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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금요일의 응급실

by Kang.P 202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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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한창이던 시간, 나는 엄마 품에서 잠든 둘째와 함께 건대병원 응급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고불고 난리 피울 줄 알았는데 잠이 들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응급실에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퇴근 셔틀을 타고 충주로 돌아왔다. 이번 주는 연휴가 껴서 이틀밖에 출근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금요일이 주는 해방감은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집어 들게 했다.

아내는 명절에 시댁에서 챙겨 온 만두로 만둣국을 끓였고 ‘밥 먹자~’는 말에 네 식구는 식탁 앞으로 헤쳐 모였다. 엄마표 만두는 진리다. 만둣국은 맛있었다. 큰 딸은 보란 듯이 매운 김치만두를 입에 넣고는 엄지를 내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행복한 금요일 저녁 풍경이었다.


사건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둘째 딸이 식탁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아일랜드 식탁을 집고 이동하다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화장실에 가려고 했단다) 손이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이마부터 바닥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라 잽싸게 들어 안았지만 놀람과 통증에 아이의 울음소리는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큰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구토 증상을 보이며 추위를 호소했다. 혹 ‘뇌진탕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고 검사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응급실로 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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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하며 앉아 있는 동안에도 많은 환자들이 오고 갔다. 짧은 시간 동안 구급차가 두 번이나 환자를 싣고 왔고 귀동냥으로 들은 그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장례식장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도 있었고, 진료실 건너편 침대에 누워있던 아저씨는 의료진을 찾으며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느냐?"라고 물었고 의사는 오토바이 사고 났던 거 기억이 안 나냐며 되묻기도 했다.

응급실은 병원과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병원은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진료 순서를 기다리지만 응급실은 모두가 급하다. 응급실로 데리고 온 보호자 입장에선 자기 환자의 상태가 가장 급할 수밖에 없다. 다소 냉소적이긴 해도 이 모든 요구를 온몸으로 떠안으며 진료 순서를 정리하는 의료진이 대단했다.

딸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응급실 안 쪽에 자리를 배정 받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병상을 거리두기 위한 조치 같았다.


엄마 품에서 침상으로 옮기자 아이는 귀신같이 눈을 떴다. 다행히 집에서처럼 울지 않았고 엄마 아빠의 설명을 듣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설명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CT와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고 했다. 응급실에서 가장 높은 직책인 것 같은 그분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검사가 진행되었다. 검사 후 보호자를 찾기에 냉큼 달려갔더니, 뼈에 금이 가거나 출혈의 흔적이 없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잔뜩 겁먹은 사십 대 가장을 위로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누군들 가고 싶어서 가겠냐마는 병원, 특히 응급실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밀려드는 환자들에게 헌신하는 의료진께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병원에 갔다오더니 갑자기 둘째 딸이 나에게 엄청 치댄다. 아빠 이름을 부르며 볼을 조몰락대며 눈맞춤을 한다. 머리에 충격을 받더니 안 하던 행동을 한다 싶었는데 엄마의 말은 평소에도 아빠 없을 때 아빠를 많이 찾고 보고 싶어한단다. 아이는 항상 해 왔던 것을 내가 느끼질 못 했을 뿐이었다.

좀 더 많이 표현하고 눈맞추고 해야겠다. 아이가 다쳐보니 알겠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웃음 잃지 않고 행복하게 자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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