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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트렁크 정리의 미학

by Kang.P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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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올해 들어 첫 캠핑을 다녀왔다. 큰 딸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한 캠핑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차를 바꾸고 처음 캠핑 짐을 싣는 것이라 의미 있었다.
 
차를 바꾼 이유는 전에 타던 차가 작아서 캠핑이라도 갈라치면 루프백을 달아야 했고, 아이들 자리는 짐으로 가득 차, 테트리스 블록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즐겁자고 가는 캠핑인데 아이들에겐 오가는 길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좀더 돈을 모은 후 차를 살까도 고민했지만, 그때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우리랑 놀아줄지가 의문이었다. 
 
뭐든 시기가 중요한 법. 그래서 큰맘 먹고 차를 바꾼 것인데, 막상 짐을 싣다 보니 자리가 모자라긴 마찬가지였다. 그저 루프백을 달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억척스럽게 트렁크 문을 닫고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봉양에 있는 '엉클캠프'라는 캠핑장이었다.
 

 

 

 
날씨도 좋고 구석진 곳에 위치한 사이트도 맘에 들었다. 먼저 도착에서 텐트를 치고 있자니 일행이 도착했다. 아빠들은 오랜만에 보는 지라 서로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는 각자 짐을 부렸다. 
 
캠핑은 즐거웠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잘 놀았고 부모들은 아이들 밥 먹인 후 술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공간을 차지할까 봐 장비 하나 추가하는 것에도 고민이 많은데 이 집은 냉장고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캠핑에 진심이었다. 가만, 근데 이 집도 우리와 같은 차종이 아니던가. 어떻게 그 많은 짐이 들어갈 수 있느냐 물었더니, 아빠는 '다 들어가던데요?'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 날 아침, 떡국으로 배를 채우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올 때보다 짐이 줄었는데 공간은 더 좁았다. 밀고 당기며 겨우 트렁크 문을 닫고는 "거, 어떻게 짐 정리했는 구경 좀 합시다" 너스레를 떨며 옆의 차로 다가갔다.
 
그리곤 깜짝 놀랐다. 우리는 룸미러로 후방을 보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데 여기는 각 잡고 정리된 짐들이 트렁크 높이의 2/3 정도밖에 안 돼 룸미러의 시야까지 확보하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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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공간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집은 트렁크 사이즈에 맞는 여러 수납 가방을 준비해 용도 별로 분리, 정리하였고 허투루 낭비되는 공간이 없었다. 이는 집에 도착해서 짐정리할 때도 용이해 보였다.
 
같은 차종에 우리보다 많은 짐을 꾸리면서도 여유가 있었던 이유였다. 주인 잘 만나야 한다는 게 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모습에 감탄하였고, 문득 이는 단지 트렁크 수납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 동일한 자금, 비슷한 환경에서도 결과의 차이를 보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리라. 결국 동일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지혜를 짜내고 현명하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지는 거다. 
 
1박 2일의 캠핑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늘 상황과 조건만 탓하던 내 모습에 얼굴이 붉어졌다. 물론 근로 조건, 처우 개선 등을 위한 노력은 중요하고 필요한 권리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는 고민과 노력 역시 함께 가져가야 성장할 수 있다.
 
같은 조건임에도 자수성가하는 사람과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의 차이는 어쩌면 같은 차종에 같은 짐을 실으면서도 공간의 여유를 만드는 사람과 마구 욱여넣어 겨우 트렁크 문을 닫는 사람과의 차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 난 알리에서 '캠핑 정리용 가방'을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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