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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충주 대미산 악어봉

by Kang.P 202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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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가자."

대학 선배와 동기, 이 둘을 단톡방에 불러 놓곤 첫마디가 '산 가자'였다. 그동안 등산이 많이 그리웠다. 그래서 이곳저곳 단톡방에 등산을 권유했으나 다들 말뿐 진지하게 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 함께 열심히 산에 다니던 둘을 소환한 것이다.

선배는 내가 대학 새내기 때인 97년도에 등산 소모임 대장을 맡고 있었던 한 학번 위의 형이고 동기는 그 이듬해에 대장을 맡은 친구이다.

당시는 정말 치열하게 산에 다녔다. 매년 여름이면 4박 5일 코스로 지리산을 종주했고, 겨울에는 설악산과 태백산에서 상고대를 즐겼다. 98년 여름에는 대장인 동기 녀석과 함께 싸구려 중국산 자전거를 타고 보름 넘게 전국일주를 했다(제주도 일주 포함).

98년 전국일주 당시 제주도 어딘가에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20년도 더 된 일이라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란다(마음은 아직 그 시절 그대로인데 말이다).

이런 이력이 있다 보니 ‘산에 가자’는 카톡에 대한 이들의 답은 즉각적이고 간결했다. 콜~!!!
그렇게 시흥과 용인, 충주의 중간 어딘가의 산을 찾다가 문득 악어봉이 떠올랐다. 꼭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이고 500m가 안 되는 높이로 많이 힘들 것 같지도 않았다. 특히 산행을 마치고는 우리 집에서 1박을 하며 지난날의 회포를 풀면 되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악어봉으로 결정하고 나서 선배와 동기는 아들들과 함께 간다고 알려왔다. 2022년 1월 22일 토요일. 그렇게 우리 다섯은 만났다.

대미산 악어봉의 등반은 카페 ‘게으른 악어’의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주차장 건너편 산자락에 출입금지 현수막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곳이 진입로이다. 이 악어봉 코스는 비법정탐방로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출입금지 현수막이 있는데 이 현수막이 악어봉으로 가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반가운 건 충주시의 노력으로 올해 말이면 이 길이 법정탐방로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는 곳곳에 ‘데크 계단 시작’, ‘데크 계단 종점’과 같은 표식을 볼 수 있다.

이 길은 초반이 매우 가파르다. 이 구간만 지나면 평이한 코스인데 선배의 중학생 아들에게는 무리였나 보다. 결국 두 부자는 악어봉을 눈에 담지 못하고 내려가야 했다. 초등학생인 친구의 아들은 잘 따라왔다.

그렇게 약 40분을 올라가니 악어봉에 도착했다. 미세먼지로 인해 다소 뿌옇긴 했지만 그래도 멋진 풍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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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을 때는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데 이 날은 우리 밖에 없어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친구도 그의 아들도 좋아하는 걸 보니 내심 뿌듯했다.

악어봉에서 내려 보이는 곳을 악어섬이라고 하는데 충주댐으로 형성된 지형이 마치 악어들이 물속으로 달려드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

내려오는 길에 셀카봉으로 열심히 촬영하며 올라오는 연인들 몇 팀과 마주쳤다. 그만큼 인스타 감성 사진으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오랜만에 충주를 찾은 사람들에게 유명한 중앙탑 막국수를 먹이고는 저녁으로 먹을 고기를 사러 갔다. 집에 도착해서 딱히 할 일이 없던 남자 다섯은 영화 이터널스를 보다가 기분 좋은 낮잠을 즐겼다.

선배 형에게 난로를 가져오라고 부탁한 건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서였다. 겨울이면 거의 쓰지 못하는 공간인데 난로만 있으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고 그 예측은 적중했다.


형의 난로 덕분에 겨울에도 기분 좋게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들어간 후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은 과거형이 되어버린 현실이 서글펐다. 형과 친구와 나, 모두 각자의 방식과 크기의 고민을 안고 살고 있지만 서로가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술을 잘 못하는 선배 형도 이 날은 기분이 좋았는지 맥주를 한 컵이나 마시는 기염을 토했다.


이날의 술자리는 이른 새벽까지 이어졌고 지난밤 즐거움의 크기만큼 숙취로 고생해야만 했다. 그리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며 우린 또 오랜 기간 연락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 "산 가자"라며 단톡방의 침묵을 깬다면 지체 없이 답글을 달 것이다.

"코올~!!!"

https://youtu.be/ymDmUR-vy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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