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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주말농장 첫 수확

by Kang.P 201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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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텃밭에 나가 그동안 못한 일을 할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시간이 날지 모를 상황이라 고민은 더욱 컸다. 비 내리는 창 밖 풍경을 보고 있자니 고민하는 내 모습도 유리창에 반사되고 있었다. 일단 나가 보기로 한다. 이 정도의 비라면 작업이 가능해 보였고, 상황을 지켜보며 하는 데까지 해 볼 요량이었다.  ​

​비 때문에 고민한 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동안 많이 가물었던 터라 농작물에게는 말 그대로 단비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왔을 때는 말라가는 잎사귀도 보이곤 했는데, 오늘은 시원한 빗줄기와 함께 생기가 넘쳤다. 

청량고추 모종에도 꽃이 피다
촉촉하게 빗물을 머금은 적상추

농장(이라고 해봐야 두 골이 전부지만)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작업을 준비했다. 오늘의 작업은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 모종에 지지대를 설치하고 줄을 감아주는 일이다. 지지대는 땅 주인(회사 선배)의 컨테이너에 있는 것을 쓰면 된다. 다만 끈이 있어야 하는데, 함께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그래 봐야 나 포함 세 명)에게 물어보니 그중 한 명이 컨테이너 안에서 본 것 같다고 한다. 확실하지 않으니 철물점에서 구입해서 가라고 충고해 줬지만, '누군가 봤다면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는 안일한 생각과 철물점에 들러야 한다는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텃밭으로 향했고, 컨테이너에는 끈이 없었다...

허무했지만 어쩌겠는가, 내 잘못인 것을... 그래도 왔으니 지지대라도 박아 놓고 가기로 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앞서 언급한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는 지지대를 설치하거나 끈으로 줄기를 잡아줘야 한다. 방울토마토는 모종마다 지지대를 설치했고, 고추는 3개 간격으로, 가지는 2개 간격으로 설치했다. 고추와 가지는 지지대와 지지대 사이를 끈으로 연결하면서 그것으로 줄기를 잡아줄 예정이다.

방울토마토와 지지대

​지지대를 박아주는 작업은 금방 끝났다. 하지만 나가서 끈을 사 오기에는 시간이 애매했고 또한 빗줄기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끈 작업은 다음으로 미루고 잡초를 뽑았다. 

잡초의 생명력

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자니,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치 비 오는 날 텐트 속에 들어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방수라고 쓰여있던 재킷이 점점 젖어왔지만, 이 소리와 느낌이 너무 좋아 계속 잡초를 뽑아댔다. 그러던 중 비닐을 때리는 빗방울의 템포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서 맥주 한잔하는 상황이라면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비의 양이었지만, 맨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결국 잡초 뽑기를 중단하고 짐을 꾸렸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전에 지지대를 모두 박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가슴 벅찬 첫 수확을 했다.

첫 수확을 한 적겨자와 상추

토양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적겨자의 성장 속도는 상추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주말농장 시작하고 첫 수확물인 적겨자와 상추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무도 나의 첫 수확물인 쌈채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먹으려 하지도 않았다. 오늘 점심은 치킨마요였는데, 나만 홀로 치킨마요를 쌈에 싸 먹었다.​

쌈에 싸 먹는 치킨마요. 나름 괜찮은 조합이다.

치킨마요를 쌈에 싸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못 들은 척했고 정성껏 싸서 아내 입에 넣어주었더니 아내는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정작 한 번을 본인 손으로 싸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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