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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스타렉스에서의 상념

by Kang.P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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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을 바꿨다. 청주로 첫 출근하던 날, 내 의사와 상관없이 충주에서 쓰던 장비가 특정 공간에 놓여있어서 자연스럽게 내 방이 되어버렸는데 유일하게 그 방만 복도를 끼고 있다.

공간은 넓으나 창문 역시 넓은 덕에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 당췌 집중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블라인드를 설치할 거라며 치수를 재 갔긴 한데, 언제 설치해 준다는 말은 없었다.

편집기 용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라고 하기엔 실제로 자료를 넣을 공간이 없었다)로 안쪽에 새로 구입한 장비가 있는 자리로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좋지만 장비가 너무 버벅거린다. 후배의 표현을 빌리면, 최고급 스포츠카로 요철이 난무한 어린이 보호구역만 시속 30km로 달리는 꼴인 거다.

당분간은 이렇게 사용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혼자 동떨어져 있다가 옆 방이 있는 공간으로 오니 사람들과 섞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서로 농담하며 까르르 웃는 소리도 얇은 샌드위치 판넬 벽을 넘어 들려온다.

젊은 친구들의 대화를 훔쳐 듣다가 혼자 피식 웃기도 하고 그 대화에 끼고 싶을 때도 있지만, 최근 진급해서 달게 된 부장이라는 직급이 꼰대의 다른 말로 느껴져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 셔틀(스타렉스)을 타고 청주로 넘어와서 일을 하고 다시금 셔틀로 충주로 돌아간다. 충주와 청주의 지명을 따서 충청도라 이름 지었다고 하니 매일같이 충주와 청주를 오가는 나야말로 진정한 충청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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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한주를 시작하며 위밍업하는 기분으로 월요일을 보내고 싶었는데 현실은 지친 금요일의 퇴근길처럼 피곤하다.

운전하는 친구가 오늘은 국도로 한 번 가보겠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원래 가던 길로 갔으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둠 속 국도를 달리고 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아니면 ‘10분만 더 기다려 달라’는 옆 자리 선배와 아들의 통화 내용을 들어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스타렉스가 스포츠카로 돌변했다.

청주로 출퇴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다보니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이 더 애틋해졌다. 그래서 퇴근 후 피곤함을 뒤로하고 아이들에게 더 말 걸고 치대곤 하는데 귀찮아하는 티가 역력하다(아빠를 닮아서 표정 관리를 영 못한다). 그래도 내 삶의 가장 큰 이유인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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