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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케언즈 출장 뒤풀이

by Kang.P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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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카톡을 확인한 것은 인천공항에서 충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녀석은 내가 일요일에 귀국하는 줄 알고 몇 시에 공항에 도착하는지 묻고 있었는데, 나는 이미 토요일 오전에 한국에 도착했고 10시 20분 충주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왜 귀국 날짜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냐'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분명히 토요일에 귀국한다고 이야기했고 아마도 그건 너의 착오일 것이라 설명을 하며, 왜 그렇게 흥분하냐고 따져 물었더니, 녀석은 나를 충주까지 태워다 줄 생각이었단다.

순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친구의 사려 깊음에 감동해 버렸다. 그리고 그 감동은 결국 친구를 충주로 불러내려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푸는, 화합의 자리로 이어졌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내와 아이들이 큰 딸 친구 가족들과 1박 2일 일정으로 놀러 갔기 때문이고, 친구 역시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친구 모임을 갔기에 가능했다(즉 필연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16박 17일의 호주 출장 뒷풀이가 성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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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라는 동네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호주 동북부에 위치한 관광도시인 이곳은 겨울 기온이 우리나라 초여름과 비슷했고 습하지 않아 생활하기 딱 좋았다. 바로 이곳 케언즈에서 우리는 16박 17일 일정으로 과업을 진행했다.

사람이 모여 하는 일이 그렇듯, 때로는 다소 예민한 상황들도 있었고 일정을 포기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대체로 무난하게 잘 끝났다(찰리 채플린이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모든 게 그런 거다). 너무나 훌륭한 세 명의 출연자 덕분에 머리로 그렸던 것 이상의 상황이 만들어졌고 심도 깊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으며, 감각 있는 카메라 감독과 음향 감독의 활약으로 멋진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제대로 그림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러리라 믿는)다.

내가 알지 못했을 뿐, 세상에는 많은 멋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제주에서도 그랬고 호주에서도 그랬다. 그들의 모습과 만날 때면 나 자신을 반추하게 됐다. 나이로 따지면 한참 어린 출연자들이지만,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삼인행 필유아사’를 경험했다.

이곳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의 모습은 분초를 다투며 가슴 졸이는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과 대조를 이뤘고, 그들의 작은 지역 공동체를 보면서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커뮤니티가 있음이 얼마나 개인의 삶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케언즈 공항에서 본 손톱 모양의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자 우리의 일정도 끝났다. 마지막에 출연자들이 스탭들에게 건네준 롤링페이퍼는 고맙기도 했지만, ‘이들이 이렇게 느끼는 만큼 나 역시도 이들에게 진심이었나’ 하는 묵직한 질문도 던졌다.

 

라군풀에서의 마지막 신 촬영

올 때의 역순, 즉 케언즈에서 6시간 반을 날아 싱가포르로, 다시 싱가포르에서 6시간 반의 비행 후 인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생애 첫 케언즈 출장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뒤풀이를 가장한 친구와의 술자리는 4차에서 내가 잠들면서 끝났다(다행히 4차 장소는 우리집이었다). 다음날 아침 부대찌개로 해장을 한 후 고마운 친구는 올라갔고 사랑하는 가족들은 돌아왔다.

이번 출장에서 여러 것들을 느꼈지만, 그 중 2가지를 꼽는다면, 첫째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고, 둘째는… 영어공부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는 기간이었다.

부디 이 느낌과 깨달음이 오랜 기간 실천으로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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