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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250

태평가 나는 지금 음악 감독과의 미팅을 위해 영동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예상과 달리 길이 전혀 막히지 않아 다소 당황스러운 상태다. 얼마 전 회사 업무용 차량을 새 차로 바뀌서인지, 전과 달리 승차감이 좋았고, 운전하는 기사 동생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 중이다. 토요일 방송을 앞두고 음악 작업을 최종 마무리하러 가는 길이다. 이제 삼일 후면 지난 7개월 동안의 모든 과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아, 물론 골치 아픈 정산 작업이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방송을 내보내고 나면 쌓여 있는 휴가를 몰아 쓰며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소홀했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며,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 볼 요량이었는데, 야속하게도 아직 방송도 안 나갔는데 벌써부터 프로그램 합류 시기와 합류할 프로그.. 2020. 11. 4.
새날의 아이들 2020년 4월 24일, 처음으로 ‘청주새날학교’라는 곳의 문을 두드렸고, 지금은 익숙한 곽만근, 김대환 목사님과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5월 15일 첫 촬영을 시작으로 약 4개월 간 아이들과 함께했다.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뒷걸음질치던 아이들이, 우리를 그들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주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촬영 기간이 길지 않아 조바심도 났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부여잡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기록이 며칠 후면 방송된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아이들의 모습에 제작진이 관여하여 의미 부여하려는 행위만은 배제하자는 원칙만은 확실했고, 그래서 기획 단계부터 우리에게 내레이션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편집 과정이 어느 때보다 .. 2020. 11. 3.
휴업과 이십 년 전 알바 의무 휴업이 4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시간 활용의 요령이 생기고 독서와 사색이 습관화되어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꾀죄죄한 몰골로 소파에 드러누워 전형적인 카우치 포테이토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잘 보지 않던 TV 프로그램들도 접하게 되는데 며칠 전 '나 혼자 산다' 손담비 편에서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둘러보는 장면이 나왔다. 그녀는 한 웨딩홀 앞을 지나며 과거 이곳에서 예도 알바를 했었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복학 후 시작했던 예식장 촬영 알바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과 선배 형의 소개로 장한평의 한 웨딩홀에서 촬영 알바를 시작했는데 수입이 나쁘지 않았다. 20년 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예식은 3만 원, 고희와 환갑은 5만 원이었던 것 같.. 2020. 10. 29.
휴업과 넋두리 휴업 날은 출근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법정 공휴일과 같은 개념이고 휴업 일자에 출근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 단위 월 단위로 처리해야 할 일이 그대로인 현업자들에게 쉬는 날수가 늘어나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다. 특히 외부 사람과 일정을 잡을 때는 더욱 난감하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이고 그들도 한가한 사람이 아닌지라, 휴업 일까지 빼 가면서 일정 조율을 하다 보면 자꾸만 일이 미뤄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휴업 일임에도 회사에 나와 있다(물론 다른 날 대체 휴업을 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색보정 전문가는 함께 화면을 보며 내용 설명과 전체적인 분위기, 원하는 색감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에야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셨다. 옆에 앉아서.. 2020. 10. 19.
휴업과 선물 "저녁 먹은 거 설거지하면 선물 줄게." 어제 저녁, 비염이 심해져 코를 휴지로 막고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아내가 말했다. "내가 언제 선물 줘야만 설거지했냐? 뭔데, 선물이?" "설거지나 하고 이야기해." 뭔진 모르겠지만 그깟 선물 따위 때문에 설거지를 한다는 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채 수세미로 접시를 문질렀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었더니 설거짓거리가 많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자, 이제 약속대로 선물을 내놔라'는 표정으로 아내를 응시하고 있자니, 이 사람이 밀땅을 시작했다. 선물 때문에 설거지를 한 게 아니니 주든 말든 상관없다는 쿨한 자세를 취하고 싶었지만, 이미 몸은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 색칠놀이 할 것을 뽑아준 .. 2020. 10. 15.
휴업과 밀리터리 버거 롯데리아에서 밀리터리 버거가 나온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대한민국 보통의 남성들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군대,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씩 먹어야 했던 군대리아... 맛을 떠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버거가 나온다면 한 번쯤은 사 먹지 않을까? 한편에서는 남성 위주의 군대 문화이고, 지금도 변함없이 열악한 군대의 식문화를, 과거라는 이유로 낭만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던데, 햄버거 가게의 (언제 단품 될지 모를) 신메뉴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생전 처음으로 11번가에서 밀리터리 버거 사전 구매 쿠폰을 샀다. 6,400원 하는 것을 4,300원에 살 수 있으니 30%가 넘는 할인 아닌가. 일찌감치 추석 전에 쿠폰 2장을 .. 2020. 10. 8.
휴업과 추석, 그리고 큰 딸아이 1. 지난 몇 달간 매주 월요일에 휴업을 내며 휴업일수 5일을 채워 왔는데, 9월은 월요일이 4일밖에 없다. 하루를 언제로 할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주 화요일로 내버렸다. 그 결과, 9월 26일부터 10월 3일에 이르는, 장장 8일간의 추석 연휴가 생겨버렸다. 평소 같으면 이 꿀맛 같은 연휴를 어디서 무엇을 하며 보낼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을 텐데, 올해는 코로나 덕분에 큰 고민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응?) 연휴 둘째 날인 27일은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장모님이 아이들 봐주신 덕분에 둘이 오붓하게 밖에서 한 잔 할 수 있었다. 월요일과 화요일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라, 아내와 낮시간을 보냈다. 밖에서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서점 '책이 있는 글터'에 들러 구경도 하고 각자 책도 한 권씩 .. 2020. 10. 4.
휴업과 개나리 원룸 휴업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새롭게 택지 개발해 지어진 곳인데,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는 3층짜리 노란색 건물 3동이 있다. '개나리 원룸'이란 이름도 건물 색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곳은 충주로 내려온 후 두 번째로 터를 잡았던 곳이다. 정확한 평수는 모르는데, 10평이 안 되는 공간에 방 하나와 복도 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말 그대로 원룸이다. 외관은 허름해 보이지만, 내부는 깔끔했다(전에 쓰던 사람이 깨끗하게 써서 더 그랬다).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건국대학교 축산과 실습장이 보이는데, 말이 실습장이지 젖소들을 방목시키는 목초지다. 덕분에 가끔 비몽사몽 일어나 창문을 열 때면 대관령에 와 있는 착각에 .. 2020. 9. 18.
휴업과 월요일 어김없이 휴업으로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다. 두 달 전부터 나에게 월요일은 으레 쉬는 날이 되었는데, 창 밖으로 월요일 특유의 긴장감과 분주함이 느껴질 때면, '나만 도태되는 거 아닌가?' 하는, 2004년 백수 시절, 반지하 자취방을 뒹굴며 느꼈을 법한 두려움이 스쳐간다. 이런 '도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요즘 좀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이다. 강도가 높지는 않지만 틈틈이 홈트도 하고 있고, 수불석권하려 노력 중이며, 다시 예전처럼 점심시간이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호암지로 향한다. 사실 전에는 뒤처짐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노력하지 않아서 뒤처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고, 그 원인은 본인에게 있기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노력은 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남과 비교되고 .. 2020. 9. 14.
휴업과 아이맥 드디어,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finally... 아이맥이 도착했다. '허, 이 사람 보게. 휴업 때문에 돈 없다고 조선 팔도에 떠들고 다닐 때는 언제고, 300만 원을 육박하는 아이맥을 샀다고??!!' 하며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조금만 진정하시고 전후 과정의 이해를 위해 휴업 시리즈의 첫 번째 포스팅인 7월 3일 자 '휴업과 반지'의 내용을 보시기 바란다. 2020/07/03 - [일상다반사/2020년] - 휴업과 반지 그렇다. 나는 아이들 돌반지를 판 돈으로 아이맥을 산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아니, 자식들 코 묻은 돌반지를 팔아서 아빠 잇속 챙기니 아주 좋겠수다'며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는데, 아이맥은 단지 나 혼자 즐기고자 산 것이 아니고, 뭐랄까, 새로.. 2020. 9. 10.
휴업과 고장난 에어컨, 그리고 크라잉넛 나는 지금, 집에 있는 모든 선풍기를 틀어 놓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유래 없는 52일간의 긴 장마 후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젠장) 에어컨이 고장 났다. '옛날에는 선풍기 한 대로 긴 여름을 나지 않았던가' 하며 쿨하게 받아들이려 했는데, 나는 옛날 사람이 아니다,,, 특히 이번 주는 월, 화 연달아 휴업인지라 이틀을 집에 있어보니, 이제야 아내와 아이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회사는 에어컨이 빵빵하다). 이미 몇 번에 걸쳐 여러 명의 AS기사님들이 다녀갔으나, 희한하게도 이들이 올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문제없이 작동되었고 어쩌다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증상은 있으나 원인은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이 돌아왔다(정말 그랬다. 같은 증상의 다른 집도 배선 뜯고.. 2020. 8. 26.
휴업과 방학 어제도 어김없이 휴업을 하며 월요일을 보냈는데, 지난주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린이집도 어제부터 방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냥 쿨하게 이야기하지만, 어린이집의 방학은 ‘슬기로운 휴업 생활’에 대 변환을 일으키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유일하게 아내와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 방학과 함께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모진 아빠처럼 보일 것 같아 첨언하면, 휴업에 들어가면서 나름대로 일주일 중 하루, 휴업일만큼은 나를 위한 투자의 시간으로 활용하자 계획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라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이런 아쉬움 속에도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으니 그것은, 모순되게도 아이들과.. 2020. 7. 28.
휴업과 커피숍 나는 지금 커피 단월이라는 카페의 3층 창가에 앉아, 유유자적 흐르는 달천강과 유리창에 맺힌 빗방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돌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금세 비는 잦아들었고, 기상청은 (온 것도 없는데) 큰 비는 지난 것 같다며 전날의 예보를 부정했다. 월요일 휴업이 3주 차로 접어들면서, '(내가 몰랐을 뿐) 월요일은 원래 쉬는 날이었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지난 15일, 처음으로 휴업이 적용되어 21% 삭감된 상여가 들어왔다. 막연한 예측과 추정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고, 요란한 알람과 함께 고정 지출이 빠져나가고 나니, 이건 뭐 네 식구 고기 한 번 구워 먹을 돈도 남지 않았다(하지만 나에겐 3개의 .. 2020. 7. 20.
휴업과 독서 '화요병'이 생겼다. 매주 월요일 휴업을 하게 되면서 생긴 것인데 이게 월요병과 유사하나, 무려 3일을 쉬고 출근하다 보니 그 후유증은 훨씬 크다. 이런 이유로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화요일에는 중요 일정을 만들지 않는다. 휴식에서 업무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완충 지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완충 같은 소리 하며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지만 말이다). 하여 오늘은 이번 주 일정 정리 정도로 업무를 마감하고 최민석 작가의 책,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를 꺼내 읽었다. 요즘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시기에 책이 눈에 들어오겠냐마는, 이 책을 다시 꺼내 든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국제 NGO 월드비전의 활동과 후원받는 아이들의 실상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최민석 작가의 초창기 문체가 궁금.. 2020. 7. 14.
휴업과 빨간오뎅 매달 말이면 다음 달의 (5일에 대한) 휴업 일자를 제출해야 하는데, 업무 흐름상 지금처럼 매주 월요일에 휴업을 할 듯하다. 그렇다면 6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매주 규칙적으로 2박 3일을 쉬게 되는 것이다. 급여가 줄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렇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허투루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는 중장비 자격증을 딸 거라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결국 모두의 머릿속에는 이 시간의 활용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니다. 오히려 지난주에는 등산이라도 갔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그마저도 못하고 아내와 조조로 영화 '살아있다'를 보고 점심 먹고 들어온 게 전부.. 2020. 7. 13.
휴업과 등산 오늘은 월요일. 금요일부터 시작해 2박 3일의 음주가무(?)와 숙취에 비례하는 크기의 월요병과 싸워가며 힘차게 한 주를 시작했, 어야 하지만, 오늘 역시 나는 휴업이다. 4일째 놀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소비로 가성비 높은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니, 대부분의 일과를 집에서 보내게 된다. 어제도 노브랜드 피자와 치킨, 꼬치어묵으로 저녁 술상, 아니 밥상을 차렸다. 오늘은 아내와 충주 남산에 오르기로 했다. 나도 오랜만이지만, 아내에게 등산이란 '왜?'라는 의문사와 동격인 단어로서, 그 필요성과 이유를 전혀 못 느끼는 행위다. 같은 이유로 연애 포함 9년을 만나면서 산이라고는 제천 용두산에 다녀온 것이 전부인 그녀다. 그런 아내가 선뜻 등산에 동의한 것은, 아마도 요즘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사는 '살 빼야지'.. 2020. 7. 6.
휴업과 반지 오늘은 무급휴업의 첫날이다. 이미 기사화되어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7월부터 우리 회사는 무급휴업을 시행한다. 한 달의 근무일수 중 의무적으로 5일을 쉬고, 급여의 21%를 삭감하는 것이다. 회사의 재정상태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노사가 합의한 고육지책이다.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정책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시적(6개월)으로 진행하는 것인데, 6개월 후에 다시금 원상 복귀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다. 물건 살 때의 20% 할인은 그로 인한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듯했는데(싼 것만 사니 그럴 수밖에...), 월급의 20% 삭감은 군가 가사처럼 '천지가 진동하고 지각이 무너지는' 듯한, 가계를 뒤흔드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취업규칙 상 투잡 및 겸업이 불가능한 우리로서는 시쳇말로 '존버'하는.. 2020. 7. 3.
8개월만의 집들이 일부러 작정을 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난 주말, 이사한 지 8개월 만에 집들이를 했다. 핑계를 대자면, 지난해 9월 말에 이사하고 몇 번의 집들이를 했는데, 청주에서 근무하는 동료들과는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집들이는 내 의지로 성사됐다기보다는, 청주로 근무지를 옮긴 동기 녀석이 이번에 이사를 했는데, 우리가 집들이를 해야 본인 집들이도 할 것이 아니냐는, 피할 수 없는(피할 생각은 없었다) 논리를 들이댔고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토요일 오후 4시 즈음, 초인종이 울리며 그들의 도착을 알렸다.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았고, 모름지기 집들이니 만큼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공간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곤 자연.. 2020. 6. 30.
관심과 행동 테라스가 있는 1층으로 이사 오면서 시작한 텃밭의 첫 수확물이 나왔다. 오이 하나와 고추 세 개. 개수는 얼마 안되지만 이것의 의미와 가치는 개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성찬식을 집도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칼로 오이의 껍질을 벗긴다. 손놀림의 실수로 껍질과 함께 두꺼운 오이의 몸통이 함께 잘려나갈 때면, 안타까움에 외마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저녁상(을 가장한 술상)이 완성되었다. 한주를 마감하는 금요일이면, 일주일간 고생한 나에게 소주 한 잔 건내고 싶어진다(는 말로 오늘의 음주를 정당화한다). 소주 한 잔과 아내의 동태탕은 환상의 궁합이었고, 국물 안주가 지겨워질 때 즈음에는 오이를 쌈장에 찍어 씹으면 아삭하고 시원한 식감이 술맛, 아니 입맛을 돋웠다. 또한 엄마가 준 모.. 2020. 6. 21.
시간 참... 나이 먹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요즘 내가 그렇다. 매일 아침 그런 것은 아니고, 아이들 재울 때 같이 잠든 다음날은 어김없이 새벽 4시 전후로 눈이 떠진다(10시 전에 잤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럴 때면 이불속 온기가 사라질세라, 더욱 이불 깊숙이 몸을 쑤셔 넣고 핸드폰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특히, 주말이면 새벽 6시부터 3시간씩 자전거 라이딩을 한다는 회사 선배의 이야기는 더 큰 자극으로 다가왔고, 이 시간에 '(그것이 무엇이든) 뭔가를 해야겠다'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의지의 실천으로 지난 주말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새벽 6시에 충주 남산에 올랐다. 평소 점심 먹고 나서 호암지를 한 바.. 2020. 5. 1.
봄비 아침부터 날이 끄물끄물하더니, 오후가 되자 본격적으로 빗방물이 떨어진다. 아마도 올해 들어 제대로 느끼는 봄비인 것 같다. 할 일을 핑계로 테라스에 돗자리를 깔고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 자리를 폈다. 왠지 이 빗소리가 큰 영감을 가져와서 막혀있는 문제들을 풀어갈 아이디어를 던져 줄 것 같았(지만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며 집안의 화분들을 내어놓고 오랜만에 비를 맞힌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의 흙냄새가 좋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파리가 떨어지는 빗방울과 이를 머금고 있는 이파리를 보고 있자니 '다시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이 거짓이 아닌 것은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지는 더 길어지며 굵어질 것이고, 이파리는 더 넓게 자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 4. 19.
금요일의 연차 보통 주말이면 뭉그적거리며 늦잠을 즐기기 마련인데 웬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노트북부터 켜는 것을 보니, 아마도 어제 하루 휴가의 효과인가 보다. 요즘 아이들이 (코로나 19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상황이라 휴가를 낸들 쉴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냥 냈다. 돌이켜보면 어제 하루는 나름 알차게 보냈다. 전날 대패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한 덕에 적당한 늦잠을 즐겼고, 오랜만에 마스크로 무장하고 마트에도 다녀왔다. 신난 아이들은 말이 엄청 많아졌고, 먹잇감을 찾느라 눈동자는 쉴 틈 없이 스캔을 해댔다. 장 보고 오는 길에는 기름을 넣었는데, 요즘은 한 번 가득 주유하면 한 달은 가는 것 같다. GS 칼텍스에서 카카오 체크카드로 6만 원 이상 주유하면 3,000원이 현금으로 캐시백 된다. 그래서 (마케.. 2020. 3. 28.
나 이거 참... 몇 번에 걸쳐 임시 저장해 놓은 글이 있어서 정리해 올리려고 블로그에 들어와 보니, 어라? 글이 없어졌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시 로그인을 하고 들어왔지만 마찬가지다. 이거 참 허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다시금 그 장문(?)의 글을 복기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고, 무엇보다 의욕이 이미 꺾여버렸다.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난달은 업무와 관련하여 확실한 결정이 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었고 지금도 그 연속선 상에 있다는 내용을 썼고, 두 가지 이야기를 더 적었는데 그건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 가지의 이야기 중에 업무 관련 내용만 기억하는 것을 보니, 일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나 보다. 맞다. 신경 정도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은 그 일 때문에 부서 회.. 2020. 3. 23.
아듀, 2019 아마도 지금 이 글이 2019년의 마지막 블로그 포스팅이 될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고 일어나면 찾아오는 내일일진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사이에는 한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생길 것이며, 하룻밤 차이가 '1년'이라는 거대한 간극을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기현상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예를 들면 (갑자기)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반성한다던가, 지키지도 못할 (확률이 큰) 금연과 같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가슴 벅차 하곤 하는 증상들이 그것이다. 나 역시도 이것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지라 오늘 문방구에 가서 일기장을 샀다.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급진 양장본으로 골랐다. 물론 신년 계획이기도 했지만 일기장을 산 이유 중 하나는 손글씨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 201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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