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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행/2011년 4월 항저우

항주 출장 뒷담화

by Kang.P 201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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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부터 9일까지의 항주 출장을 마치고 하루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항주에서의 일들이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기획한 출장이 아니라, 동행취재의 형식에 가까웠기에 담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촬영이 확실하지 않았다. 부장님은 부담 갖지 말고 쉬다 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막상 가는 사람 맘이 어찌 그럴 수만 있으랴...

월요일 일과를 마치고, 청주공항으로 출발해 9시 40분발 항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충북도청관계자, 충남관광협회, 관광공사, 여행사 관계자 등 11명이 함께 했고, 약 2시간 후인 11시 30분에 우리 일행은 항주소산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바로 호텔로 이동, 배정 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럭셔리한 호텔은 머리털나고 처음이었다. 특히나 이 넓은 공간을 혼자 쓴다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 선배와 내 방은 붙어 있는데, 일행인 여기자만 숙소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찝찝했던 우리는 가이드를 불러 방을 하나를 반납하고, 여기자가 내 방을 쓰고, 선배와 나는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환대 역시 마찬가지인 듯;;;

씻고 막상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항주에서의 첫날밤을 이렇게 마무리하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감정은 카메라 선배도 마찬가지였는 듯... 우리는 호텔 주변 슈퍼를 찾아가 맥주 몇 캔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와 무사도착을 자축하는 자리를 가졌다.







4월 5일. 본격적인 일정 시작.
이날은 청명절이라 중국의 공무원들이 쉬기 때문에 관광지 위주로 관람을 했고, 우리 촬영팀에겐 중요한 날이었다.
일정시작에 앞서 스케줄과 우리의 촬영구성안을 비교하며 바꿔야 할 부분들을 카메라 선배와 공유하며 첫 촬영을 준비했다.

 




 

 


우선 항주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았다. 촬영 때문에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항주임시정부 역시 상해임시정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독립운동 당시 가장 어렵던 시절이 이 곳 항주임시정부 시절이었다고 한다.
임시정부를 둘러보고 성황각에 올랐다. 이 곳은 우리나라의 남산처럼 항주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많은 현지인들이 찾고 있었다.


항주는 중국 절강성에 위치한 도시로 성도이다. 함께 동행한 한진관광 지점장님의 이야기를 빌리면 14년 전에 자신이 항주에 왔을 때는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시골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10년 여의 시간 동안 급성장한 항주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 중국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항주에 들렀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을 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항주에 있는 서호라는 저수지는 상당히 아름다웠고, 그 규모 역시 방대했다. 중국 내에 37개의 서호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있는 그 중에 최고로 꼽히는 것이 항주의 서호라고 한다.

북경과 항주를 잇는다는 경항대운하를 타고 박물관에 들러 촬영을 마치고 하루 일과를 마감했다.

4월 6일에는 도청 일정에 따라 절강성 외사판공실에서 충북도와 절강성의 교류를 위한 자리에 참석하고, 일행은 절강성 관계자들과 미팅할 도청관계자 팀과 촬영을 위해 황산으로 떠날 팀으로 나뉘었다.

항주에서 황산까지는 약 200Km의 거리. 황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 밖으로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노랗게 심겨져 있는 것은 유채다. 이 곳 사람들은 유채씨로 기름을 짜서 그것을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런 낯선 모습은 전에 의성에 촬영갔다가 본 드넓은 마늘 밭 이 후, 오랜만에 보는 이색 풍경이었다. 

황산시에 도착해서, 현지 여행사에서 준비한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중국와서 규칙적으로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점심, 저녁 식사 때 술 마시는 것이다. 이건 무슨 약 먹는 것도 아니고, 점심, 저녁 식사 중 1시간 반 동안 하루도 안 빼 놓고 술을 마셔야만 했다;;;
다들 알겠지만, 중국음식은 기름지다. 또한 코스요리 같은 경우는 요리만 나오고 밥(쌀)이 안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는 반찬으로 배 채운 것 같은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이날의 식사는 호텔 부사장이 동석해서 무지하게 술을 권했다.






중국 술, 마오타이주(40도 정도 됐나??)를 작은 잔은 치워버리고, 위와 같은 와인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돌면서 잔을 권했다. 그러다 중간 중간에 원샷을 권했는데, 하필이면 그 중 내가 걸렸다.
못 마실 것 같았지만, 알 수 없는 승부욕이 발동 보란 듯이 원샷을 해 보였다. 결국 이 날, 중국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필름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다음날 황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 어라??





비.... 비가 온다...






정말, 나한테 왜들 이러니;;;;






올라가는 케이블카 창 밖의 모습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안개가 자욱한 날일 지라도 바람이 불면 2, 3분 잠깐 황산의 모습을 허락할 때가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절대맹신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올라가기는 했지만, 전 날의 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황산은 그 웅장함이 자랑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의 등산 방식과 달리 절벽에 길을 만들어 산의 바깥쪽을 돌면서 올라가는 형태의 길이 많아, 주변의 수려한 관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가계와 비교한다면, '장가계는 여자, 황산은 남자'으로 표현할 정도로 웅장함을 자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카메라에 담아 올 수도 없었다;;;










결국 황산의 경관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이지 다음에 꼭 한 번 다시 찾아와서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함께 한 가이드도 황산의 모습을 못 보여준 것을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랴... 자연이 하는 일을...



우리 가이드는 31살의 조선족 청년이었다.

성실하게 가이드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친구였다. 남, 북, 해외동포 상관없이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친구의 신념이었다. 한국 들어와서 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간절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연변사람에 대한 한국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에 취직이 쉽지 않단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교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들이 한국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좀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무관심 뿐만 아니라 기회 조차도 적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대화 속에서 이 친구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마지막 공항에서 헤어지면서 남은 돈을 모아 고맙다며 손이 쥐어주었다.

진심으로 이 친구가 지금처럼 건전한 사고를 지키고 성실하게 살아서 그가 원하는 것을 꼭 이루기를 기도한다.


마지막 날 공항가기 전에 공연 하나를 보러갔다.
이것이 바로, 항주 출장 중 최고의 볼꺼리였다고 생각하는 '인상서호'였다.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수상가무쇼로, 그 규모가 상당했다. 빛과 물과 음악과 사람의 몸동작으로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돌이켜보면 난관에도 봉착하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내일부터 폭풍편집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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