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 나이로 마흔다섯 살이 되는 마흔네 번째 생일이다. 어릴 때는 UN창립일, 유피의 노래 제목 등으로 생일을 어필하곤 했는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젠 도리어 사람들이 호들갑 떨며 축하해 주는 게 부담스럽다.
아내는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언제나 그랬듯 정성스레 아침밥을 차려줬다. 다만 미역국이 없었다. 주말에 처 외할머님 구순 생신 자리에서 미역국을 많이 먹어서 좀 질렸는데, 눈치 빠른 아내가 내 속내를 알아차리고 일부러 뺐나 보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릇 생일이면 오늘만큼은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행복할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묵직하게 맞이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생각이 좀 많아지는 날이라고나 할까. 급기야 오늘 출근길에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고민에까지 이르렀다.
이번 생일에는 문득 나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같은 대학 (1년 후배인데, 나이는 같은) 친구가 생각났다. 학교 다닐 때 항상 같이 생일잔치(?)를 했던 사이인데 서로 연락이 끊긴 지 좀 됐다. 상하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를 이유로 들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핑계에 불과하다.
낯간지러웠지만, 그 친구의 페이스북에 생일 축하 글을 남겼다. 그가 여전히 페이스북을 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에 대한 관심과 궁금함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좀 다른 얘긴데, 며칠 전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고 애꿎은 마스크만이 묵묵히 뜨거운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나이를 먹으니 눈물이 많아져서 큰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SNS에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초간단 후기라며 축축이 젖은 마스크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극장을 나오며 '한 번 사는 인생,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것만 보고 행복한 생각만 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했는데, 며칠 후 제빵공장 20대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망 사고 소식을 접했다.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하다 자위하며 살기엔 아직 대한민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부모 세대의 더 많은 노력과 투쟁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내와 아이들이 준 생일 축하 편지와 용돈(큰 딸이 줬다, 천 원)은 큰 봉투에 담아 오늘을 표기한 후 나만의 타임캡슐에 보관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이것을 꺼내 볼 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천원의 가치도 더 떨어져 있겠지?).
아빠 생일을 축하해 줘서 고맙고, 내 아빠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줘서 감사하고(울 뻔했다), 사랑한다 표현해 줘서 고맙다.
더 좋은 아빠, 그리고 남편이 되도록 노력할게. 고마워. 사랑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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