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마흔다섯 살에 맞이하는 마흔네 번째 생일

by Kang.P 2022. 10. 24.
728x90

오늘은 한국 나이로 마흔다섯 살이 되는 마흔네 번째 생일이다. 어릴 때는 UN창립일, 유피의 노래 제목 등으로 생일을 어필하곤 했는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젠 도리어 사람들이 호들갑 떨며 축하해 주는 게 부담스럽다.

아내는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언제나 그랬듯 정성스레 아침밥을 차려줬다. 다만 미역국이 없었다. 주말에 처 외할머님 구순 생신 자리에서 미역국을 많이 먹어서 좀 질렸는데, 눈치 빠른 아내가 내 속내를 알아차리고 일부러 뺐나 보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릇 생일이면 오늘만큼은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행복할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묵직하게 맞이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생각이 좀 많아지는 날이라고나 할까. 급기야 오늘 출근길에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고민에까지 이르렀다.

이번 생일에는 문득 나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같은 대학 (1년 후배인데, 나이는 같은) 친구가 생각났다. 학교 다닐 때 항상 같이 생일잔치(?)를 했던 사이인데 서로 연락이 끊긴 지 좀 됐다. 상하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를 이유로 들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핑계에 불과하다.

낯간지러웠지만, 그 친구의 페이스북에 생일 축하 글을 남겼다. 그가 여전히 페이스북을 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에 대한 관심과 궁금함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반응형

좀 다른 얘긴데, 며칠 전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고 애꿎은 마스크만이 묵묵히 뜨거운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나이를 먹으니 눈물이 많아져서 큰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SNS에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초간단 후기라며 축축이 젖은 마스크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극장을 나오며 '한 번 사는 인생,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것만 보고 행복한 생각만 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했는데, 며칠 후 제빵공장 20대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망 사고 소식을 접했다.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하다 자위하며 살기엔 아직 대한민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부모 세대의 더 많은 노력과 투쟁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내와 아이들이 준 생일 축하 편지와 용돈(큰 딸이 줬다, 천 원)은 큰 봉투에 담아 오늘을 표기한 후 나만의 타임캡슐에 보관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이것을 꺼내 볼 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천원의 가치도 더 떨어져 있겠지?).

아빠 생일을 축하해 줘서 고맙고, 내 아빠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줘서 감사하고(울 뻔했다), 사랑한다 표현해 줘서 고맙다.

더 좋은 아빠, 그리고 남편이 되도록 노력할게. 고마워. 사랑해들.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대역 회동  (0) 2022.11.17
둘째의 서러움  (2) 2022.11.05
관계의 힘  (0) 2022.10.06
나는 단지 로또를 사고 싶었을 뿐이었다.  (0) 2022.09.09
지방종 제거 수술 D+14  (2) 2022.08.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