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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248

나는 단지 로또를 사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갑을 뒤적이다 로또 한 장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대부도 여행 때 로또를 샀었고 5천 원짜리에 당첨되었던 게 생각났다(그날 같이 산 선배 형은 5만 원과 5천 원에 당첨됐다). 때마침 명절 앞두고 일찍 충주로 넘어와 몇몇 분께 명절 인사를 드린 후라 기분 좋게 '로또나 한 번 할까' 하며 로또 판매점을 향했다. 자주 가는 로또 판매점 앞에 차를 세우고 가게 문을 여는데, 어라? 잠겨있네? 양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안을 들여다보니, 어서 너의 행운을 잡으라는 듯 두툼한 로또 용지 다발과 OMR용 사인펜들이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이 잠겨있으니 도리가 없었다. 오래 기다릴 마음은 없었기에, '다음에 하지 뭐.' 하며 몸을 돌렸는데 옆 가게 평상에 앉아계시던 어르신 두 분이.. 2022. 9. 9.
지방종 제거 수술 D+14 지방종 제거 수술을 한 지 14일이 지났다. 열나흘 동안 아슬아슬 외줄 타기 하듯 담배는 잘 참고 있으나, 아쉽게도 술은 세 번에 걸쳐 마셔버렸다. 수술 후 3주까지는 술 담배를 멀리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가 있긴 했는데, (금연과 달리) 평생 금주할 생각은 없었던 터라 크게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없다. 불필요한, 아니 있으면 안 되는 혹을 떼어내고 나니, 이제야 몸이 정상인 상태로 돌아온 것 같아 뭔가 동기부여가 되고, 전에 없던 의욕이 생긴다. 건강이 ‘정상’ 범주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 지 다시 한번 느낀다. 이 같은 건강에 대한 깨달음은 ‘건강할 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지난 주말에는 (비록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다짐을 실천했다.. 2022. 8. 24.
지방종을 보내며... 지난 목요일부터 토요일인 오늘까지 내 동선은, 안방 침대에서 주방의 식탁, 가끔 오가는 화장실로 한정되어 버렸다. 약 4년 가까이 내 몸속에서 함께 성장하며 희로애락뿐만 아니라 불편함과 이물감을 선사했던 지방종, 바로 그 지방종 제거 수술을 하고 요양 중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3달 동안은 몸에 무리를 주는 어떤 운동도 하지 말 것을 의사 선생님은 강조했는데, 그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여보 미안~ 하지만 의사가 하는 말 같이 들었잖아~). 수술로 제거한 지방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사뭇 놀랐는데 놀람도 잠시, 지방종의 크기에 버금가는 후련함이 뒤따랐다. 4년을 이노무 지방종 때문에 맘고생한 걸 생각하면, 노화가 1.5배는 빨리 진행된 것 같다. 처음 서혜부에 작은 멍울이 잡혔을 때.. 2022. 8. 13.
대부도, 사람을 만나다. 일 때문에 바쁜 나머지, '올여름 휴가는 없겠다' 생각하며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지인들과 2박 3일 일정(8월 5일~7일)으로 대부도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번 일정은 (언제나 그랬듯) 뛰어난 추진력을 소유한 친구 녀석의 활약으로 성사될 수 있었는데, 특별히 베트남에 살고 있는 선배 형이 딸과 함께 동참했다. 이 형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나보다 두 학번이 빠른 대학 선배인데 새내기 때부터 (어떤 면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우 친하다고 하기엔 뭔가 석연찮고, 그렇다고 안 친하다고 하면 한쪽 구석이 서운한... 뭐, 그런 형이다. 이 형의 눈은 배우 톰 크루즈의 그것과 똑같다(이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얼굴의 규모와 눈을 제외한 나머지 구성요소의 차이로.. 2022. 8. 10.
케언즈 출장 뒤풀이 친구의 카톡을 확인한 것은 인천공항에서 충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녀석은 내가 일요일에 귀국하는 줄 알고 몇 시에 공항에 도착하는지 묻고 있었는데, 나는 이미 토요일 오전에 한국에 도착했고 10시 20분 충주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왜 귀국 날짜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냐'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분명히 토요일에 귀국한다고 이야기했고 아마도 그건 너의 착오일 것이라 설명을 하며, 왜 그렇게 흥분하냐고 따져 물었더니, 녀석은 나를 충주까지 태워다 줄 생각이었단다. 순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친구의 사려 깊음에 감동해 버렸다. 그리고 그 감동은 결국 친구를 충주로 불러내려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푸는, 화합의 자.. 2022. 7. 19.
7박 8일 제주 D-1,672 내일이면 7박 8일의 일정으로 제주도로 출발한다. 토끼 같은 아이들과 여우 같은 아내 손을 잡고 코로나로 인해 2년 넘게 참아왔던 가족 여행을 이제야 떠난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하고 싶지만 현실은... business trip... 출장이다. 혹 ‘아무리 출장이라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제주에서, 그것도 가족과 떨어져 보낸다는 건 (티는 못 내겠지만) 설레는 일 아니냐’며 너의 감정을 숨기지 말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정말, 가는 날과 오는 날 빼고는 하루 종일 일정이 빠듯한, 출장일 뿐이다(제주 다녀오고 2주 후에는 보름 일정으로 호주에 가는데, 이 역시 일정 빡빡한 출장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2022. 6. 4.
무너진 일상의 회복을 위한 노력 D-1747 어제(일요일)는 아침 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나 오랜만에 호암지를 한 바퀴 돌았다. 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 이후 일상의 루틴이 무너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3Km 이상 걷던 것도, 퇴근 후 어설프게나마 이루어졌던 홈트도, 잠깐이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던 일상도 모두 사라졌다. 아침 일찍 호암지로 나선 것은 무너진 일상의 복구를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그래서 더 새벽 느낌이 들어 좋았다. 어느새 생강나무는 노오란 꽃을 피우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고 이른 아침임에도 사람들의 복장은 한결 가벼웠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적당히 맺히는 땀방울이 좋았고 서너 마리 오리들의 고즈넉한 유영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이다. 그렇게 호암지를 .. 2022. 3. 21.
자가격리 후유증 D-1758 (지천명까지 1758일 남음) 지난했던 7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오늘 '첫'출근을 했다. 자가격리는 7일이지만 아내가 확진되면서부터 휴가를 냈으니 열흘만의 출근인 것이다. 한 달의 1/3을 쉰 셈이다. 아내는 월요일, 큰 딸은 화요일, 둘째와 나는 오늘부터 집밖을 나갈 수 있었다. 격리는 풀렸지만 완치라고는 할 수 없다. 정부에서도 자가격리 해제 전 따로 검사를 받지 않는다고 하고 다만 해제 후 3일 동안 주의할 것을 권고할 뿐이다.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사 셔틀을 타지 않고 자차로 (충주에서 청주로) 출근했다. 격리 해제는 됐지만 출근 후에도 편집실에서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니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 2022. 3. 10.
코로나 확진과 자가격리 D-1764일 지난 3월 1일의 PCR 검사 결과 아내가 확진 통보를 받았다. 아내는 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아빠 방이라 불리는 현관 앞의 방을 베이스캠프로 잡고 그 옆 화장실을 주 활동 무대로 삼았다. 끼니때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요청할 때면 방 문 앞에 놓고 노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같은 집에서 같이 밥 먹고 함께 숨을 공유하며 사는데 누구는 확진이고 누구는 음성인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개인 면역력 등의 차이로 그럴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넘어가기로 했다. 혼자 방에 갇혀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까 걱정을 했는데,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다음 날 큰 딸이 확진 판정을 받으며 고독했던 1인 실이 2인 실로 바꿔었다. 코로나19 확진과 자가격리의 내용을 대수롭지 않게 글로 남길 수 .. 2022. 3. 4.
생애 첫 졸업을 축하하며 지난 화요일, 큰 딸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졸업식을 기록할 요량으로 휴가를 냈고 카메라를 챙겨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부모인 우리가 긴장을 한 탓인지 의도한 건 아닌데 제일 먼저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자 손에 꽃다발을 든 부모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마당에는 졸업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포토월이 설치되어 있었고 왼편에는 아이들의 졸업사진으로 장식한 아치형 조형물이 있었다. 몇몇 아는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창문 너머로 졸업 가운을 입은 아이들이 보였다. 코로나19 때문에 학부모 참관 없이 아이들과 선생님만 교실에 모여서 졸업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40여 명의 아이들이 같은 가운과 모자를 쓰고 앉아 병아리 같은 목소리로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 할 시간~'.. 2022. 2. 25.
D-1,782일 2022년 2월 14일 D-1,782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오늘부터 쓰는 모든 글에 카운트 다운을 넣기로 했다. 그 D-day가 무슨 날인지 또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고집스럽게 구태여 알려준다면, 내 나이 쉰, 지천명이 되는 날이다. '다들 먹는 나이일진대 거참 유난을 떤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나이 쉰에는 뭔가 큰 변화를 꾀하고 싶은 욕망의 외적 표현이고, 하루하루 줄어드는 날짜를 보며 시각적 자극을 통해 마음가짐을 추스르기 위한 노력이다.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3일 간 쉬고 출근을 하니, 월요일의 무게가 사뭇 크게 다가온다. 휴가를 낸 이유는 진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약 2년 전에 생겨서 점점 그 크기가 커져가고 있는 지방종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 2022. 2. 14.
금요일의 응급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한창이던 시간, 나는 엄마 품에서 잠든 둘째와 함께 건대병원 응급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고불고 난리 피울 줄 알았는데 잠이 들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응급실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퇴근 셔틀을 타고 충주로 돌아왔다. 이번 주는 연휴가 껴서 이틀밖에 출근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금요일이 주는 해방감은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집어 들게 했다. 아내는 명절에 시댁에서 챙겨 온 만두로 만둣국을 끓였고 ‘밥 먹자~’는 말에 네 식구는 식탁 앞으로 헤쳐 모였다. 엄마표 만두는 진리다. 만둣국은 맛있었다. 큰 딸은 보란 듯이 매운 김치만두를 입에 넣고는 엄지를 내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행복한 금요일 저녁 풍경이었다. 사건은 ‘퍽!!!’하는.. 2022. 2. 5.
충주 대미산 악어봉 "산 가자." 대학 선배와 동기, 이 둘을 단톡방에 불러 놓곤 첫마디가 '산 가자'였다. 그동안 등산이 많이 그리웠다. 그래서 이곳저곳 단톡방에 등산을 권유했으나 다들 말뿐 진지하게 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 함께 열심히 산에 다니던 둘을 소환한 것이다. 선배는 내가 대학 새내기 때인 97년도에 등산 소모임 대장을 맡고 있었던 한 학번 위의 형이고 동기는 그 이듬해에 대장을 맡은 친구이다. 당시는 정말 치열하게 산에 다녔다. 매년 여름이면 4박 5일 코스로 지리산을 종주했고, 겨울에는 설악산과 태백산에서 상고대를 즐겼다. 98년 여름에는 대장인 동기 녀석과 함께 싸구려 중국산 자전거를 타고 보름 넘게 전국일주를 했다(제주도 일주 포함).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2.. 2022. 1. 24.
궁즉통 2022년을 맞이하며 여러 다짐을 하고 집안과 마음가짐도 정리하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했다.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 이름을 바꾼 것도 그 일환이다. ‘두 딸 아빠의 일상다반사’, ‘두 딸 아빠의 영상 저장소’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것을 ‘궁즉통’으로 통일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구독자가 없으니(블로그는 두 명, 아니 두 분) 갑자기 이름을 바꿔버려서 사람들이 헷갈려하면 어쩌나 우려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궁즉통이란 궁즉변 변즉통의 줄임말이다. 이는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뜻이다. 지식백과에는 궁즉통이 ‘최선을 다하여 변화를 얻고 그 변화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쓰여있는데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궁하면 즉 절실하면 방법을 찾게 된다, 찾을 수 있다 정도로.. 2022. 1. 4.
마흔다섯 살 5시간 전 5시간 후면 내 나이 마흔다섯이 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앞자리가 4로 바뀐 후부터는 한 살 더 먹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렇더라도 1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다시 시작하는 1년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리와 기록은 필요할 듯하다. 딱 1년 전 오늘 다짐했던 금연은 3개월 만에 보기 좋게 실패했고 나는 또다시 디데이 앱에 '금연'이라 적고 시작일을 2021년 12월 31일로 고쳐 썼다. 2월, 4월, 5월은 애플워치의 월별 도전을 성취하지 못했으며 홀로 다짐했던 글쓰기 역시 하반기로 들면서 양과 질 모든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타를 좀 더 심도 있게 연주하고 싶었는데 이 또한 말잔치로 끝나 버렸고 외국어 공부도 흐지부지 해졌다. 그럼에도 올 한 해의 성과라 할.. 2021. 12. 31.
술꾼도시여자들과 조훈성 ‘술꾼도시여자들’이란 드라마를 알게 된 건 회사 선배가 보내온 사진 한 장을 통해서다. 사진 속 좌측 상단에는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쓰여 있었고 방송국 부조로 보이는 공간에 놀란 표정의 최시원과 그 옆에 앉아서 파안대소를 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훈성이 형이었다. 훈성이 형을 다시 TV에서 보다니!!! 아, 이해를 돕기 위해 훈성이 형의 소개가 필요하겠다. 이름 조훈성. MBC 공채 개그맨 출신(컬트삼총사와 동기)으로 내가 입사했을 당시 '투어! 대한민국'이라는 네트워크 프로그램의 충주 전속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후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에 형이 MC로 합류하여 함께 일했었는데, 그것도 언 10년은 된 것 같다. 함께 하던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형 또한 활동 영역이 방송.. 2021. 12. 19.
혈압약을 시작하다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혈압약을 어제 처음으로 목구멍으로 넘겼다. 혈압약을 처음 먹을 땐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 어지러울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저혈압 때문인지 아니면 의사의 말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약을 먹고 얼마 안돼 핑 도는 느낌과 함께 어지러운 듯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많이들 먹는다곤 하지만 개인의 인생사에서 보면 참으로 슬픈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이미 30대 초반부터 혈압을 재면 정상 혈압보다 높게 나왔다. 그럴 때면 '아직 젊은데 뭐', 혹은 '운동 열심히 해서 떨어뜨려야지' 류의 생각을 하며 운동과 식단 조절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이 또한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였다. 내 나이 어언 마흔넷. '올해부터는 의사 선생님이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 군소리 말고.. 2021. 11. 20.
스타렉스에서의 상념 일하는 방을 바꿨다. 청주로 첫 출근하던 날, 내 의사와 상관없이 충주에서 쓰던 장비가 특정 공간에 놓여있어서 자연스럽게 내 방이 되어버렸는데 유일하게 그 방만 복도를 끼고 있다. 공간은 넓으나 창문 역시 넓은 덕에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 당췌 집중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블라인드를 설치할 거라며 치수를 재 갔긴 한데, 언제 설치해 준다는 말은 없었다. 편집기 용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라고 하기엔 실제로 자료를 넣을 공간이 없었다)로 안쪽에 새로 구입한 장비가 있는 자리로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좋지만 장비가 너무 버벅거린다. 후배의 표현을 빌리면, 최고급 스포츠카로 요철이 난무한 어린이 보호구역만 시속 30km로 달리는 꼴인 거다. 당분간은 이렇게 사용할 수밖에 없을 듯하.. 2021. 10. 18.
충주행 시외버스 막차 청주로 출근한 지 3주만에 처음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충주로 향한다. 운좋게도 그동안 일이 늦게 끝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셔틀을 못 타는 날이면 누군가의 차를 얻어타고 충주로 오거나 역까지 태워다 줘서 기차를 이용했었다. 기차가 시간도 덜 걸리고 운치도 있어 좋은데, 청주역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역까지 이동하는데 시간과 돈이 더 든다. 때때로 이렇게 버스를 이용해야 할텐데 1시간 반의 이동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다(이 글 역시 그 일환이다). 사실 어제도 충주로 넘어가지 못했다. 청주로 이사한 후배의 집들이 자리가 그 이유였는데 오랜만에 (방역수칙 준수하며) 많은 이야기 나누고 유쾌한 자리였다. 문제는 오늘이었다. 신은 언제나 전날 술자리의 즐거움만큼 다음날 숙취의 고통을 내려주시며 세상에.. 2021. 10. 14.
충북학사의 추억 지금은 동서울관과 서서울관으로 나뉘어 여의도와 중화동에 멋스럽게 자리하고 있다지만, 라떼의(latte is horse) 충북학사는 개포동에 6층짜리 건물로 있었다. 충북학사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충북의 학생들을 위해 충청북도가 서울에 만든 기숙사다.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충북의 인재 양성소라 할 수 있는데, 나와는 매우 결이 다른 공간이지만 운 좋게도 군대 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생활했다. 처음 지원했을 때는 (당연히) 떨어졌고, 친구와 외대 앞에서 하숙을 하며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TO가 생겼으니 올 테면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하숙비의 반도 안 되는 기숙사비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도곡역까지 1시간이 넘는 등하굣길이 부담스러웠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2021. 10. 1.
책상 정리 책상을 정리하다 추억과 만났다. 타의에 의해 책상 정리를 해야만 했다. 9월 말부터 근무지가 충주에서 청주로 바뀌게 된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준비할 시간도 없이 현실화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야속하게도 개인 물품뿐만 아니라 책상까지도 가져간단다. 결국 사람보다 책상이 먼저 이사 간다. 입사와 함께 16년을 사용한 책상에는 16년의 개인사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서랍 속에는 지금은 쓸 수 없는 6mm 테이프와 12년 전의 전기요금 고지서, 유효기간이 14년 4개월이나 지나버린 상품권 그리고 충주로 내려오고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에 받은 카드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5년 2월 말. 장위동 반지하 자취방의 짐들을 화물차로 옮겨 싣고 짜장.. 2021. 9. 23.
백신 접종 어제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원래 9월 18일이 접종 예약일인데 지인의 도움으로 빨리 맞을 수 있었다. 맞아야지 맞아야지 했는데 막상 그날이 오니 긴장되었다. 겁 많은 쫄보이인 나는 어릴 적부터 주사 맞는 것을 엄청 무서워했다(그리고 이를 큰 딸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시절, 그때는 보건소에서 예방주사를 놓으러 학교로 직접 찾아왔었다. 그리곤 아이들을 줄 세워 주사를 놓기 시작하는데 줄을 서 있다가도 내 차례가 다가오면 다시 뒤로 돌아가곤 했을 정도로 주사를 겁냈다. 그런 이유로 유독 병원에만 오면 온순해지고 순종적이 된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간호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하고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이곳 베로니카신경외과는 백신 접종 때문에 처음 오게.. 2021. 8. 27.
대기번호 1088번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났고 25명이었던 대기 인원은 10명으로 줄었다. 1시간 동안 15명이 줄어든 것이니 1명 당 4분이 소요된 셈인데 기다리다 포기하고 자리를 뜬 이들을 감안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오랜 기다림은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은행을 찾은 내 탓이다. OTP의 만기일이 다가와서 오랜만에 은행을 찾은 건데, 아무리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다고 해도 은행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사람들로 분주했다. 잠깐 일 보고 들어갈 요량이었지만 대기 시간만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뭐 읽을 거 없나 폰을 뒤지다가 오래전 친구가 선물해 준 e북이 눈에 들어왔다. 김재완 작가의 ‘나 아직 안 죽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인데 40페.. 2021. 8. 24.
관장 똥이 나오지 않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변기에 앉아 오열하고 있는 딸을 보고 있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며 마주한 광경인데, 그 고통이 온전히 나에게 전달되는 듯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어린이집에서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집에 와서는 상태가 더 심각해졌고, 살펴보니 똥이 굳어서 힘을 주면 항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가 통증 때문에 더 이상 힘을 못 줘서 다시 들어가 버린다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아주 상세하게 묘사해 줬다.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고 아내에게 한 말을 훔쳐 들은 둘째는 안 간다며 더욱 목청 높여 울며 저항했다. 결국 방법은 관장 밖에 없었다. 동네 약국으로 달려가 관장약을 사 들고 오니 지친 둘째는 소파 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 202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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