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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D-1,782일

by Kang.P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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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4일 D-1,782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오늘부터 쓰는 모든 글에 카운트 다운을 넣기로 했다. 그 D-day가 무슨 날인지 또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고집스럽게 구태여 알려준다면, 내 나이 쉰, 지천명이 되는 날이다. '다들 먹는 나이일진대 거참 유난을 떤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나이 쉰에는 뭔가 큰 변화를 꾀하고 싶은 욕망의 외적 표현이고, 하루하루 줄어드는 날짜를 보며 시각적 자극을 통해 마음가짐을 추스르기 위한 노력이다.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3일 간 쉬고 출근을 하니, 월요일의 무게가 사뭇 크게 다가온다. 휴가를 낸 이유는 진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약 2년 전에 생겨서 점점 그 크기가 커져가고 있는 지방종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분야에서 유명한 '장미꽃과 나이팅게일 외과의원'을 찾았다.

수원에 위치한 이 병원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이 안되며 오직 내방을 해야만 한다. 평소 출근하듯 8시에 집을 나와 수원으로 향했다. 병원의 모습은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봤던 그 모습과 동일했고, 오래 기다릴 것을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기다리면 그 내용을 가지고 원장 선생님께 진료를 받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원장 선생님 앞에 앉아 있는데, 모니터를 보던 선생님이 혼잣말처럼 툭 내뱉었다.

"이거, 큰일이네."

청력 좋은 내 귀는 그 말을 정확히 캐치했고, 고개를 들어 원장 선생님을 응시하며 "네???!!"하며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나와 눈이 마주친 원장 선생님은 원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병원 인트라넷이 너무 느려요... 자료가 안 넘어오네요... 이거 참, 왜 이리 말썽이지..."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는 환자 가지고 장난 친 거 아니냐며 씩씩거렸지만 원장 선생님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큰일난 게 내 지방종이 아니라 인트라넷 속도여서 다행이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수술을 하기로 했고, 자세한 날짜는 예약실에 가서 정하라는 말을 듣고 인사하며 방을 나왔다. 수술은 8월에나 가능했다. 3개월 이상 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6개월 후에나 수술이 가능하다니... 우리나라에 지방종, 낭종 등으로 수술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새삼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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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까지 올라간 김에 광명에서 온라인과 무인매장으로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공장에 가보니 정월대보름 나물 주문 포장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몸은 힘들겠지만 주문이 많아 다행이다 싶었다.

공장을 나와 광명의 유명한 짬뽕집에서 점심을 먹고는 친구의 반찬가게로 향했다. 어느덧 광명에 2호점까지 차린 반찬고. 내부는 깨끗했고 반찬은 정갈했다. 얼른 사업 확장해서 충주점도 오픈하자고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다. 녀석은 대학 시절부터 아이디어가 넘쳤고 지금도 항상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배울 점이 많은 녀석이다.


그렇게 만난 친구와 충주로 내려왔다. 사실 지난주에 전화 통화를 하며 충주에서 한 잔 하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기로 약속을 해 놓은 상태였다. 오랜만에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니 좋았다. 충주 오면서 알게 된, 내가 참 좋아라 하는 형도 잠깐 들러 서로 인사하고 짧게나마 사업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이노무 오지랖...).

나이가 오십에 가까워질수록 고민도 많아진다. 애들 키우는 문제부터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들을 술 잔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한다. 답을 얻고 싶은 게 아니라 같이 늙어가면서 서로 공감하고 싶은 마음일 게다.

글머리에서 이야기했던 카운트 다운도 지방종 수술을 해야겠다 결심을 한 것도 오십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다. 그래도 인복이 있어서 많지는 않지만, 아니 많지 않아서 더 소중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오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만 끝내고 나머지는 내일로 미룬 채 지난 주말을 돌아본다.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면서...

50대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도 오래된 파이프처럼 녹슬기 쉽다.
연결된 파이프를 주기적으로 청소해
인연의 수명을 늘려가자.
-책 <50부터 뻗어가는 사람 시들어가는 사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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