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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한끼 식사

by Kang.P 201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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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저녁상을 차렸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육아에 지친 그녀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향했다,면 정말 멋졌겠지만, ‘일요일인데 한 끼 정도는 네가 좀 하라’는 아내의 말에 겨우 소파와 분리될 수 있었다. 저녁에 우렁쌈밥을 먹기로 한 우리는 이미 오전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 왔다.

유튜브의 심방골 주부 채널을 열었다. 그리곤 우렁쌈장을 검색했는데 역시나 있었다. 5분 정도의 영상을 정독하듯 보고 나니, 대충 방법이 그려졌고 자신감도 생겼다(심방골 주부님께서는 간단명료하고 쉽게 설명해 주셨다). 들기름에 다진 양파와 애호박을 볶고, 파 다진 것과 고추를 넣었다. 좀 더 볶다가 으깬 두부를 넣었고, 주부님이 시킨 대로 꿀도 조금 넣었다. 된장 두 큰 술과 고추장 한 큰 술을 넣고 저어주니 나름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주인공인 우렁이를 넣고 뒤적거린 후, 물을 붓고 졸이니 우렁쌈장이 완성되었다(심방골 주부님 감사합니다).

식탁이 아닌 교자상을 펴고 모여 앉았다. 왠지 쌈밥은 의자에 앉기보단 이렇게 먹어야 제맛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맛있었다. 간이 세지 않아 큰 딸 녀석도 제법 잘 먹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한 번 해보니 요리를 좀 배워서 즐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살 때는 음식 만들면서 설거지하고 치우는 게 싫어서 안 해 버릇했는데,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요리한 보람이 느껴졌다. 

조촐하지만 내가 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가끔씩 아내가 밥을 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연애할 때는 음식 만들어 초대하는 일도 많았는데, 결혼 후에는 그런 경우가 쉽지 않아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 친구의 SNS가 그것이다. 그곳을 보면 남편이 해 준 음식을 자랑하는 사진과 글들이 넘쳐난다. 그런 것들이 타임라인에 계속 올라오니, 주말이면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버리는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사람들은 왜 SNS를 할까.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이용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용 형태를 여러 범주로 나눠 정리해 놓은 것들이 많다. 외로움의 산물이라고도 하고, 자랑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란 말도 있고, 프로파간다의 수단이라고도 한다. 어디서 뭘 먹었는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를 시도 때도 없이 올리는 글들을 볼 때면 '인간이 참 많이 외롭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지만, SNS의 태생이 원래 그런 목적이라 말에 수긍한다. 그런 게 싫다면 팔로잉을 끊으면 될 일이다.

사실 나도 이런 관종 본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로 아이들의 성장 기록을 목적으로 포스팅하지만, 좋아요가 많고,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면 기분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이 이쯤 이르니, 아내 친구의 남편 관련 포스팅을 껄끄러워할 일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아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 도리어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이렇게 정반합을 이루며 인간은 성장해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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