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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혈압약을 시작하다

by Kang.P 202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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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혈압약을 어제 처음으로 목구멍으로 넘겼다. 혈압약을 처음 먹을 땐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 어지러울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저혈압 때문인지 아니면 의사의 말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약을 먹고 얼마 안돼 핑 도는 느낌과 함께 어지러운 듯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많이들 먹는다곤 하지만 개인의 인생사에서 보면 참으로 슬픈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이미 30대 초반부터 혈압을 재면 정상 혈압보다 높게 나왔다. 그럴 때면 '아직 젊은데 뭐', 혹은 '운동 열심히 해서 떨어뜨려야지' 류의 생각을 하며 운동과 식단 조절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이 또한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였다. 

 

내 나이 어언 마흔넷. 

'올해부터는 의사 선생님이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 군소리 말고 먹자. 이제 그럴 나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병원을 찾은 건 어제였다. 건강검진 결과에 대한 상담을 받기 위함이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혈압을 지적했고 역시나 예상했던 그대로 이 정도 수치면 약을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예측을 하고 왔음에도 막상 그것을 실제로 확인하게 되니 이건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혈관 나이가 많다 보니(56세란다,,,) 혈관이 노화되어 탄력이 떨어졌고, 그 딱딱한 관으로 피를 보내려면 혈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혈관 나이는 매년 높게 나왔었는데 작년까지 건강검진 받았던 병원에서는 혈관 나이와 혈압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전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순간 치밀어 오는 배신감과 함께 당장이라도 찾아가 왜 그동안 나에게 혈관 나이와 혈압과의 관계를 숨겨왔냐, 그렇게 숨긴다고 내가 평생 모른 채 살아갈 줄 알았냐,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허기진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매일 빠짐없이 혈압약을 챙겨 먹어야만 하는 40대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그 기록을 남긴다.

 

2021년 11월 19일, 생애 첫 혈압약을 목구멍으로 삼키던 날의 기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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