이가 친해지고 싶어서 인사라도 할라치면, 엄마 뒤로 숨기 바쁘다. 또한 자신이 요구를 상대방에게 잘 이야기하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는 분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우위를 선점하지 못할 때면 내색은 안 하지만 매우 속상하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 따른 것일 텐데, (그러면 안 되는데) 너무 속상할 때는 아이에게 핀잔을 주게 된다. 

 

"그럴 땐 너도 싸워야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 "친구가 때리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그랬는 데도 또 그러면 너도 똑같이 때려.",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야 해. 너처럼 가만히 있으면 그냥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이게 올바른 교육이 아닐 수 있지만, 답답하고 속상할 때는 그렇게 이야기하게 된다.

 

 

3.

명절에 고향집에 가면 으레 앨범을 꺼내 보게 되는데, 올 추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낡은 앨범 속에는 나보다 어린 부모님의 모습뿐만 아니라 나와 동생의 리즈 시절(?)도 수줍게 보존되어 있었다. 그렇게 앨범을 넘겨가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머리를 세게 한방 때렸고, 오래된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영상 속의 내 모습에 딸아이의 얼굴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전후가 바뀐 표현이지만,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지금 큰 딸아이와 똑같았다.

 

그 시절 나는 예민한 성격에 소심하기까지 했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했고 또한 남으로 인해 피해받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 경우에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반응했다.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뀔 때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친한 몇 명의 친구들과 좁고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큰 딸아이를 보며 걱정했던 것들 모두가 내 지난 과거의 모습이었다.  

 

이랬던 성격은 고등학교 중반부터 바뀌기 시작했고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그렇다면 난 왜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을 갖게 된 걸까? 당시 우리 아버지는 매우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범접할 수 없는 집안의 절대 권력이었다. 조그만 잘못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는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가끔 아버지와 술잔 기울이며 그 당시 이야기를 할 때면 미안하다며 취기에 감정이 격앙돼 눈물을 훔치시곤 하셨다. 

 

어쩌면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 형성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큰 딸아이 역시 같은 이유일 수 있다는 건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절대 권력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나는 나중에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야지' 다짐에 다짐을 했음에도 은연중에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있었나 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조금은 걱정이 누그러진다. 내가 바뀌었듯 딸아이도 바뀔 것이(라고 믿)고, 나 자신이 변한다면 그 시기가 더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부모는 환경을 만들어 줄 뿐, 실질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건 본인의 노력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지금의 내 모습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습까지 반추하게 하는구나. 

 

 

**

긴 8일간의 연휴가 오늘로 끝나고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10월은 집중해야 하고 마지막 최선을 다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부디 10월의 마지막 날에 돌아봤을 때, 잘하진 못했더라도 '후회는 없다' 말할 수 있는 한 달을 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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