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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딸에게 쓰는 편지/둘째 딸에게

[축복이에게] #.8 아빠가 미안해

by Kang.P 2019.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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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오랜만에 둘째 축복이에게 편지(사실 그동안 육아일기라는 제목으로 써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글의 성격이 일기보다는 편지에 가깝다고 생각되어, 네 언니에게 썼던 것까지 총 62개 글의 제목을 고쳤단다. 참 고단한 작업이었어;;)를 쓴다. 3개월 만에 쓰는 글이고, 이 글 역시 그 전과 마찬가지로 반성문 형식의 편지글임을 미리 공지하는 바이다. 

축복이가 어린이집도 다니고, 언니와 둘이서도 잘 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다 컸구나’ 싶은 마음이 커져가고 있었는데, 근래 들어 전에 못 보던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다소 놀랐단다. 떼쓰기. 어린아이가 떼쓰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니겠냐마는, 요즘 네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단다. 특히 자러 들어가자고 하면 싫다고 악을 쓰며 울면서 떼를 쓰는데, 정말 무서울 정도란다. 왜냐하면 네 언니에게서는 못 보던 모습이거든. 몇 번을 달래 봤지만 소용없었고, 네가 울다 지쳐 들어올 때까지 방치하는 방법 밖엔 없더라고. 근데 그것조차도 방법이 될 수 없는 게, 너는 여간해서는 자진해서 들어오는 적이 없는,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의 '고집'을 소유하고 있었어(미처 몰라줘서 미안).

이쯤에서 아빠의 반성문을 시작하면 적절할 것 같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잘 때마다 너와 신경전을 벌이다 보니, 아빠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고, 너를 설득해 재울 생각보다 어느 순간, 아빠의 분노에 충실해지고 있었단다(아니, 현재 진행형인 ‘있단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무서웠던 건, 나이 먹으면서 성숙해진 ‘이성’으로 억압하며 별문제 없이 지내왔던 ‘원초적’인 내 모습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었어. 법과 규범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사회라는 큰 틀의 구성원으로 지내기 위해 저 깊은 곳에 봉인해 두었던, 그래서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원초적 감정들이 마그마가 분출하 듯, 쏟아져 나왔단다. 그 모습과 대면했을 때는 정말이지 발가벗겨져 광장 한복판에 나앉은 기분이었어.

좀더 이야기하자면, 회사에서는 동료를 배려하며,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돕고자 노력하고 (나름의) 유머 감각으로 웃음을 주고, 그러다 보니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곤 했던 모든 것들이 가식의 산물로 느껴졌고, 내면 속 원초적 감정들이 아무런 통제 없이 널뛰고 있는 느낌이었어. 출근해서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도 나의 행동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일에 집중할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단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핑계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성과 논리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도 많기 때문이야(아빠 친구 중에도 있단다). 아빠뿐만 아니라 엄마도 많이 반성하고 있단다(어제 엄마 우는 거 봤지?). 더 노력할게.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아. 그러니 너도 아빠 엄마 노력하는 모습 보면서 감동의 눈물 흘리며, ‘아 내가 이래선 안 되겠구나’ 마음 다잡고 개과천선하기를 바란다,고 할 정도로 철딱서니 없는 아빠는 아니니 부담은 갖지 마. 진심은 통한다고 했으니까 아빠 엄마가 좀더 진심으로 노력하며 기도할게.

딸, 아빠의 반성문 이 후로 우리 더 잘 지내보자~​

너는 먹는 모습이 매력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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